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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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작곡하는 경영학자’ 김효근이 뜨는 이유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그의 노래, 사람 마음 읽는 경영학 본질과 같아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4-04-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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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살면서 드는 확신 가운데 하나가 예술과 예술교육의 중요성이다. 한국 학생들은 피아노, 바이올린, 그림, 태권도, 축구 등 많은 활동으로 바쁘다. 그런데 학부모는 대체로 자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예술교육에 대한 관심을 끊는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 가운데 중고교생 시절 피아노와 발레를 배우는 아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심지어 독서를 할 때도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는 책만 읽는다. 한국만큼 실용적인 것만 중시하며 자기개발에 몰두하는 사회도 없다.

    한국 학부모는 대체로 자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예술교육에 관심을 끊는다. [동아DB]

    한국 학부모는 대체로 자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예술교육에 관심을 끊는다. [동아DB]

    경영학 전공한 ‘대위법 오빠’

    미국과 유럽에서는 청소년기 예술·체육교육을 매우 중시한다.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학에 진학해 역사를 전공하고, 이후 로스쿨에 입학하는 학생도 있다. 전문 피아니스트 길을 걷지도 않을 아이가 왜 중고교에서 음악에 전념했을까.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대학 동기 가운데 예외적인 친구들이 생각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각광받을 인물상이기도 하다.

    ‘작곡하는 경영학자’로 알려진 김효근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웃음이 끊이지 않던, 사교적이면서 따듯한 친구였다. 그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음악 수업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받곤 했다. 음악 과목에서 모두 A+를 받았고, 논리적 사고에도 강해 음대에서 ‘대위법·화성법 오빠’로 통했다는 전설이 있다.

    김 교수는 경제학도임에도 1981년 대학가요제에 나가 쟁쟁한 음악 전공자들을 제치고 대상을 차지했다. 그가 부른 노래는 ‘눈’이었는데 스스로 작사·작곡한 곡이었다. ‘눈’ 가사는 다음과 같다.

    “하얀 눈이 작은 산길에 아름답게 쌓일 때, 나는 영원히 내 작은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순백의 산길을 헤매고 싶다.”



    이 노래에는 ‘작은’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는데, 부드럽고 순수한 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경영학 교수라는 본업에 충실하느라 음악에서 잠시 멀어졌지만, 결국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2010년 첫 앨범 ‘내 영혼이 바람이 되어’를 발매한 것이다. 이 앨범 타이틀곡은 영시 ‘A Thousand Winds’에 멜로디를 붙인 것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세월호 추모식과 6·25전쟁 참전용사 유해 봉환식 등에서 불려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 작곡할 때 무엇을 염두에 두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목표는 대중가요처럼 쉬우면서도 클래식처럼 아름다운 ‘아트팝’이었다. 그는 ‘눈’과 같이 낭만적인 노래도 만들었지만, 인문학적 깊이를 가진 노래도 적잖게 작곡했다. 이 가운데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다.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 “내일이여 그대는 듣게 되리니. 세상이여 영원히 기억하리라. 아름다운 가장 아름다운 나의 노래여”에서 ‘아름다운’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며 클라이맥스로 갈 때도 좋지만, 도입부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직 부르지 않았지. 오늘 나 초라하고 슬퍼도 지금 멈추지 않을 테요”라는 부분도 좋아한다. 이 곡은 합창곡으로 많이 불렸으며 많은 성악가가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김 교수의 노래는 왜 인기가 많을까. 그의 음악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준다. 그의 곡들은 인간의 깊은 감정을 건드리고,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김 교수의 음악은 단순히 하나의 노래가 아니다. 청중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예술 작품이다.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사람 마음을 읽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 본질에서 음악과 다르지 않다.

    합창의 중요성

    필자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My Way’도 좋아한다. 이 노래 도입부에는 인생의 풍파를 겪은 남자의 가슴 저린 사연이 담겼다. 이 곡에서는 김 교수의 노래처럼 진한 감성이 느껴지는데,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I’ve lived a life that’s full(난 충만한 인생을 살았답니다). I’ve travelled each and every highway(모든 길을 다 가봤습니다). And more, much more than this(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I did it my way(내 방식대로 했다는 거예요).”

    필자는 김 교수에게 대학교 1학년들이 종합예술과목을 필수교양으로 들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대학국어와 대학영어를 폐지하는 대신 1학년들로 하여금 1학기 때는 음악과 무용을, 2학기 때는 미술과 연극·영화를 배우게 하는 식이다. 특히 첫 6주 동안 음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했다. 이때 음악 감상보다 악보 읽는 법과 음악 이론, 작곡을 가르치고 싶었다. 김 교수는 필자의 생각을 듣더니 “합창과 작곡을 가르쳐라”고 조언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렸으니 정서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지어 노래를 완성한 후 스스로 발표해보는 수업은 어떨까. 작곡이 낯설고 더 나아가 두렵기까지 한 학생도 적잖을 것이다. 이들을 위해 작곡 이론을 간단하게 가르쳐도 좋고, 챗GPT나 작곡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클래식을 전공한 음악가뿐 아니라 실용음악을 전공한 사람도 이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러보는 것은 각별한 체험이 될 테다. 하루빨리 학생들이 대학에서 음악 수업을 필수교양과목으로 들을 수 있길 바란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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