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왼쪽)과 광주 북구에 자리한 중흥건설 사옥. [동아DB, 사진 제공 · 중흥건설]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오른쪽)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호반건설 사옥. [동아DB, 사진 제공 · 호반건설]
7월 30일 중흥건설은 대우건설 최대주주 KDB인베스트먼트(KDB산업은행 산하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로부터 대우건설 지분 59.75%를 매입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거래 금액은 약 2조1000억 원으로 9월 주식매매계약 후 올해 안으로 매각이 완료될 전망이다. 대우건설은 시공능력평가 5위(시공능력평가액 9조5157억 원)인 메이저 건설사다. 올해 2분기 매출액 2조2074억 원, 영업이익은 1923억 원에 달한다. 대우그룹 해체 후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 2010년 산업은행에 인수되는 등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골리앗 품는 다윗” 중흥, “풍부한 실탄” 호반
중흥건설의 대우건설 인수를 두고 “다윗이 골리앗을 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흥그룹 주요 계열사 중흥토건(17위·2조585억 원)과 중흥건설(40위·1조1302억 원)의 시공능력순위 및 규모는 대우건설에 못 미친다. 올해 중흥그룹 자산총액은 9조2070억 원으로 재계 47위로 평가된다.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하면 자산총액 19조 원을 돌파해 재계 순위도 20위권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다만 남은 과제도 적잖다. 대우건설 노동조합은 “밀실·졸속 매각에 반대한다”며 파업을 예고했다. 대우건설 아파트 브랜드 ‘푸르지오’ 입주 예정자를 중심으로 “중흥 측에 매각되면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금융계 한 기업평가 전문가는 “이번 매각이 성사되면 대우건설에 대한 안정적 투자가 가능하리라 전망된다”면서도 다음과 같이 우려했다.“대우건설 인수로 중흥그룹이 당장 큰 시너지 효과를 보긴 어렵다. 중흥만의 문제라기보다 같은 업종 인수의 한계다. 비슷한 규모의 중견업체인 호반건설이 2018년 대우건설 인수를 고려했으나 해외 부실채권을 우려해 포기하기도 했다. 자사보다 덩치가 큰 업체를 무리하게 인수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전례가 많다.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향후 대우건설 인수 절차에 대해 중흥그룹 관계자는 “MOU를 체결하고 이행보증금 500억 원도 냈다. 산업은행 측이 대우건설의 해외 부실채권을 상당 부분 해결했다고 한다. 과거 타사와 같은 중도 포기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건설 노동조합 등의 반발에 대해선 “인수 과정은 적법하게 이뤄졌다. 추후 인수가 완료되면 임금협상 등 현안을 놓고 대우건설 노조 측과 적극적으로 대화할 것”이라며 “인수 후에도 ‘대우 푸르지오’와 ‘중흥S클래스’라는 각각의 아파트 브랜드로서 별도로 운영할 것”이라고 답했다.
“시너지 효과 예단 어려워”
호반건설(시공능력평가 13위)·호반산업(시공능력평가 35위)을 거느린 호반그룹은 사업 다각화를 위해 비건설사 인수에 적극적이다. 5월 25일 호반산업은 국내 전선업계 2위 대한전선을 2500억 원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매각 대금을 별도 차입 없이 마련할 정도로 ‘실탄’이 풍부하다는 후문이다. 최근엔 호반건설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매물로 내놓은 두산공작기계 인수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호반은 경영 전반에서 신중한 편이나, 일단 인수합병 절차에 돌입하면 상당히 진지하게 임한다”며 “최근 기업 인수도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익명을 원한 금융계 한 전문가는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건설사는 여력이 있을 때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려 한다. 경기에 덜 민감한 다른 분야 업체를 보유해 안정성을 높이려는 것”이라면서도 “소수 핵심 인력으로 현장 하청업체를 운용하는 건설업에 비해 제조업은 생산체계 관리가 어렵다.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시너지 효과로 직결된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호반그룹은 5월 인터넷 매체 ‘EBN’과 IT(정보기술) 전문지 ‘전자신문’을 인수하는 등 미디어사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분율 19.4%로 현재 3대 주주인 ‘서울신문’ 인수에도 나서는 모양새다. 8월 19~23일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이 진행한 ‘호반건설의 우리사주조합 지분 인수 제안에 대한 협상 착수 동의’ 안건 투표가 찬성률 56.07%로 통과됐다. 호반그룹 측은 7월 7일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에 △우리사주조합 지분 29% 300억 원에 매입 △임직원 420명에게 인당 5000만 원씩 특별위로금 210억 원 지급을 제안한 바 있다. 7월 14일 추가로 보낸 공문을 통해선 “서울신문 전 직원이 구조조정 걱정 없이 현업에 충실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이끌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당사가 편집권을 침해하거나 지면에 간섭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경제 전문가는 호반그룹의 언론사 인수 행보에 대해 “과거 국내 재벌 대기업은 골프장, 병원, 대학, 언론사 등 일종의 ‘위풍재’ 같은 사업체를 여럿 경영했다. 최근 중견기업들도 재벌 성장 과정을 벤치마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언론사 인수는 중장기적으로 대외 홍보 효과를 노릴 수 있을지 모르나, 기업 성장에 직접 도움이 되진 않는다”고 짚었다.
두산공작기계 인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묻자 호반건설 관계자는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서울신문 인수 과정에 대해서도 물었으나 마찬가지로 “현 상황에선 답변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세 확장에 나선 중흥그룹과 호반그룹은 모두 호남에 연고를 둔 라이벌 기업이다. 광주 출신인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은 1983년 고향에서 중흥건설의 전신 금남주택을 설립해 건설사업을 시작했다. 전남 보성군에서 태어난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은 1989년 호반건설을 세웠다. 두 회장 모두 꼼꼼한 재무관리를 통해 기업을 현 규모로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가로 평가된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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