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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진한 고깃국물 하얀 쌀밥 끼니 아닌 약

서울 곰탕

  •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진한 고깃국물 하얀 쌀밥 끼니 아닌 약

진한 고깃국물 하얀 쌀밥 끼니 아닌 약

곰탕을 토렴하는 모습(상자 안)과 내장, 살코기로 곰탕 국물을 내는 서울 중구 수하동 ‘하동관’.

하얀 쌀밥에 뽀얀 사골국물은 한국인이 오랫동안 꿈꿔온 최고 밥상이었다. 소뼈를 뭉근하게 오래 끓이면 뼛속 젤라틴이 물속으로 서서히 빠진다. 고소하고 구수한 맛과 하얀색을 숭상한 백의민족에게 곰국은 영원한 베스트셀러였다. 곰국이나 곰탕은 음식을 넘어 약에 가까웠다. 우리 어머니들은 큰일을 앞둔 자식이나 남편에게 사골곰탕을 끓여 먹었다. 하룻밤을 꼬박 세워 제대로 우린 사골국물은 엄마 손맛의 결정체였다.

최근 사골과 우족, 꼬리 가격이 2005년에 비해 50%에서 83%까지 하락했다. 식생활의 서구화로 한국인 밥상의 중심에 있던 탕 요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곰탕이나 곰국이 같은 뜻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곰국이란 말은 집 안에서 많이 사용했다. 곰탕이란 단어는 1940년대 등장한다. 그전에 곰탕은 곰팡이란 뜻으로 사용됐다. 곰탕을 공탕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1768년 이억성이 엮어 간행한 몽골어 학습서 ‘몽어유해(蒙語類解)’에는 ‘공탕(空湯)’이 나온다. 공탕을 ‘고기 삶은 물’이라는 해석과 함께 몽골어로 ‘슈루’라고 적고 있다. 1788년 나온 외국어 학습서 ‘방언집석(方言集釋)’에는 공탕을 ‘고기믈’(고기물)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한나라에서는 ‘콩탕’, 청나라에서는 ‘실러’, 몽골에서는 ‘슐루’라고 부른다고 적고 있다.

곰탕을 공탕으로 보는 설이 가장 강력하지만 곰탕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곰탕은 ‘고(膏)’나 ‘고음(膏飮)’에서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고는 고기기름이 물에 섞여 나온다는 뜻이다.

곰탕이란 단어를 쓴다고 다 같은 음식을 내는 것은 아니다. 국물을 사골로 낸 사골곰탕, 꼬리로 만든 꼬리곰탕, 도가니로 맛을 낸 도가니곰탕 등 부위에 따라 음식 성격과 내용이 달라진다.



내장과 살코기로 국물을 내는 집도 있다. 1939년 서울 중구 수하동에서 창업한 ‘하동관’이 대표적이다. 암소고기와 내장이 중심이 된 ‘하동관’의 국물은 진하면서도 이물질이 없다. 진한 고깃국물의 진수가 이곳 곰탕 한 그릇에 고스란히 담겼다. 진한 국물을 먹다 느끼한 맛이 감지되면 ‘깍국’(깍두기 국물의 약자)을 시켜 먹는다. 깍국을 주문하면 노란 주전자를 들고 종업원이 나타난다. 붉은 깍두기 국물이 순식간에 고깃국물을 붉게 물들인다. 진한 고기 맛에 상큼한 신맛과 단맛이 곰탕을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이끈다. 진한 고깃국물이 한순간 상쾌해진다.

중구 북창동 한국은행 뒷길에는 최근 ‘애성회관’이라는 곰탕의 신흥 명가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하동관’처럼 놋쇠그릇에 하얀 밥과 국수가 양지머리, 갈빗살 한 점과 함께 그릇을 3분하고 있다. 엷은 갈색이 도는 국물이 그릇과 잘 어울린다. 기름을 최대한 빼낸 맑은 고깃국물에 간장으로 간을 한 독특한 곰탕이다. 기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경쾌한 고깃국물에 간장의 은근한 단맛이 제법 궁합이 잘 맞는다. 식은 밥에 국물을 말아내 국과 밥이 먹기 좋은 적당한 온기를 품고 있다. ‘하동관’ 곰탕이 거물 정치인 같은 품격과 진한 맛을 낸다면 ‘애성회관’ 곰탕은 날렵한 몸매를 갖춘 정치 신인처럼 신선하고 거침없다. 갈빗살과 양지머리의 맛이 진하고 깊다.



주간동아 928호 (p80~80)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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