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0

2005.11.15

위대한 뉴턴에게도 수많은 반대자가 있었다

  • 미국 MS수학연구소 선임연구원/ jehkim@microsoft.com

    입력2005-11-09 15: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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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뉴턴에게도 수많은 반대자가 있었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뉴턴(사진)의 강의는 종종 몇 명의 수강생만을 상대로 진행됐다. 학생들의 인기를 얻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없이 뉴턴은 오직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이야기하는 데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들이 진리보다는 재미와 학점에 더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구상에 수많은 사과가 땅으로 떨어졌지만 그 사과에 무슨 힘이 작용하는지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시장에서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가 일반인들의 관심이었다는 얘기다.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학 교수인 아이작 배로는 뉴턴의 천재성을 간파하고 그에게 교수직을 넘겨주기 위해 사임할 정도였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가운데 공부를 하던 뉴턴에게 안정적인 수입을 주기 위한 스승의 배려였던 것. 불과 스물여섯이란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뉴턴은 대학에서 자유롭게 실험하면서 자신의 천재성을 증명할 기회를 얻은 셈이 됐다.

    하지만 이 야심찬 젊은 교수는 3년 후 크게 좌절하고 만다. ‘빛과 빛깔의 색이론’이라는 광학에 관한 논문을 영국 왕립학술원에 제출하면서 학자들에게서 예상치 못한 비난과 공격에 직면한 것. 뉴턴은 학자들이 편견 없이 판단해줄 것으로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뉴턴의 이론은 당시 유명한 과학자이자 왕립학술원의 핵심 인물인 후크(Hooke)가 내놓은 빛에 대한 이론과 정반대되는 학설이었기 때문에 학자들의 조롱거리 대상이 되고 말았다. 지금으로 치자면 그의 웹 사이트는 넘치는 비난과 욕설 글로 인해 서버가 다운되고 폐쇄되고 만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진리가 늘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란 늘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마련이다. 진리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편리에 따라 변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조용히 사색을 즐기며 사물의 현상을 파고들던 뉴턴과 사교적이며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던 후크는 그 후로도 여러 분야에서 치열한 논쟁이 불가피했다. 뉴턴이 중력에 대한 이론을 발표하자 후크는 뉴턴이 자신의 생각을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후크는 중력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이야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적 계산이나 증명조차 남기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의 충돌은 뉴턴이 자신의 최대 업적인 프린키피아(Principia,1687)의 출판을 포기하려 했을 정도로 격렬하게 진행됐다.

    뉴턴에게는 유난히 반대자들이 많았다. 그들의 무기는 자신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많은 지지자들일 뿐, 그들에게서 체계적으로 반박하는 논리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편을 만드는 것에만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이 거짓말이든 폭력이든 상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희생이나 전체 시스템에 대한 해악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작금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언뜻 보고 판단하는 우리 문화의 단면이라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과학자에게 재정적 지원과 높은 지위를 부여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매우 근본적인 문제다. 비상식적이라고 생각되는 말일지라도 상대의 말을 찬찬히 듣고 논리적 토론으로 대안을 찾아가려는 인내심만이 과학 천대 현상,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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