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3

2013.11.18

“난민은 유익한 자원…위험인물 색안경 벗읍시다”

이호택 사단법인 피난처 대표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3-11-18 10:3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난민은 유익한 자원…위험인물 색안경 벗읍시다”
    나이지리아 출신인 40대 초반 N씨는 국내 대학에 교수로 임용돼 2003년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왔지만 현재 난민 신세다. 지난해에 교수 임용 계약이 끝나면서 체류 자격을 잃었다. 그러나 남편이 한국에 오기 전 본국에서 정치활동을 하면서 개종을 했기에 나이지리아로 돌아가면 정치적, 종교적으로 박해받을 위험이 있어 귀국을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신학교에 다니는 남편 대신 두 아이와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N씨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도 없는 곤궁한 처지에 놓였다.

    콩고 왕족 출신인 40대 후반 욤비 씨는 본국에 있을 때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정부기관에서 고위관료를 지냈다. 정치적 박해로 본국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그는 처음 왔을 때 사료공장에서 개밥을 만드는 노동자로 일했다. 다행히 이후 난민 인정을 받았고 최근 광주대 교수로 임용됐다.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 사는 난민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국민 대다수가 잘 모른다. 그저 돈을 벌려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난민=가난한 자, 불법체류자, 위험 인물’로 인식하는 것. 최근 인천 영종도에 세운 출입국지원센터 내 난민지원시설이 “범죄의 온상이 될 것”이라는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문을 열지 못하는 사정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양한 인물들 한국 사회 기여

    난민은 자발적 이주자와 다르다. 1951년 유엔이 채택하고 92년 우리나라가 가입한 난민협약에 따르면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다. 우리나라는 94년 출입국관리법에 난민 관련 조항을 신설하면서 본격적으로 난민 보호를 시작했고, 지난해 2월 제정한 난민법이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인식은 법과 제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14년째 난민을 돕는 사단법인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사진)를 만나 난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그들이 처한 현실, 난민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 들었다.



    ▼ 우리나라가 난민을 보호한 지 20년이 됐고 난민법도 시행하고 있지만 난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곱지 않은 것 같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다.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없이 복지제도만 누리려고 오는 사람으로 여기고, 잘 대해주면 더 많이 올 거라고 여긴다. 인종혐오주의적 정서도 있다. 그러나 난민법이 시행되고 정부가 본격적으로 지원에 나선 만큼 차차 개선되리라 믿는다. 지금은 과도기다.”

    ▼ 정부 정책으로 난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꾼 사례가 있나.

    “네덜란드와 벨기에다. 이 두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훨씬 적다. 그런데 매년 발생하는 난민 수는 10배가 넘는다. 두 나라의 난민 관련 시민단체 대표한테 ‘국민이 부담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으니 ‘뭐가 부담이 되느냐. 사람들이 오면 좋지’라고 하더라. 난민은 귀한 인적자원이고, 인권 측면에서 당연히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정착된 게 느껴졌다. 국가가 ‘난민은 유익한 자원’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지녔고, 국민 또한 개방성을 가졌다는 점에 크게 감동받았다.”

    우리나라가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부터 9월까지 우리나라에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5992명이다. 이 가운데 394명만 난민으로 인정됐고, 2644명은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국내 난민 신청자 수는 재작년부터 매년 1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 우리나라에 온 난민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나라에는 미얀마, 중국, 파키스탄, 가나, 코트디부아르, 우간다 등 세계 30여 개국에서 온 난민이 있다. 출신국은 대개 정치 상황이 불안하거나 경제적으로 저개발국이다. 그러나 개인은 교육수준이 높은 경우가 많다. 변호사, 교수, 공무원, 전문기술자, 기자 및 TV 리포터, 종교인, 군인이 있고 왕족도 있다. 이들이 국내에서 살아갈 권리를 갖는다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걸 국민이 알았으면 한다.”

    법무부가 연구용역을 맡긴 ‘2010 난민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난민 389명 가운데 남성은 76.3%, 여성은 23.7%였다. 평균 학력수준은 대학 1학년 중퇴이고, 대졸자나 대학원 졸업자도 44.7%였다. 이들이 난민 신청을 한 이유는 정치적 의견(정치활동) 30.2%, 종교 18.3%, 전쟁(내전) 등 폭력사태 11.3%, 인종문제 9.0%, 국적(종족) 5.7% 순이었다.

    “난민은 유익한 자원…위험인물 색안경 벗읍시다”

    난민지원기관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왼쪽)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난민 신청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난민에 인색…국가 이미지 실추

    ▼ 영종도 난민지원시설이 주민 반대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데.

    “난민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한 갈등인 만큼 이제라도 주민과 협의하고 그들을 설득하면서 의식을 바꿀 수 있도록 하면 된다고 본다. 이것도 난민에 대한 의식을 바꿔가는 한 과정이다.”

    ▼ ‘한국은 난민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일에 인색하다’는 게 국제사회의 시각이다. 우리 사회가 난민을 제대로 수용하고 돌보지 못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나.

    “국가 이미지가 실추된다. 난민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직장생활을 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면 주거비와 생계비 등 여러 사회적 비용을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한다. 또 힘든 상황에서 탈출한 사람을 궁지로 내몰면 사회가 불안해진다.”

    2010년 난민실태조사 당시 네팔에서 영국왕립학교를 졸업한 한 남성은 “나는 책 35권을 번역한 경험이 있고 한국말도 꽤 잘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어 한국에 머무를수록 모욕감이 쌓여가고 빚도 늘어난다. 인간으로 품위를 갖고 살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대표는 “난민이 발생한 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국가 또는 사회 때문이다. 난민은 피해자이며, 언제든 우리도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난민이 피난처를 찾을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일종의 안전장치라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세계인권선언 14조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에서 피난처를 구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다. 이 대표는 “난민 보호는 우리 사회의 품격과 품위를 가늠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