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7

2010.07.26

MB 물가지수는 왜 슬쩍 사라졌나?

‘경제상식 충전소’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0-07-26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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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 물가지수는 왜 슬쩍 사라졌나?

    최진기 지음/ 한빛비즈 펴냄/ 263쪽/ 1만2800원

    7월 11일 밤, 나는 도쿄의 한 호텔에서 일본 참의원 선거 개표방송을 시청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처음부터 반수에 한참 미달하는 패배가 예측되고 있었다. 패배의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소비세를 5%에서 10%로 올리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것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민주당이 정책 수정을 호소했지만 이미 물 건너간 뒤였다.

    일본에서 소비세는 22년 전에 도입됐다. 거리에서 나눠주는 한 야당의 선거 홍보물은 그간 거둬들인 소비세가 모두 224조 엔으로, 같은 기간 대기업 등의 법인세를 감면해준 208조 엔과 맞먹는다는 것을 간단한 그래프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소비세를 올리는 것은 일본경단련(일본경제단체연합회) 같은 재계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소비세는 부자를 위해 가난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부자 감세’라며 여당을 압박한 것이다.

    결국 경제정책 하나가 한 나라의 방향타를 크게 튼 셈이었다. 그런데 부자 감세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단어다. 한때 종합부동산세가 위헌판결을 받고 법인세를 낮춘다고 했을 때 나라 전체가 시끄러웠다. 일본을 다녀온 직후 ‘경제상식 충전소’를 접했고 이 책의 “세금 깎아준다는데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나요?”라는 대목을 읽으니, 소비세나 부가가치세를 둘러싼 맥락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감세정책을 편 인물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들었다. 레이건이 감세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 ‘래퍼곡선(Laffer Curve) 이론’이다. 세금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일해서 세금을 내느니 그냥 노는 편을 택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 오히려 국가의 조세수입이 줄어든다. 그래서 래퍼는 세금을 줄여주면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고취해 조세수입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학자인 래퍼가 정치가들과 식사하던 중 냅킨에 대충 그려서 설명한 이 이론을 레이건이 정책으로 도입한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조세수입은 줄어들고 국가의 재정적자만 더욱 늘어난 것이다.

    이런 정책은 감세 혜택이 부자에게 집중되기에 부(富)의 불평등이 심화돼 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중산층이 약해지면서 소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부자와 빈민의 양극화가 뚜렷한 나라의 경우 부자들의 소비는 한계가 있고, 빈민들은 빚을 내 겨우 생활하기 때문에 소비의 여지가 없어 문제가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해주니 경제원칙이나 상식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이 책은 금융, 경제지표, 증권, 부동산, 경제정책, 국제경제 6분야에 걸친 34개의 쟁점을 강의하듯 차분하게 들려주고 있다. 책에서 저자가 찾아낸 이슈들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처럼 익숙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주제로, 저자가 엄선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15개월이나 2%대를 유지했지만 대출금리는 7%대까지 오르는 이유는?’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미소금융은 성공할 수 있을까?’ ‘키코(KIKO)의 황당한 옵션으로 중소기업들이 파산한 것은 누구 책임일까?’ ‘실업률은 3%지만 사실상 놀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까닭은?’ ‘물가를 잡겠다고 새롭게 만든 MB 물가지수가 왜 슬그머니 사라졌을까?’ ‘채권시장은 왜 대규모 금융회사와 큰손들의 놀이터가 됐을까?’ ‘반값 아파트와 보금자리 아파트는 가능한가?’ 등은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주제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설명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글을 시작할 때마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경제의 한 팩트를 등장시킨 다음, 그 팩트를 등장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아, 그렇지’ 하는 감탄사를 절로 자아내게 만드는 각각의 글은 마치 장편(掌篇)소설을 읽는 것처럼 박진감 있다.

    국내총생산인 GDP를 설명하면서 ‘(외국에서 돈을 버는) 박지성은 무시하고,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에서 일하는) 슈랑카를 대우하는 이유’에서 보듯, 친숙한 사례를 동원한 까닭에 핵심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하기에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도 키울 수 있다. 여기에 대안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문·사·철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경제 하면 낮춰보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가 일반화되면서 경제상식은 누구나 갖춰야 할 ‘교양’의 영역이 됐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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