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3

2012.11.19

‘스리 高’ 태풍에 평생이 날아갈라

퇴직 후 창업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2-11-19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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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 高’ 태풍에 평생이 날아갈라
    “이번 달에 사장으로 승진했어!”

    지난해 20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둔 김희철(54) 씨는 1년여 준비 끝에 경기 성남시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직장에 다닐 때 마지막 직급이 부장이었던 그가 어엿한 사장이 됐으니 승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김씨가 처음부터 음식점을 차리려 했던 건 아니다. 퇴직 후 자신의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나이와 체면이 걸림돌이었다. 괜찮은 직장은 나이가 많아서 안 되고, 그나마 받아준다는 곳은 한참 어린 사람을 상사로 모셔야 해 자존심이 상했다. 급여도 문제였다. 하는 일은 전 직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급여는 1/3분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 결국 김씨는 이 꼴 저 꼴 안 보고 살려고 스스로 사장이 되는 길을 택했다.

    자영업자 700만 시대가 열렸다. 9월 고용동향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영업 부문 종사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만 명 늘어나 714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취업자 수가 25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자영업자 비중이 28.6%나 된다.

    망하면 재기 기회는 없어

    이처럼 증가세를 보이는 최근의 자영업 창업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김씨처럼 50대 이상 자영업 종사자가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영업자는 대부분 40대였으나 2011년 들어 50대가 추월했다. 50대 자영업자 비율은 이미 30%를 돌파해 연령대별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여기에 60대까지 포함하면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중·고령자가 절반 이상이다. 중·고령자의 자영업 부문 유입이 늘면서 자영업 종사자의 평균연령도 상승해, 임금근로자와의 나이 차가 벌이지고 있다. 자영업자의 평균연령은 51.3세로 임금근로자(41.2세)보다 10세나 많다. 자영업 종사자의 고령화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3∼2020년 은퇴가 예상되는 베이비부머를 133만 명으로 추산한다.



    ‘스리 高’ 태풍에 평생이 날아갈라

    6월 24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소매점이 폐업세일을 하고 있다.

    50대 자영업 종사자 증가에는 확실히 베이비부머의 대량 퇴직이 한몫한 듯하다. 1955∼63년 태어난 베이비부머는 그 수가 712만 명이나 된다. 베이비부머가 비록 정년을 맞아 직장을 떠나긴 하지만 노후 준비 부족과 자녀 부양 부담으로 여전히 경제활동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재취업 문턱이 높아지면서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자영업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이 같은 50대 이상 중·고령자 창업의 가장 큰 문제는 자칫 실패할 경우 재기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에야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50대 이후 창업자는 그러기 어렵다. 미흡한 경영능력과 사업부진으로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둔 돈을 모두 소진하면 빈곤층으로 곤두박질치는 건 순식간이다. 베이비부머의 창업 러시는 자영업 시장의 구조적 왜곡을 가져온다. 지금 자영업 시장엔 장사는 안 되는데 임대료는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자영업 창업이 늘어나면 경쟁이 격화하고, 자연스레 경쟁에서 도태되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게 자영업 종사자 수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여기에 맞춰 임대료도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불황이 계속되는 와중에 베이비부머의 대량 퇴직으로 자영업 창업이 꾸준히 늘면서 이 같은 시장 균형이 깨지고 있다. 창업자가 늘면서 경쟁이 격화하고 폐업이 증가하는 것은 전과 똑같다. 하지만 임차인들이 망해나가는데도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낮추지 않는다. 오히려 자영업 창업을 하려고 가게를 찾는 사람이 줄을 서기 때문에 임대료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치솟은 임대료는, 건물을 빌려 창업한 사람을 실패로 내몬다. 악순환이다.

    ‘스리 高’ 태풍에 평생이 날아갈라
    고연령, 고부채, 고밀도

    ‘스리 高’ 태풍에 평생이 날아갈라
    최근 자영업 창업이 갖는 두 번째 특징은 특정 업종으로 쏠림 현상이 심하다는 점이다. 주로 음식점, 주점, 소매업에 집중되고 있다. 2002년 이후 10년간 음식점은 110만 개가 문을 열어 전체 창업의 29.3%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주점·유흥 서비스 창업은 45만 개(12.0%), 의류 및 잡화점도 39만 개(10.4%)나 됐다. 개인사업자의 업종별 비중을 살펴봐도, 음식점이 24.6%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다. 개인사업자 4명 가운데 한 명이 식당을 운영하는 셈이다.

    이렇게 특정 업종에 집중되다 보니 경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 KB금융지주연구소에 따르면, 음식점의 경우 창업 후 3년이 안 돼 휴·폐업하는 비율이 52.2%를 넘는 등 생존율이 20%가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점·유흥 서비스는 사정이 더 나쁘다. 3년 이내 휴·폐업하는 곳이 62%나 됐으며, 생존율은 11%밖에 안 된다. 개인사업자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평균 생존기간은 3.4년, 생존율도 24.6%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자영업 창업이 갖는 세 번째 특징으로 높은 부채비율을 들 수 있다. 경쟁이 격화하면서 살아남으려면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대출을 받는 것이다. 자영업자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 부채비율이 2010년 145%에서 2011년 159%로 급상승했다. 이뿐 아니라 자영업에 종사하는 가구주의 평균 부채규모도 6478만 원으로, 상용 근로자(3326만 원)의 2배에 육박한다. 부채가 많으니 자연히 원리금 상환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만성적인 생활불안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처럼 베이비부머가 직장에서 퇴직한 다음 자영업 사장으로 사는 것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나이가 많아 실패할 경우 재기 기회가 많지 않고, 음식점 같은 특정 업종으로의 쏠림이 심해 경쟁이 치열한 데다, 살아남기 위해 많은 부채를 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지금 창업을 앞둔 베이비부머의 현실이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같은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특징을 ‘고연령화, 고밀도화, 고부채’라는 세 가지 말로 요약했다. 남들이 한다고, 혹은 자존심 때문에 무턱대고 창업했다간 고연령화, 고밀도화, 고부채라는 ‘스리 고’에 독박을 쓸지도 모른다. 따라서 퇴직 후 창업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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