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4

2010.11.29

감독이 괴로워야 축구가 즐거워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 lunapiena7@naver.com

    입력2010-11-29 1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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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이 괴로워야 축구가 즐거워

    프로축구 성남 일화의 신태용 감독이 11월 오후 일본 가와사키 도도로키 스타디움 보조구장에서 선수들을 훈련하고 있다.

    11월 13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성남 일화는 핵심 주전선수 3명이 빠지고도 이란의 조바한을 3대 1로 완파해 아시아 클럽 정상 자리에 올랐다. 12월 11일에 알 와다(UAE)와 헤카리 유나이티드(파푸아뉴기니)전 승자와의 경기에서 이기면 세계 챔피언 준결승 자리를 놓고 유럽 챔피언 인터밀란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

    견고한 수비를 자랑하지만 기동성이 떨어지는 이란을 상대로 짧은 패스와 빠른 발로 승부를 건 성남 일화. 그 중심에는 신태용(40)이라는 젊은 감독이 있다. 그는 1996년 일화의 첫 우승 당시 선수로 활약을 했고, 14년의 공백을 깬 이번 경기에서는 감독으로 참가해 2번의 우승컵을 거머쥔 아시아 최초의 사나이가 됐다.

    그런데 많은 이가 선수 신태용을 생소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는 K리그 최초 60-60클럽(통산 99득점-68도움)에 가입했지만 ‘성남의 레전드’라는 화려한 명성에도 월드컵 같은 국제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그는 국제대회에서만큼은 그라운드를 날아다니던 ‘그라운드의 여우’ 신태용이 아니었다. 이런 아픔이 바탕이 된 때문일까? 2009년 감독대행을 맡은 이후에는 지도자로서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리더십은 과정과 결과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때 입증된다. 선수 개개인의 장단점을 확실하게 알고, 그것을 목표와 일치시키는 능력이 과정이라면, 경기에서의 승리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도 과정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신태용은 이미 절반 이상의 성공을 한 셈이다.

    혹자는 축구감독을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비교하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카라얀이나 번스타인보다 윗세대 지휘자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이탈리아, 1867~1957)가 있다. 그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지휘자였지만,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깐깐하고 괴팍한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평소 단원들에게 ‘육두문자’를 써가며 호통을 쳤는가 하면 인신공격적인 언사까지 수시로 남발했다. 카리스마로 단원들을 휘둘러 악명이 높아갔지만, 그럴수록 그의 음악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지휘하는 음악의 완성도는 나날이 높아졌다.



    지휘자는 절대적 카리스마를 행사할 수 있다. 지휘자는 공연 현장에서 90% 이상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축구감독은 아무리 명석한 판단력으로 상대를 분석해 전략을 짜도 시작 휘슬이 울린 후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선수 교체밖에 없다. 따라서 감독은 평소 선수 개인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선수 체력과 정신력, 사생활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전후반 90분 동안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빌 선수를 정확하게 뽑을 수 있다.

    감독이 괴로워야 축구가 즐거워
    이뿐이 아니다. 팀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바보가 될 수 있는 황당한 언론플레이도 해야 하고, 벤치에서는 과장된 어필과 표정으로 상대를 위축시키고 팬들을 위한 이벤트도 펼쳐야 한다.

    미남 선수로 유명했던 로베르토 만치니(이탈리아, 맨체스터시티 FC 감독)가 36세에 세리아A의 피오렌티나 감독으로 부임한 후 두 달 만에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눈가에 주름이 가득해졌다. 팬들은 경악했지만, 감독의 과다 업무에 축구의 재미는 더욱 커진다.

    * 황승경 단장은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에서 축구 전문 리포터로 활약한 축구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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