미국이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에 직면하면서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8.3% 상승했다. 3월 8.5% 상승보다 둔화했지만 2개월 연속 8%대를 기록했다. 한국은행도 5월 26일 기준금리를 1.75%로 상향 조정했는데 물가 오름세가 당초 예상보다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가와 기준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소비자의 두려움도 커져가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등 화려한 이력을 지닌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박사는 “사람들의 우려만큼 인플레이션 상황이 심각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앞으로 더는 저물가 시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져올 국제사회 변화 등에 대한 이야기를 홍 박사가 들려줬다.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박사. [지호영 기자]
인플레이션 발생 상황 40년 전과 달라
어느 시점부터 코로나19보다 인플레이션이 더 자주 접하는 단어가 됐다. 인플레이션이 무엇이기에 공포로까지 표현되나.“인플레이션은 돈을 제외한 모든 물건 가격이 올라 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 이론적으로 최대 승자는 부채 상환 부담이 줄어드는 국가와 기업이다. 더욱이 기업은 제품 가격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문제는 물가상승률만큼 임금 상승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소비자의 구매력이 떨어져 불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고정금리가 아닌 변동금리로 대출받은 사람들은 이자 부담이 엄청나게 커지고, 새로 빚을 내야 하는 사람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시기에는 주식시장이 어려워지고 기업 도산이 빈발하며 가계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마디로 지금까지는 빚을 내기 좋은 환경이었기에 낮은 이자로 변동금리 대출을 받아 투자에 나선 사람이 승자가 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이자 부담에 쫓겨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이유는 단기간에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인상이 이뤄지면 우리 경제가 버틸 수 있겠는가, 가계부채 늪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나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인상의 출발점은 미국이다. 4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심각한 상황인가.
“그렇지 않다. 1970년대에는 인플레이션이 10년 동안 지속되다 물가가 10%까지 오르자 미국 연준이 참지 못하고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렸다. 그것이 그 유명한 ‘볼커 쇼크’로, 1980년부터 1982년까지 벌어졌고 그때 지미 카터 대통령이 낙선했다. 보통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초기에 금리인상을 하고 어느 정도 억제됐다 싶으면 많이 올리지 않는데, 당시에는 1971년 닉슨 쇼크(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발표한 정책 때문에 세계 경제가 받은 충격), 1973년 1차 오일쇼크, 1979년 이란 회교혁명,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이어지면서 세계 원자재 가격이 계속 오르자 인플레이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속돼 연준이 칼을 빼든 것이다.
지금은 원인이 다르다. 일단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미국 GDP의 20%에 육박하는 돈을 풀면서 사람들이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도 많이 했지만, 한 번 사면 6개월 이상 사용하는 TV나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스마트폰 같은 물건을 엄청나게 사들이면서 물건 가격이 중고차 기준으로 40%까지 올랐다. 그러면서 경제 내에 인플레이션이 생겼는데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한때 국제유가가 130달러까지 올라가는 오일쇼크까지 더해졌다. 현재 이번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될 것이냐를 놓고 여러 의견이 있는데, 미국 연준이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세계적인 기관 또는 연구단체는 2분기(4~6월)에 인플레이션이 최고점을 찍고 내년 하반기 정도 되면 다시 물가상승률이 2%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전망한다. 그럼에도 인플레이션 공포,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나오는 것은 과거에 겪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거 저물가를 가능하게 했던 세계화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아직 소비 위축 현상 없어
세계화가 흔들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2018년 미·중 무역분쟁이 벌어지고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중국은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제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 안정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정보통신혁명, 세계화, 선진국 근로자들(특히 제조업 부문)의 구조적 실업이었다. 정보통신혁명에 힘입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생산설비를 옮기면서 인플레이션을 완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중국에 갔던 기업들이 돌아오는 중인데, 과연 과거처럼 낮은 임금을 무기로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걱정을 하던 차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진 것이다. 이제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봉쇄하는 신냉전으로 가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안정화되더라도 과거처럼 다시 제로 물가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일면 타당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한국은 미국에 비해 돈을 적게 풀었다. 코로나19 사태 기간 미국이 GDP 대비 20%를 풀었다면 한국은 1.5%가 안 된다. 그것이 지금 미국은 물가상승률 8%대, 한국은 4%대라는 차이를 만들고 있다. 분명 한국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겠지만 미국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제한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욱이 얼마 전 발표된 ‘1분기 가계동향’ 조사를 보면 한국 근로자 가계소득이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10% 늘었다. 이런 상황들 때문에 아직 한국에서는 소비가 위축되는 현상까지는 안 보인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거나 소득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채권투자 적기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자산관리에도 리밸런싱이 필요하다. [GettyImages]
“일단 고수익은 기대하기 어렵고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는 정말 위험하다. 저금리 환경일 때는 레버리지 투자자가 승자였지만 지금은 청산당하지 않나. 미국 증시의 1월 폭락, 5월 폭락 모두 그렇게 벌어졌다. 지금은 자산을 리밸런싱해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원화 자산과 달러 자산을 절반씩 갖고 있다 환율이 급등했을 때 달러를 조금씩 팔아 폭락한 주식을 샀고, 지금은 채권을 사고 있다. 앞으로 어떤 외부 충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코로나19와 관련해 오미크론보다 더 센 변이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미국은 3월, 한국은 5월이 인플레이션 최고점이었을 개연성이 있다. 앞서 얘기했지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임금과 물가가 오르고 그에 따른 세금도 높아져 국가 재정이 튼튼해진다. 그 말은 더는 채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 정부 채권은 3~4%, 미국 모기지 채권 ETF(상장지수펀드)인 MBB(티커) 같은 경우는 5% 이자를 준다. MBB도 물론 미국 집값이 폭락하면 리스크가 있지만 큰일이 없는 한 30년 동안 5%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미·중 갈등,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국제사회도 재편되는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부터 국제사회는 블록화로 가고 있었다. 그나마 그때는 러시아에 대한 규제는 없었는데 이번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봉쇄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이득이다. 한국, 일본, 대만은 중국에 투자를 많이 한 나라였는데 2016년 한한령(限韓令)이 시작되면서 6년간 신규 투자는 당연히 얼어붙었고, 기존 사업도 사실상 철수한 상태였다. 물론 공장 등을 매물로 내놓아도 안 팔려 다 버리고 와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손실 처리가 됐기에 큰 문제는 아니다. 이제 우리 기업은 새로운 설비투자를 미국에 하고 있다. 미국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국가 이해에도 유효하고, 미국 시장이 앞으로 그 어떤 시장보다 중요해지는 세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으로 가는 산업은 장비가 고도화돼 로봇이 생산을 대부분 맡고 있어 고용이 별로 필요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제 저임금을 찾아 이동하는 시대는 가고 낮은 땅값과 전력요금, 세금 정도만 받쳐주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될 것 같다. 실제로 미국 텍사스주가 그런 지역이다.”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될까.
“중국은 디디추싱 사태(차량 호출 서비스 기업으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자진 상장폐지)나 앤트그룹 사태(중국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이끄는 핀테크 기업으로, 공모주 청약까지 마친 상태에서 상하이·홍콩 증시 상장 무기한 연기)에서 본 것처럼 기술을 혁신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기업가의 소유권 등을 인정하지 않는 한 성장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4% 혹은 그 이하로 낮아 보이는데, 성장의 질도 별로 좋지 않은 부동산 부양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최근 미국 우파 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공산품 점유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산 점유율은 중국산 점유율을 넘어 훨씬 커지고 있다. 이제 미국도 중국으로부터 물건을 조달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큰 데다, 이번 코로나19 봉쇄 조치까지 겹치다 보니 단가는 좀 높더라도 안정적으로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구매선을 바꾸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국은 강소국의 길 가야
한국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나.“중국이 우리의 외수시장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제 그 꿈은 깨졌다. 물론 다시 값싼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로 설비를 이전하고 거기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네덜란드처럼 강소국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냉전시대 산업고도화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어려움을 뚫고 나갔듯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국가로서 인적 자원 투자를 확대해 1인당 국민소득을 높이는 것이다. 또 모든 산업을 다 잘하기보다 정보통신과 바이오 같은 차세대 주력 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독보적인 ‘을’이 될 수 있는 기업을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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