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왼쪽)이 1981년 초 내한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앞줄 두 번째)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 SK그룹]
1973년 선경그룹을 이끌기 시작한 최 선대회장은 선경을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도약시킨다는 목표 아래 첫 번째 과제로 “석유로부터 섬유에 이르는 산업의 완전계열화 확립”을 천명했다. 이를 위해 맨 처음 정유공장 건립을 추진했으나 1973년 갑자기 1차 석유 파동이 발생하면서 공장 건립을 유예했다. 당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이유로 대(對)한국 석유 수출량을 줄여나갔다. 사우디아리비아 왕실과 친분이 두터웠던 최 선대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직접 찾아가 막혔던 석유 공급을 이끌어냈다. 5년 뒤 2차 석유 파동 때도 정부는 최 선대회장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고,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야마니 석유장관으로부터 하루 5만 배럴의 공급 약속을 받아냈다.
1980년 10월 정부는 유공(옛 대한석유공사) 민영화 방침을 발표했다. 정부가 내건 조건은 △원유의 장기적·안정적 확보 능력 △산유국 투자 유치 능력 △산유국과 교섭 능력 △증설 및 비축사업을 계획 기간 안에 완료할 수 있는 자금 조달 능력 △경영관리 능력 등이었다. 여러 기업이 인수전에 참여했으나 선경이 최종 인수권자로 선정됐다. 원유 수급 능력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는데, 그동안 선경이 여러 차례 독보적인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유공을 인수한 최 선대회장은 석유화학과 필름, 섬유 등을 일괄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면서 중화학산업의 주춧돌을 쌓았다. 또한 1984년 예멘 마리브 광구에서 처음으로 유전 개발에 성공했고, 1987년에는 원유를 선적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을 해외 유전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무자원 산유국’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후 유공은 2011년 ‘SK이노베이션’으로 사명을 바꾸고 세계 최대 정유공장이자 복합 석유화학 단지를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성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21년 2월 SK하이닉스 경기 이천시 M16 팹 준공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SK그룹]
1992년 4월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2이동통신 민간사업자 선정 계획을 발표했다. 선경은 사업자 경쟁에 참여했고, 포항제철·코오롱·쌍용 등 6개 컨소시엄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최 선대회장의 혜안으로 오랜 기간 탄탄히 준비해온 선경이 그해 8월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심사 결과 1만 점 만점에 8388점을 받았으며 2위 포항제철(7496점), 3위 코오롱(7099점)과 큰 격차였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최 선대회장의 사돈 관계에 따른 특혜 시비가 불거졌다. 당시 집권 여당이던 민주자유당 김영삼 대표 측은 ‘사업자 선정 백지화’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최 선대회장은 “특혜 시비를 받아가며 사업을 할 수 없다. 오해 우려가 없는 차기 정권에서 실력으로 승부해 정당성을 인정받겠다”며 사업자 선정 일주일 만인 1992년 8월 27일 사업권을 반납했다.
이듬해 새로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그해 12월 제1이동통신사업자(한국이동통신) 민영화와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도해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니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정리하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최 선대회장은 정부 발표에 앞서 1993년 2월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된 상태였다. 선경을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추천하면 또다시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기에 아예 불참을 선언했다. 그 대신 막대한 인수 자금이 들어가는 한국이동통신 공개 입찰에 참여했다.
한국이동통신 주가는 민영화 발표 전 8만 원대였으나 이후 30만 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선경은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시가보다 4배 이상 높은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했다. 당시 제2이동통신사업은 약 600억 원만 부담하면 지배주주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선경은 7배 넘는 4271억 원을 들여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 선경 내부에서조차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최 선대회장은 “이렇게 비싸게 사야 나중에 특혜 시비가 일지 않는다. 회사가치는 앞으로 더 키우면 된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한국이동통신 인수 직후 선경은 통신기술 고도화에 집중했고, 1996년 1월 세계 최초로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디지털 이동전화를 상용화하면서 세계 이동통신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CDMA 방식이 세계 표준이 되면서 대한민국이 CDMA 기술 종주국이라는 위상도 갖게 됐다.
아버지 뒤를 이은 최태원 회장은 배터리, 바이오, 반도체를 SK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로 삼고, 기업과 국가가 공생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 회장은 2012년 하이닉스 인수를 시작으로 ‘경제보국’ 무대를 세계로 확장했다. 최 선대회장이 유공과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며 성장 축을 확보한 것처럼, 최 회장은 하이닉스를 도약 발판으로 삼았다.
배터리사업 육성
최 회장은 채권단 관리 시절 생존이 불확실하던 하이닉스에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하이닉스는 SK에 인수된 지 10년 만에 매출은 4배, 시가총액은 6배 상승할 만큼 완전히 다른 회사로 탈바꿈했다. 또한 최 회장은 2017년 낸드 전문기업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에 4조 원 규모의 지분투자를 했다. 2020년에는 인텔 낸드 사업부를 10조3000억 원에 인수해 SK를 메모리 반도체 분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켰다. 동시에 미국에 1조20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연구개발(R&D)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회사 ‘사피온’과 AI 솔루션 개발 전문기업 ‘가우스랩스’를 설립해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최 회장이 최근 SK의 성장동력으로 주목하는 분야는 배터리다. 특히 SK는 배터리사업 육성을 위해 미국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 2곳을 보유하고 있으며, 포드와 합작해 테네시주와 켄터키주에 공장 3곳을 추가 건립할 예정이다. 2025년 공장이 완공되면 SK의 배터리 생산 규모는 150.5GWh로, 미국 내 배터리 생산 1위 기업이 된다. SK 바이오 분야도 뇌전증 치료 신약 개발에 이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주력하면서 ‘K-바이오’ 중심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9년에는 한국과 미국, 유럽 등으로 분산돼 있던 의약품 생산기업을 통합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SK팜테코를 설립하고 미국시장 공략에 나섰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의 이러한 글로벌 경영이 SK와 한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현지 국가에 편익을 제공하는 윈윈(win-win) 효과를 창출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992년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은 공정했다”
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 회장
1992년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사돈 관계인 최종현 SK 선대회장이 이끄는 선경그룹이 선정되면서 정치권에서는 특혜 시비 논란이 일었다. 당시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전담반장을 맡았던 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 회장은 “정치적 시비가 오갔지만 법적·행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선정이었고, 선경이 다른 기업과 비교해 모든 조건에서 월등했다”고 밝혔다. 석 회장은 행시 21회에 합격해 체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뒤 정보통신부 정책심의관·우정국 국장·정보화기획실 실장·정책홍보관리실 실장을 거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 및 KT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런 이력으로 그는 한국 정보통신 역사의 산증인으로 꼽힌다.당시 제2이동통신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인식되며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석 회장은 “이동통신사업은 한국 최초의 사업자 선정이었고 참고할 만한 모델이 외국에도 거의 없었다. 의혹 없는 사업자 선정을 위해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및 전자통신연구원의 엘리트 박사와 연구원, 회계사 등 국내 최고 인재들로 전담반을 꾸려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업자 허가신청요령과 심사 기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석 회장은 “허가신청요령에는 현 재무상태 등 법인의 기본 사항을 비롯해 영업계획서, 기술계획서, 통신망 설계서, 출연금을 포함한 통신사업 발전 기여계획서를 모두 제출토록 했는데,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경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당시 특혜 논란으로 야당이 두 차례 국회 청문회를 열었지만 문제 삼을 만한 이슈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석 회장은 “최 선대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과 함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이끌며 국가 경쟁력 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국가를 위한 일에 영감이 있어서였는지 이동통신사업에 대한 애착이 컸다”고 말했다.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강현숙 기자입니다. 재계, 산업, 생활경제, 부동산, 생활문화 트렌드를 두루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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