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8

2011.03.14

브라질 선수들 쉬운 이름 왜?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 lunapiena7@naver.com.

    입력2011-03-14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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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선수들 쉬운 이름 왜?

    ‘Park(팍)’의 고유명사가 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어렸을 때 일이다. 필자는 성이 황(黃)씨여서 황씨 성을 가진 사람을 보면 유난히 애착이 갔다. 김, 이, 박처럼 흔한 성을 가진 이가 아니라면 대부분 이런 느낌을 가져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어린 시절, 같은 종씨라는 이유만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황해라는 영화배우에게 호의를 느끼며 응원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황씨가 아닌 전씨였다. 황해는 예명이었던 것. 이 사실을 알고 당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작가 역시 대부분 본명 대신 필명을 쓰는 것을 알게 됐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교과서에서 배웠는데, 그의 본명이 윌리엄 시드니 포터라는 사실을 알고 감동이 줄어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분명 본명이 매력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프랑스의 인기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필명의 느낌을 받지만 사실 본명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소설가 이문열을 비롯해 많은 작가가 필명을 쓴다.

    작가가 필명을 사용하는 건 원래의 자신을 문학적으로 살해하고 다른 인물로 태어났다는 의미라고 한다. 물론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라든지, 다른 작가와 이름이 같아서, 또는 본명이 지나치게 평범하거나 촌스러워서 필명을 쓸 수도 있다.

    필자의 이름은 서양 사람이 정말 발음하기 힘들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왕그세웅그규웅그’라고 발음한다. 처음 이탈리아 공항에서 여권심사를 받을 때, 공항 직원이 부르는 내 이름을 알아듣지 못했다. 주문을 외우는 줄 알았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세리아A 페루지아 구단에서 2001, 2002 두 시즌을 보낸 한국 축구계의 ‘팬터지 스타’ 안정환의 이름도 그냥 ‘AHN’으로 불렀다. 누구도 이름까지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자 처지에서 볼 때, 발음하기 쉬운 외국선수 이름은 그렇지 못한 선수보다 자주 부를 것이다. 현장 상황을 바로 전달해야 하는 중계 캐스터로선 어쩔 수 없이 발음이 익숙지 않은 외국선수의 이름을 호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2002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에 패배한 이탈리아에선 그 후유증으로 당시 한국축구를 칭찬하는 일이 금기시됐다. 그러나 송종국 선수가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소속으로 이탈리아 AC밀란과 경기를 벌일 당시, 현지 중계진 멘트에선 네덜란드의 다른 선수들보다 ‘Song’이란 이름이 자주 나왔다. 송종국이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이유도 있었지만, 동료 선수들과 합작해내는 플레이에서도 다른 선수들의 이름은 빼고 ‘Song!’이란 소리만 나왔다. 경기 마지막에는 “한국에도 ‘Song’처럼 잘하는 선수가 있군요”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송중국이 잘했지만 ‘Song’이라는 말 자체가 중계진에게 쉽게 다가왔던 것이다.

    실제 호나우디뉴, 호나우두, 히바우두, 레오나르도 등 브라질 출신의 유명 축구선수는 상대적으로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사용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성악가 조수미 씨도 본명은 조수경이다. 발음 문제로 예명을 쓰는 것이다.

    브라질 선수들 쉬운 이름 왜?
    최근 국내 많은 축구선수가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 수는 늘어날 것이다.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해 빅클럽에 진출하려면, 모든 경기를 최선을 다해 뛰면서 에이전트나 클럽 관계자의 눈에 띄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름을 강하게 각인시키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축구선수, 자신의 이름을 이방인이 자주 불러준다면 그만한 성취감도 없을 것이다.

    * 황승경 단장은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에서 축구 전문 리포터로 활약한 축구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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