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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No 2가 아닌 예능으로 제 2전성기”

방송인으로 변신 前 프로게이머 홍진호

  • 구가인 동아일보 기자 comedy9@donga.com

“No 2가 아닌 예능으로 제 2전성기”

“No  2가 아닌 예능으로 제 2전성기”
혹시 홍진호(32)를 아는가. 만일 ‘그렇다’고 답했다면 적어도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스타크래프트 세대거나 케이블채널 tvN ‘더 지니어스’를 시청했거나.

‘폭풍 저그’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홍진호는 이윤열, 임요환과 함께 프로게이머 1세대로 꼽힌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에서는 이윤열이나 임요환에 밀리는 편이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프로게이머로 활동했지만 메이저대회에선 번번이 우승에 실패해 ‘2의 화신’ ‘준우승의 아이콘’으로도 불렸다.

그가 요즘 ‘예능 꿈나무’로 주목받는다. 홍진호는 최근 MBC TV ‘나 혼자 산다’를 비롯해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더 지니어스’는 그 계기가 된 프로그램이다. ‘현실의 축소판’이라는 이 게임 서바이벌에서 그는 정치와 처세에 기대는 대신 온전히 자신의 전략을 바탕으로 게임에 임해 시청자를 매료시켰다.

지난해 시즌1인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에서 최종 우승했을 때 홍진호는 “내가 했던 일들이 결코 틀린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소감은 만년 2인자였던 그를 기억하는 스타크래프트 팬 사이에서 널리 회자됐다. 그는 시즌2인 ‘더 지니어스 : 룰 브레이커’에도 출연해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지만 연합과 정치에 밀려 시즌 중반 탈락했다. 당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정의가 무너졌다’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더 지니어스’ 시청률은 홍진호가 탈락한 후 반 토막이 났다.

‘더 지니어스’는 인생 터닝 포인트



지난달 말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홍진호는 ‘더 지니어스’를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된 고마운 방송”이라면서도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 ‘정의의 화신’이 돼버린 것 같아 앞으로 이미지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 두뇌 플레이 면에서는 시즌1, 2 출연자 중 단연 빛났다. 혹시 ‘더 지니어스’와 스타크래프트 사이에 유사한 부분이 있나.

“꼭 그렇진 않다. 시즌2에 함께 출연한 (임)요한 형은 프로그램 초반 많이 헤매지 않았나. 되레 ‘더 지니어스’는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나는 발음도 부정확하고 말주변도 별로라 그것도 쉽지 않았다. 다만 내 경우 게임 스타일이 ‘더 지니어스’와 잘 맞는 것 같다.”

▼ 임요한과 비교해 게임 스타일이 어떻다는 건가.

“게이머 시절 임요한 선수가 철저히 준비하고 연습하는 타입이었다면 나는 임기응변에 강했다. 이런 성향 때문에 팬들에게 만날 논다고 비난받았다. 연습보다 전략 분석에 집중하는 편이다. 어설프더라도 남들이 생각 못 하는 전략을 짜는 것을 좋아한다. 만일 내가 100게임 정도의 경험밖에 없는데 150게임 경험을 가진 이를 상대해야 한다면 정석으로 대응하기보다 상대가 예상치 못한 방식을 찾는 게 옳다고 본다. 내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대응하면 상대는 당황하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당황한 상대의 행동 패턴은 예상 가능할 때가 많다.”

정석에서 벗어난 전략을 선호하는 것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전 출신인 홍진호는 고교 시절 PC방을 드나들며 게임 기술을 익혔다. 용돈 벌이를 위해 나간 게임대회에서 줄줄이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는 고교 3학년이던 18세 때 대입 준비에 매진하는 대신 프로게이머 길을 택했다. 그는 “남들은 논다고 했지만 내가 이 직업을 비전 있게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 결국 게이머로 성공했다.

“쉽진 않았다. 2000년대 초반엔 e스포츠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던 시기라 정말 열악했다. 프로팀이라고 들어갔는데 개인용 컴퓨터(PC)도 없고 주로 PC방에서 손님이 없는 시간에 게임 연습을 하며 지냈다. 배가 고파 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물론 e스포츠 산업이 성장하면서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그 대신 경쟁이 더 치열해졌지만.”

▼ 군대를 다녀온 후 프로팀에 복귀했다가 얼마 되지 않아 은퇴했다. 당시 스물아홉이었는데 너무 어렸던 거 아닌가.

“요즘 e스포츠에서는 22~23세가 노장 취급을 받고, 27세면 은퇴 얘기가 나온다. 나와 실력이 비슷한 연습생이 있다면 당연히 팀 처지에선 한계가 보이는 나보다 어린 유망주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밖에 없지 않겠나.”

▼ 스타크래프트로 유명한 게이머 중에는 테란 유저가 많다. 이윤열, 임요한도 모두 테란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저그 유저다. 이유가 있나.

“No  2가 아닌 예능으로 제 2전성기”

프로게이머 시절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참가한 홍진호 씨(왼쪽)와 그에게 제2 전성기를 열어준 케이블채널 tvN ‘더 지니어스’의 한 장면.

“게임이건 인생이건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성격이 저그 공격성과 잘 맞는 거 같다. 그런데 저그를 처음 택한 이유는 좀 썰렁하다. 캐릭터상 테란은 인간이고 프로토스는 외계인이며 저그는 악당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만화영화 속에서 만날 선이 승리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악당이 돼 다 이겨야지 했다. 그래서 결국 늘 준우승만 한 것 같다. 항상 정의가 승리하는 게 맞다.”

게임 관련 끈은 이어갈 것

누리꾼이 직접 편집하는 위키백과 사이트에는 ‘홍진호와 2의 관계’라는 항목이 있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홍진호는 늘 준우승에 머문 것 외에도 2남 중 둘째며, 프로게이머 중 2번째 억대 연봉자, 2번째 스타리그 통산 100승 달성 기록 등 2와 인연이 깊다. 설명 중에는 ‘스타크래프트 은퇴 직후 네이버 인기검색어 순위에서 ‘개기월식에 밀려 2위’ ‘공군 소속 당시 휴가 복귀를 위해 열차를 예매했는데, 22일 2호차 22번 좌석이 예매됐다’ 같은 믿기 힘든 우연도 있다(홍진호는 모두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실 ‘2인자’라는 꼬리표는 홍진호에게 가장 아픈 부분이기도 하다. ‘더 지니어스’ 시즌1 우승이 더 값진 이유이기도 하다.

▼ 시즌1 최종 우승 때 기분이 어땠나.

“당연히 좋았다. 사실 게이머 시절엔 우승하는 애들이 정말 부러웠다. 우승한 친구가 우는 것조차 부러웠다. 언젠가 나도 우승하면 꼭 오열해야지 계획도 여러 번 세웠다. 하지만 결국 한 번도 제대로 된 1등을 못 했고 그때 상처가 가슴에 굳어 풀리지 않았다. ‘더 지니어스’만은 꼭 우승해야 한다고 각오를 단단히 했다. 다만 결승전에서 붙은 김경란 아나운서가 승부보단 게임을 즐기자는 쪽이라 승부욕에 불타오르던 나로서는 좀 심심하게 끝난 건 있다.”

▼ 방송 출연 후 많은 게 변했을 거 같다.

“맞다. 게이머 은퇴 이후 팬들과 만나는 일이 드물었는데 요즘엔 알아봐주는 분이 많고, 선물도 꽤 받는다. 이미지 면에서는 게이머 시절보다 오히려 나아졌다. 예전에는 희화화된 부분이 많았다면 요즘엔 나를 스마트하게 보니까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웃음).”

▼ 앞으로 계획은.

“일단은 방송 프로그램 제안이 오는 대로 다 즐겨볼 생각이다. 그렇다고 방송인으로 전업하겠다는 건 아니다. 민폐가 되겠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도 있다. 아직 젊으니까 이것저것 해보려 한다. 최근에는 직접 온라인 게임 대회를 기획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게임과 관련한 끈은 놓지 않을 거다. 지금 나 자신을 있게 해준 거니까.”



주간동아 2014.02.24 926호 (p42~43)

구가인 동아일보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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