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5

2013.12.02

조기 진단과 치료만이 ‘침묵의 살인자’ 퇴치

몸속 고속도로, 대동맥③ <마지막 회>

  • 이재환 충남대학교병원 심장내과 교수

    입력2013-12-02 10:5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조기 진단과 치료만이 ‘침묵의 살인자’ 퇴치
    지난 2주에 걸쳐 대동맥에 나타날 수 있는 조용하지만 치명적 질환에 대해 알아봤다. 교통사고 등 외상으로 인한 충격과 미세한 찢김이 대동맥 파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살펴봤는데, 대동맥 파열의 방아쇠 노릇을 하는 것은 바로 고혈압이다. 대동맥 질환의 가장 큰 원인이 높은 혈압인 것이다.

    인체 내 혈관 가운데 혈류량이 가장 많은 대동맥은 오랫동안 허용치 이상의 높은 혈압에 시달릴 경우 피로를 느끼다 세로 방향으로 찢어지는 상처를 입는다. 이를 대동맥 박리증(Aortic Dissection)이라 총칭하는데, 40대 이상에서 유병률이 급격히 증가하며 남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마르판증후군(Marfan Syndrome)이 대동맥 박리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마르판증후군은 뼈, 근육, 심혈관계의 이상 발육을 유발하는 선천성 희귀병으로, 외형이 비정상적인 경우가 많다. 즉 키가 크거나 팔, 손가락 등이 긴 외형을 가졌다. 과거 링컨 대통령이 이 질환으로 고생했으며, 최근에는 국내 한 전직 농구선수가 이런 증상을 보인 바 있다. 겉으론 건강하고 운동도 잘하는 것 같지만 대동맥에서는 이미 빨간불이 켜진 특이 체형이다. 여성의 경우 드물게 임신이 대동맥 박리증의 위험을 높이기도 한다.

    대동맥 벽 내 혈종(Intramural Hematoma)은 여성에게 더 흔한 대동맥 질환이다. 일반적인 대동맥 박리증과 조금 다르게 3개 층(내막, 중막, 외막)으로 구성된 대동맥 혈관벽 안에 혈액과 피떡(혈전)이 쌓이는 병이다. 노후한 건물 내벽의 작은 틈 사이로 물이 새는 현상에 비견하면 이해하기 쉽다. 역시 높은 혈압이 가장 큰 원인으로, 일반적인 대동맥 박리증처럼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대동맥류는 초음파로 진단할 경우 시각적으로 확인 가능하지만, 대동맥 박리증이나 대동맥 벽 내 혈종의 경우는 이런 기회조차 많지 않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극심한 가슴 통증, 등 통증 같은 자각 증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증상 또한 심근경색(Myocardial Infarction)과 유사해 이미 다른 심혈관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라면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동맥경화로 흉통을 느끼던 환자가 증상을 참다 큰일이 나기 일보 직전 병원을 찾아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를 한 후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된 대동맥 벽 내 혈종을 발견한 경우도 있다.



    이처럼 대동맥 관련 질환은 조용하게 찾아와 치명적인 결과를 빚는다. 하나같이 조기 진단율과 생존율이 비례한다. 빨리 발견할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그만큼 커진다는 얘기다. 진단 기술과 치료법은 발전을 거듭하지만, 조기 진단과 치료의 중요성을 간과하다 소중한 생명을 잃거나 후유증을 안고 사는 환자가 여전히 많다.

    의학 발전과 의료진의 전문성보다 때론 더 중요한 것이 환자의 건강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가족의 관심 및 배려다. 대동맥 관련 질환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특히 혈압이 높은 40대 이상 환자나 사고전력이 있는 환자의 경우 작은 증상도 소홀히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동맥 관련 질환 치료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일단 확인되면 즉각 필요한 치료와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도 이를 미뤄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동맥은 인체 내에서 가장 높은 혈압을 견뎌내며 분당 60회 이상, 약 50cm/sec 속도로 온몸에 혈액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조기 진단과 치료만이 ‘침묵의 살인자’ 퇴치
    이재환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에서 전임을 수료하고 미국 뉴욕 콜롬비아 의과대에서 대동맥 중재술 연수를 받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