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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쉬 감췄던 고질병 확 도려내나

‘안현수 후폭풍’ 체육계 개혁 도마 위…파벌 싸움·대표 선발 등 메스 댈 듯

  • 김도헌 스포츠동아 스포츠 1부 기자 dohoney@donga.com

쉬쉬 감췄던 고질병 확 도려내나

쉬쉬 감췄던 고질병 확 도려내나

2006 토리노 겨울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따고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는 안현수(왼쪽), 이호석 선수.

2014 소치 겨울올림픽에서는 유독 이변이 많이 나왔다. ‘외계인’으로 불릴 만큼 압도적인 스노보드 실력을 자랑하던 숀 화이트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고, ‘흑색 탄환’이란 별명을 가진 샤니 데이비스(이상 미국)는 주종목인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8위에 그쳤다. 개막 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각 종목 ‘황제’가 줄줄이 메달권에서 탈락했다. 각각 올림픽 3연패를 노렸던 화이트와 데이비스가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진 별’이라면,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뜬 별’도 있다. 아시아인 최초로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딴 하뉴 유즈루(일본)가 대표적이다.

‘다시 살아난 별’도 있다. 8년 만에 두 번째로 나선 올림픽 무대에서 쇼트트랙 금메달을 차지하며 러시아의 국민 영웅으로 등극함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빅토르 안(29·한국명 안현수)이 주인공이다.

안현수와 마이클 조던

안현수는 2006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 한국에 금메달 3개를 안긴 ‘쇼트트랙 황제’였다. 그러나 그는 2011년 한국 국적을 버리고 러시아를 선택했다. 소치에서 남자 1500m 동메달을 딴 뒤 안현수가 1000m에서 기어코 이번 대회 첫 금메달을 목에 걸자 미국의 한 언론은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한 것은 마이클 조던이 미국 농구대표팀과 불화를 빚은 끝에 쿠바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한 것과 비슷한 수준의 사건”이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두 번째 조국’ 러시아에 쇼트트랙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안현수는 ‘러시아인 빅토르 안’으로서가 아니라 ‘한국 출신 안현수’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안현수의 금메달은 극도의 부진을 보인 한국 쇼트트랙 남자대표팀의 처참한 상황과 맞물려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을 향한 거센 비난으로 이어졌다. 빙상연맹 홈페이지는 비난 글로 서버가 다운되기에 이르렀고, 홈페이지 복구가 늦어지면서 고의 폐쇄 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한동안 홍역을 앓았다.



안현수는 올림픽 3관왕에 오르기 전인 2005년 겨울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금메달 양보를 종용한 대표팀 선배에게 폭행을 당했다. 한국 쇼트트랙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체육대(한체대)파’와 ‘비한체대파’로 나뉘어 파벌 싸움이 횡행했는데,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폭행이었다. 토리노 겨울올림픽 때도 문제가 있었다. 당시 올림픽을 앞둔 남녀 대표팀은 ‘한체대파’와 ‘비한체대파’로 나뉘어 따로 대비 훈련을 했다. 안현수는 대회 전까지 여자팀과 훈련했고, 여자대표팀 진선유와 변천사는 남자팀에서 훈련했다.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던 뿌리 깊은 파벌 싸움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2006년 4월이다. 국제빙상연맹(ISU)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 안현수가 개인종합 4연패를 달성하고 귀국하자, 안현수 아버지 안기원 씨는 “외국 선수들보다 한국 선수들이 더 심하게 현수를 견제했다. 선수들과 코치가 짜고 현수가 1등 하는 것을 막았다”며 파벌 싸움을 폭로했다.

빙상장 밖에서 화제를 뿌리며 부침을 겪던 안현수는 2008년 1월 대표팀 훈련 도중 왼쪽 무릎 관절이 골절돼 후방십자인대가 파열하는 부상을 당했다. 후유증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나서지 못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낸 그는 2009년과 2010년 초에 걸쳐 진행된 밴쿠버 겨울올림픽 대표선발전에 출전했지만 결국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이때 대표 선발 과정에서 안현수가 빙상연맹 고위 관계자에게 밉보여 상대적으로 손해를 봤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쉬쉬 감췄던 고질병 확 도려내나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이 압도적인 기량으로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을 획득했다.

안현수의 러시아 진출설이 나돈 것은 밴쿠버 겨울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2009년부터였다. 쇼트트랙 프로화를 준비하던 러시아에서 그의 영입에 관심을 나타낸 것이 첫 움직임이었다. 2010년 말 소속팀 성남시청이 해체돼 둥지를 잃은 안현수는 러시아와 뒤늦게 관심을 나타낸 미국까지 염두에 두고 해외 진출을 저울질했고, 결국 2011년 1월 러시아를 선택했다. 미국을 더 선호했던 안현수가 러시아로 방향을 튼 결정적 이유는 별다른 조건을 내밀지 않은 미국과 달리 러시아가 프로 못지않은 좋은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현수의 귀화 이유는 표면적으로 보면 소속팀 해체지만, 뿌리 깊은 파벌 싸움에 대한 회의와 현 빙상연맹 임원인 A씨와의 악연이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안현수는 16세 때인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당시 A씨 덕에 세계랭킹 2위 이승재와 4위 민룡 대신 대표팀에 뽑히는 ‘혜택’을 입었다. 안현수가 ‘파벌 싸움의 일방적 희생양’이라고 불리지만, 그도 한때 파벌 싸움의 혜택을 보기도 했다는 견해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안현수를 선발해 특혜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A씨는 그러나 2007년 안현수가 한체대 졸업 후 자신의 바람과 달리 성남시청에 입단하자 의도적으로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 안현수 측 주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현수가 1000m 금메달을 따기 이전인 2월 13일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안현수 선수의 귀화가 체육계 전반에 퍼져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지적대로 그동안 한국 쇼트트랙은 파벌 싸움과 성적지상주의, 고질적인 구타문제 등이 판치는 ‘복마전’ 양상을 보였다. 2010년에는 서로 짜고 특정 선수를 밀어주는 ‘짬짜미 파문’이 일기도 했다. 소치 겨울올림픽을 목전에 둔 1월에는 성추행 지도자를 대표팀 코치로 발탁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비정상의 정상화

그러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빙상연맹은 악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진정성 없는 사과와 꼬리 자르기에만 급급했다. 이젠 A씨의 전횡으로 한국 쇼트트랙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정부는 들끓는 여론을 감안해 소치 겨울올림픽이 끝나면 빙상연맹에 대한 전면 감사에 돌입키로 했다. 그동안 문제가 된 각종 비리와 파벌 싸움, 국가대표 및 지도자 선발 방식 등 전반적인 시스템에 칼을 댈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부터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목표 아래 임원 중임 제한 등 경기단체의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한 개혁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었다. 개혁에는 언제나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따르게 마련. 근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체육계 일부에선 체육계만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정부의 강공책이라며 반발 움직임도 보인다.

그동안 체육계 개혁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엔 대통령이 직접 개혁 진행 사항을 챙기는 등 과거 정권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더구나 ‘안현수 후폭풍’으로 정부는 체육계 개혁 드라이브를 밀어붙일 수 있는 여론의 강한 지지까지 얻었다. ‘러시아인 빅토르 안의 금메달’이 대한민국 체육계를 개혁할 기폭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번 기회를 통해 비정상적·비상식적인 한국 쇼트트랙뿐 아니라 그동안 고질적 병폐를 보여온 체육계 일부가 철퇴를 맞을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14.02.24 926호 (p60~61)

김도헌 스포츠동아 스포츠 1부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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