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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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포도주 알고 보면 끝내줘요”

술 만드는 고려대 박원목 교수 … “향, 성분, 맛 탁월 세계 최고 품질 될 것”

  • 장미경/ 사이언스타임즈 객원기자 rosewise@empal.com

    입력2004-05-28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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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산 포도주 알고 보면 끝내줘요”

    박원목 교수 약력 ●1969 고려대 원예학과 졸업 ●1975 일리노이 주립대 생물학 석사 ●1977 아이오와 주립대 식물병리학 박사, 식물병리학회 부회장, GMO환경 안전성 평가 연구실(NRL) ●현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생물정보 연구부 교수

    토종 포도주 한잔 드실래요?”고려대 생명공학원 5층에 자리잡은 박원목 교수(63)의 아담한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박교수는 뭔가 자랑하고픈 천진한 소년의 표정을 한 채 밝게 웃으며 포도주를 권한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국산 포도주 예찬론을 펼친다. 향, 성분, 맛 모두에서 국산 포도주가 뛰어난데 외국산 포도주가 국내 포도주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박교수 연구실에서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크고 작은 술병이다. 실험용 알코올이 들어 있는 소주병 박스를 비롯해 포도주가 담긴 대형유리병, 플라스틱 술통, 소형 발효조까지 갖춰져 있다. 술 제조공장을 방불케 하는 이 풍경은 낯설기보다 오히려 소박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술병과 제조통에는 세심한 과학자답게 연구메모가 꼼꼼하게 적혀 있다.

    박교수는 술을 만드는 과학자다. 1960년 고려대 농대에 입학해 77년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식물병리를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일생을 농업 발전 한 분야에 바쳐왔다. 그런 그이기에 국산 포도주를 만들게 된 계기에도 농업과 농민이 빠질 수 없다.

    장비 갖춰놓고 발효방법 연구

    “외국에서 공부할 때 식물병리와 미생물 연구를 하면서 다양한 술을 접할 수 있었죠. 우리 포도주는 어떨까 궁금해서 관심을 가져봤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포도주를 소개한 책자나 자료는 없더군요. 우리 포도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우리 농민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 국산 포도주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것이 몸에 좋다고 해도 국산 포도주라고 하면 솔직히 일단 낯선 느낌이 든다는 기자의 말에 박교수는 그런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포도주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국산 포도는 과실용이라고 규정하고, 국산 포도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외국에서는 누구든 자기 고장 포도가 가장 좋다고 말하죠. 세계적인 마켓을 형성하고 있는 유명 포도주들은 그 나라 사람들의 자부심에 상술이 더해져서 태어나는 법입니다.”

    실제로 박교수가 보여준 주류별 항산화 활성 측정자료에는 국산 포도주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과학적 데이터가 당당하게 담겨 있다. 항산화 물질은 각종 질병과 빠른 노화를 예방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국산 포도주와 외국산 포도주의 성분을 비교 분석해본 결과 국산 포도주가 더 우수한 항산화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이는 체계적인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면 대한민국 포도주가 세계 최고의 포도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는 자료인 셈이다.

    같은 포도를 이용하더라도 발효 방법에 따라 맛이 다르게 마련. 박교수는 교내 연구실뿐만 아니라 80년대 후반 직접 마련한 경기 이천의 창고에도 갖가지 술 발효장비들을 갖춰놓고 포도주 발효 방법을 연구해왔다. 이곳에서 담는 포도주만 해도 매년 1t이 넘는다. 벌써 4년째 한 영농법인으로부터 포도주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으며, 화성시를 비롯한 각 시ㆍ군 농업기술센터에 주기적으로 나가 강의도 하고 있다. 그는 국산 포도주가 세계시장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세심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우수한 포도주를 만들 수 있도록 정부에서 농민교육에 앞장서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합니다. 대형 공장에만 의존하지 말고, 포도주 제조허가를 완화해 무엇보다 기술을 보급하는 것이 우리 포도주의 세계화를 앞당기는 일입니다. 또한 포도주를 등급별로 인정해주는 품질인정제도의 제정 역시 시급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농민을 위한 실질적인 연구를 한다고 해도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학교에서 학술논문 평가가 해마다 실시될 텐데, 이에 대한 부담은 없는지 궁금했다.

    가을부터 ‘포도주 개론’ 강의 개설

    “왜 없겠습니까. 대학교수라고 하면 아카데믹한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게 사회통념이잖아요. 저도 평가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60살까지는 기초연구를 많이 했는데, 환갑을 넘기고 보니 사회에 필요한 실질적인 연구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디다. 현실을 외면한 탁상공론이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지 않겠습니까.”

    “국산 포도주 알고 보면 끝내줘요”

    연구실을 술병으로 가득 채운 박원목 교수.

    박교수는 우리나라 포도의 성질과 효모 생육 요인을 적절히 융합한 포도주 발효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포도주 발효에 영향을 미치는 미생물과 화학물질을 밝혀냄으로써 이들의 생장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 최근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 온라인판이 소개한 연구결과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미국 하버드 의대 병리학과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팀은 포도와 적포도주 속 폴리페놀계의 레스버레트롤이라는 분자가 효모의 생명을 80% 연장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 성분이 효모뿐만 아니라 인간 세포와 초파리, 연충과 같은 다세포 유기체의 생명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교수는 포도주 연구뿐만 아니라 1970년대부터 농민을 위한 실질적인 연구활동을 진행해왔다. 버섯과 콩나물 분야의 방제 연구를 통해 선보인 재배방식은 지금도 농가에서 유용한 재배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뇌 발달에 중요한 생리활성물질의 공급원으로 인식돼 약용으로 쓰일 수 있는 노루궁뎅이버섯의 인공대량 재배법을 개발한 상태며, 미국 복분자술과 우리나라 복분자술을 비교 분석해서 우리 복분자술의 우수함을 입증하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또 유전자조작농산물 콩이 국내에서 재배된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해 농림부에 경종을 울렸다.

    몸에 좋은 포도주를 자주 마신 덕분인지, 일에 대한 열정 덕분인지 정년을 2년 앞두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고 활기찬 박교수. 올 가을부터는 학교에 ‘포도주 개론’이라는 강의를 정식으로 개설해 미래 포도주 시장의 소비자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국산 포도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전파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와의 만남은 ‘세월은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 못한다’는 시구를 절로 떠오르게 하는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포도농가를 비롯한 우리 농민들에게 행복과 부를 안겨주고 싶다는 박교수의 꿈에서 삶의 그윽한 향기가 느껴졌다. 잘 숙성한 포도주의 은은한 맛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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