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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칵테일 | 아이리시 카 밤

기네스에 위스키 투하 이거 ‘폭탄주’네

영화 ‘래더 49’에서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는 이의 술로 등장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기네스에 위스키 투하 이거 ‘폭탄주’네

영화 ‘래더 49(Ladder 49)’는 제이 러셀 감독의 2004년 작품으로, 소방관의 보람과 애환을 소재로 했다. 화재 영화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타워링’(1974)을 비롯해 ‘분노의 역류’(1991), 그리고 국내 영화 ‘리베라 메’(2000), ‘싸이렌’(2000) 등과 넓은 의미에서 같은 범주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미국 볼티모어의 대형 곡물창고에서 발생한 화재에서 시작된다. 잭(호아킨 피닉스 분)은 화재를 진압하려고 투입된 소방대원 중 인명구조가 주 임무인 래더 49팀 소속이다. 위험한 구조작업 도중 잭은 추락사고로 잠시 의식을 잃고 만다. 그때부터 영화는 그가 처음 소방대에 합류했을 당시와 현재의 절박한 상황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진행된다.

잭은 첫 출근 날, 사무실에서 팬티 차림으로 위스키에 취해 있는 소방대장 마이크 케네디(존 트라볼타 분)를 만난다. 그러나 잭은 곧 소방대가 케네디 대장을 중심으로 화목하게 지내면서 가족 같은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원들은 수시로 엉뚱한 짓을 일삼는 장난꾸러기들이지만 일단 사건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프로의 자세를 보인다.

어느 날 잭은 아리땁고 매력적인 아가씨 린다(재신다 배럿 분)를 만나 사귀다 결혼에 이르고, 1남1녀의 어엿한 아버지가 된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아내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잭은 가정과 직장에서의 평범한 행복에 진정으로 감사한다. 그러나 소방관이라는 직업 특성상 항상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인명구조 소방관으로서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던 그도 결국 곡물창고 화재 현장에서 최악의 추락사고를 당하고 만다.

아일랜드 슬픈 역사에서 비롯



영화에서 칵테일이 등장하는 대목은 잭이 린다를 만나 첫 데이트를 한 며칠 뒤 일이다. 어느 바에서 볼티모어 소방대원들이 즐겁게 회식하던 중 잭이 우연히 맞은편에 있는 그녀를 발견한다. 잭은 린다를 케네디 대장과 동료들에게 소개한 뒤 자리에 합석하게 한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옆자리 동료가 “이런 술을 본 적 있느냐”며 린다에게 앞에 있는 술을 권한다. 그러자 케네디 대장이 정색하며 마시지 말라고 한다.

기네스에 위스키 투하 이거 ‘폭탄주’네

영화 ‘래더 49’ 포스터.

호기심이 잔뜩 생긴 린다가 무슨 술이냐고 묻자 잭은 “아이리시 카 밤(Irish Car Bomb)이라는 칵테일”이라고 대답하면서 “일단 입에 대면 단숨에 들이켜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녀는 흥에 겨워 기꺼이 술을 마신다.

술을 비운 린다는 도대체 술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물으면서 “내일 큰일 났다”라는 말로 순식간에 취한 상태를 표현한다. 그러자 술을 권했던 동료는 흐뭇한 표정으로 대원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아이리시 카 밤을 주문한다. 이후 술 마시기 내기까지 이어지며 그들은 밤새 즐겁게 술을 마신다.

이렇게 인상 깊게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리시 카 밤’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 모습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 느낌이 드는 칵테일이다. 이 칵테일은 아이리시 스타우트 맥주, 아이리시 크림, 아이리시 위스키 등 3가지 재료로 만드는데, 맥주에 위스키를 섞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폭탄주와 비슷하다. 단 아이리시 카 밤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모든 재료가 아일랜드산이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대표적으로 아이리시 스타우트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기네스 맥주를 사용하고 아이리시 크림은 베일리 제품을 쓴다. 그리고 위스키는 아이리시 위스키의 대표 주자격인 제임슨(Jameson) 회사 제품을 사용한다.

이 칵테일에 ‘카 밤(Car Bomb)’이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를 이해하려면 북아일랜드의 지하 군사 조직이던 아일랜드공화국군(IRA)에 대한 약간의 역사적 지식이 필요하다. 17세기부터 영국 지배 아래 있던 아일랜드가 1922년 독립하자 뿌리 깊은 종교문제가 전면에 대두됐다. 즉 개신교도가 많은 북아일랜드 6개 주가 가톨릭 중심의 아일랜드공화국 신정부를 거부하고 영연방 잔류를 결정함으로써 분란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영국이 무력으로 북아일랜드 지역의 통치를 기정사실화하자 아일랜드계 과격 조직인 IRA가 69년부터 영국을 대상으로 테러 활동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90년대 초까지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후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1998년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가 중재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결과, 개신교 정당인 민주연합당과 가톨릭 정당인 신페인당은 화합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2005년에는 IRA가 무장해제를 선언했으며, 2007년에는 공동 자치정부를 출범했다.

위험에 노출된 이를 위한 술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과거 IRA가 실제 테러 활동에서 사용하던 자동차 폭탄을 상징화해 이름 붙인 것이 바로 이 칵테일이다. 그러나 테러 활동과 연관된 칵테일 이름이 아일랜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의견 때문에 아일랜드 국화인 섐록(Shamrock·토끼풀)의 이름을 따 이 칵테일을 ‘섐록 밤’이라고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실제 1979년 이 칵테일을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미국 바텐더 찰스 버크 크로닌 오트(Charles Burke Cronin Oat)는 아이리시 카 밤이라는 명명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아직까지 아일랜드계 바텐더와 실제 IRA 자동차 폭탄의 희생자 가족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제안일 뿐 세계적으로는 여전히 아이리시 카 밤이라는 용어로 통용된다.

아이리시 카 밤을 마시는 방법은 먼저 우리 폭탄주와 같이 맥주잔에 스타우트 맥주를 적당량 따라놓는다. 그리고 위스키잔에 위스키를 넣는데, 이때 아이리시 크림을 먼저 따른 다음 그 위에 위스키를 붓는 것이 폭탄주와 다르다. 그다음 위스키잔을 맥주잔에 빠뜨리고 가능한 한 빨리 단숨에 마시는 것은 우리나라 폭탄주의 음주 방식과 같다. ‘Bomb’이라는 용어도 결국 위스키잔이 맥주 속으로 빠질 때 솟구치는 폭발 같은 모습을 나타낸다.

아이리시 크림은 칵테일에 약간 달콤한 맛을 주기도 하지만, 크림 성분이라 즉시 마시지 않으면 혼합물이 응고할 수 있어 그전에 빨리 마시게 하는 효과도 지닌다. 그런데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방법 외에도 위스키잔에 담긴 아이리시 크림과 위스키를 따로 먼저 마시고 맥주를 체이서(chaser)로 마시는 방법도 있다. 또한 위스키잔 속 아이리시 크림과 위스키를 그냥 맥주잔에 부어 섞은 뒤 함께 마시기도 한다.

아이리시 카 밤은 영화 속 잭처럼 직업상 매일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칵테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칵테일이 영화 한 장면을 장식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아이리시 카 밤의 상징성이 무엇이든 이를 통해 아일랜드의 아픈 역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14.02.24 926호 (p78~79)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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