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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대서 만나는 셰익스피어 또 다른 매력 발산하죠”

셰익스피어 대가 여석기 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인터뷰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무대서 만나는 셰익스피어 또 다른 매력 발산하죠”

“무대서 만나는 셰익스피어 또 다른 매력 발산하죠”
여석기 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사진)은 1922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우리 나이로 올해 아흔셋. 일제강점기 일본 도쿄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46년부터 대학 강단에 섰으니, 학계에 나선 지도 이제 곧 70년이다. 그러나 꼿꼿한 걸음걸이와 안경 너머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에서는 세월을 느끼기 어려웠다.

활동 면에서도 그렇다. 그는 2012년 아들인 여건종 숙명여대 영문과 교수와 함께 ‘햄릿’ 번역서를 펴내고, 2008년 역시 ‘햄릿’ 연구서인 ‘나의 햄릿 강의’를 출간한 ‘현역’ 연구자다. 지금도 일주일에 사흘씩 국제교류진흥회 사무실에 출근해 우리 문학의 해외 번역 지원 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여 이사장을 만난 건 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셰익스피어 전문가기 때문. 올해는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지 450주년 되는 해다. 국내외에서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열린다. 우리나라에 셰익스피어를 알리는 데 앞장섰고, 특히 연극계와의 교류를 통해 ‘살아 숨쉬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게 한 주역인 여 이사장은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1964년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이벤트

“1962년 서울 남산에 드라마센터가 문을 열었어요. 개관 기념작이 ‘햄릿’이었지. 그 작품을 번역하면서 연극계와 가까워졌어요. 그때까지는 (당시 ‘햄릿’ 연출을 맡은) 유치진 선생과 일면식도 없었는데, 불쑥 연락을 하셨더라고. ‘햄릿’ 번역을 좀 해달라고요. 내가 대학에서 셰익스피어 강의를 하니 잘하겠지 생각한 모양이에요.”



여 이사장은 “그분 참 재미있지?” 하며 미소 짓더니 “신기한 건 나도 거절을 안 했다는 거요”라며 껄껄 웃었다. 그의 회상 앞에서 50여 년 전 일화가 마치 어제일인 양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마침 그 2년 뒤인 1964년은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이었다. 해방 후 막 태동한 우리나라 영문학계와 역시 조금씩 기지개를 켜던 연극계 모두는 이 타이밍을 ‘발전의 전기’로 삼았다. 여 이사장이 양쪽에 다리를 놓으며 셰익스피어 축제를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64년 ‘셰익스피어’로 뭉친 이들이 이뤄낸 성과는 놀라웠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활동하던 극단은 다 셰익스피어 한 작품씩 들고 나와서 공연했어요. ‘햄릿’부터 ‘리어왕’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까지 다양한 작품이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무대에 올랐죠. 학자들은 작품 번역과 세미나, 강연 등을 도맡았고요.”

그해 봄 서울에서 열린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은 관람객 수가 5만 명이 넘을 만큼 성황을 이뤘다. 여 이사장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열린 최초의 공연 축제일 것”이라며 “지금 돌아보면 우리가 정말 셰익스피어 탄생을 축하한 건지, 아니면 셰익스피어를 핑계 삼아 한 번 잔치를 벌이고 싶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축제’의 여운은 오래 갔다. 출판계가 잇달아 셰익스피어 전집을 내놨고, 희곡과 공연에 대한 대중 관심도 높아졌다. 여 이사장은 이에 발맞춰 연극인들과 함께 ‘극작 워크숍’을 만들어 우리나라 극작가를 키우는 데 앞장서고, 자비로 연극 비평잡지 ‘연극평론’도 펴냈다. 이후 10년간 여 이사장이 이끌어간 이 잡지는 우리나라 연극계에 본격적인 평론 문화를 싹트게 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여 이사장은 “당시 매호 500권씩 발행했는데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것도 힘들었다. 많은 분이 고료를 받지 않고 글을 써주는 등 도와줬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돌아보면 ‘겁 없는 아마추어’였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했지만, 우리 연극계에서 그의 이름은 결코 ‘아마추어’가 아니다. 1997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제정한 ‘여석기 연극평론상’은 연극비평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다.

“글쎄, 권위는 모르겠고…. 그냥 상 중 하나예요.”

‘여석기 연극평론상’에 대해 물었을 때 여 이사장이 내놓은 답변이다. 그는 시종 겸손했다. 전문가로서 셰익스피어의 매력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학교 선생(고려대 교수)을 오래 하고 셰익스피어를 줄곧 읽다 보니 언제부턴가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데, 셰익스피어는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에요. 그냥 우회적으로 얘기하자면, 요새 고전이 통하지 않는 시대잖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셰익스피어를 얘기하고, 세계 어느 극장에서는 꼭 셰익스피어를 공연하고 있죠. 그게 바로 셰익스피어의 힘이고 매력인 거예요.”

“역시 햄릿은 햄릿”

그에게도 셰익스피어는 그런, 평생을 함께한 이름이다. 그가 연극에 관심을 둔 건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시절이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모스크바예술극장에 대한 책을 접했다.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 안톤 체호프와 모스크바예술극단 예술가들이 함께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책에 그는 매혹됐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직접 공연을 보는 건 꿈도 꾸기 어려웠지만 차츰 연극에 빠져들었다. 우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일본 헌책방 거리를 걷다가 ‘시어터 아트(theater art)’라는 미국 연극잡지 6년 치가 나와 있는 걸 보고 등록금을 털어 통째로 사들이기도 했다. 이렇게 차곡차곡 마련한 희귀 자료는 2002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기증했다.

“생각해보면 저는 연극을 ‘정도’가 아니라 ‘사도’로 만난 거예요. 책을 통해 상상만 계속한 거지. 그러다 보니 마음이 더 깊어졌을 수도 있어요. 연극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셰익스피어를 알게 됐죠. 당시 도쿄대에서 40대 젊은 교수가 셰익스피어 강의를 했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었어요. 아직도 그때 들은 ‘리어왕’ 수업이 생각나요.”

이후 여 이사장은 평생 셰익스피어를 읽고, 감상하고, 연구하고, 강의했다. 특히 처음 번역해 무대에 올린 ‘햄릿’은 평생의 텍스트다. 그는 “햄릿은 맷집이 대단하다. 수많은 연출가가 변형을 가해도 고유한 힘이 살아 있다”며 “지난해 말 정보석이 주연한 연극 ‘햄릿’을 보고 또 한 번 ‘역시 햄릿은 햄릿’이라고 느꼈다”고 평했다.

“햄릿은 ‘추하고 더러운 몸덩어리’가 ‘녹고 녹아 이슬이 되어’버릴 것을 한탄하는 연약하고 결벽한 귀공자인 동시에 ‘내 운명이 나를 부른다. 온몸의 모든 혈관에서 힘이 솟아나는구나. 놔라 놔. 다시 막으면 목을 베겠다’고 단호하게 결의를 표시할 줄 아는 행동성도 갖고 있죠. ‘햄릿’ 읽기의 묘미는 그 내면의 복잡함, 불투명성 또는 모호함에 빠져드는 겁니다.”

여 이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셰익스피어 작품은 텍스트뿐 아니라 무대를 통해 감상할 때 또 다른 매력을 전해준다”며 “올해 더 많은 이가 극장에서 셰익스피어를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문학과 연극, 두 분야의 기틀을 잡는 데 평생을 바쳐온 노교수의 당부다웠다.



주간동아 2014.02.24 926호 (p56~57)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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