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3

2009.09.15

천의 얼굴 카멜레온, 조조가 사는 법

‘조조 읽는 CEO’(원제 曹操十講)

  • 왕상한 서강대 법학부 교수 shwang@sogang.ac.kr

    입력2009-09-11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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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의 얼굴 카멜레온, 조조가 사는 법

    랑룽 지음/ 이은미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317쪽/ 1만3000원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삼국지’는 한 번쯤 읽어보았으리라. 필자는 지금까지 ‘삼국지’를 다섯 번(고우영 만화책까지 합하면 6번) 읽었다. ‘삼국지’ 하면 당연히 유비와 관우, 장비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들 주인공 못지않은 인물이 조조다. 조조는 208년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 크게 패해 중국이 삼분된 후 216년에 위왕이 된 인물.

    자는 맹덕(孟德). 황건의 난을 평정해 공을 세우고 동탁을 벤 뒤 실권을 장악했다. 권모에 능하고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륭을 가져올 정도로 문학을 사랑했다. 시문도 잘했다.

    ‘조조 읽는 CEO’는 조조의 차가운 열정을 담은 책. 중국의 유명한 소설 중 하나인 ‘삼국지연의’는 조조를 ‘난세의 간웅’으로 묘사했고 이후 조조는 간신의 대명사처럼 이미지가 굳어졌지만, 책은 그를 영웅으로 평가한다.

    조조에겐 누구도 갖지 못한 과감한 결단력이 있었으며, 그 결단을 실행에 옮긴 진정한 영웅이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진짜’ 조조를 통해 오늘날의 난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방법을 제시한다.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릴 수 없다!”

    조조는 빛나는 가문 출신도 아니고 든든한 밑천도 없었다. 또 군대 생활을 하며 수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천하를 다투는 전쟁을 치르면서 조조는 어떻게 점점 강해질 수 있었을까. 어떻게 수많은 전투에서 패배를 역전시켜 승리로 만들었을까. 책은 냉혹한 시대를 이기는 조조의 열정과 인생 비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 조조는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조조의 통치 방식은 제멋대로인 듯하면서도 엄격했고,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이 살아 있었다. 난세를 사는 최고권력자로 조조가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고충, 그리고 만인지상의 군주이면서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겪어야 했던 갈등 등을 책에서 엿볼 수 있다.

    조조의 가장 빛나는 결단은 한나라 마지막 황제 헌제를 쉬창(許昌)으로 모셔온 것. 동탁의 죽음 이후 마땅히 기거할 곳을 찾지 못하던 헌제를 두고 당시 제후들은 주판알을 튀겼다. 사실 헌제를 이용해 제후들을 호령하자는 계책을 먼저 내놓은 이는 원소의 참모 저수였다. 하지만 다른 참모들이 찬성하지 않아 원소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조조는 헌제를 모셔오기로 결단하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이 결단은 커다란 열매를 맺었다. 헌제를 모시고 있는 조조에게 대항하는 것은 곧 한나라 왕실에 대한 항거로, 그의 허가가 없는 전쟁은 불법적인 군사행동으로 간주된 것이다. 조조가 천자의 깃발을 내세우자 제후들은 피동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주도권은 조조의 손에 있었다. 그는 최소한의 대가를 치르고 황제를 모심으로써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면에서 최대 수익을 건진 셈이다.

    “나는 오직 그 사람의 재능만을 보겠다!” 조조의 결단력과 실행력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그의 성격에서 비롯됐다. 인재등용 기준에도 그대로 반영,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많은 인재를 모았다. 또 사사로움에 연연하지 않는 엄격한 상벌 집행으로 다양한 인재를 효율적으로 다스렸다. 특히 적진에서 투항해오는 군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상대 세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수단임을 인지한 것이다. 조조가 이렇게 등용한 인재로는 장료, 우금, 장합, 서황 등이 있다. 이들은 조조를 위해 많은 공을 세우고, 종횡무진 활약했다. 이런 조조의 모습이 우리가 아는 조조와 다른 이유로 설명한 것도 흥미롭다. 어떤 군주도 자신의 신하 가운데서 조조와 같은 인물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황제를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조조는 군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신하의 모습이었다. 이런 통치자들의 의도는 문학을 비롯한 많은 부분에 ‘적극’ 반영됐고 역사 속 ‘조조의 실제 모습은 문학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완전히 가려지고 말았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조조가 말했다. ‘용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고, 승천할 수도 있고 숨을 수도 있지요. 크면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하며, 작으면 그 모양을 감춥니다. 승천하면 우주로 날아오르고 숨으면 파도 속으로 매복하지요.’”

    사실 저자에게는 조조가 영웅인지 간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진짜 조조’를 통해 독자들이 삶을 성공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바랄 뿐이다. 조조가 관용과 의심, 아량과 경계, 인성과 야만성의 천 가지 얼굴을 가진 카멜레온 같은 인물이고 보니 그의 어느 한 면만 보고 전체를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삼국의 역사는 듣고 또 들어도 흥미롭고 조조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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