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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학교폭력 근절 또 말로만 끝나나

상담사 감원에 지역협의회 유명무실…피해자 가족들 “학교 현장 변하지 않아”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학교폭력 근절 또 말로만 끝나나

학교폭력 근절 또 말로만 끝나나

2012년 또래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교생이 자살 당일 오후 인터넷 축구게임 동호회원과 스마트폰 메신저로 나눈 대화(왼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2012년 투신한 한 중학생의 교실 책상 위에 국화꽃이 올려져 있다.

“글쎄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증거가 있으면 한 번 가져와 보세요. 그러면 혹시 생각이 날 줄 알아요?”

학교폭력으로 딸을 잃은 A씨가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에게 사과를 요구했다가 들은 이야기다. A씨의 딸은 고교 3학년이던 지난해 12월 아파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유서에는 오랫동안 학교폭력으로 고통 받았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증거가 없다’고 일축했고, 교육청에는 ‘가정환경 비관으로 인한 자살’이라고 보고했다.

A씨가 직접 딸의 친구들을 만나고 탐문한 끝에 아이가 1학년 때 선배에게 폭행당한 뒤 병원치료를 받았던 사실을 밝혀냈지만, 그게 전부였다. 해당 학생이 뒤늦게 벌금형을 받았을 뿐 그 외에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에게는 아무 처분도 내려지지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A씨가 그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건 것은 최근 일이다. 그는 “사과 한 마디면 충분하다. 우리 딸에게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달라”고 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다.

초등학교 전문상담교사는 달랑 4명

정부가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며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2년이 돼가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학교 현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은 2011년 12월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동급생들의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하면서부터.



이후 학교폭력 문제를 더는 일선 학교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는 국무총리 담화를 통해 범정부 차원에서 학교폭력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학교 현장에 상담인력을 확충한다며 전문상담교사를 2012년 500명, 올해 1000명 증원해 총 2383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올해 충원한 인원은 9월 현재 467명에 불과하다. 전체 교사 수도 당초 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1581명이다. 박혜자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전국 초중고교 학교폭력 전문상담교사 배치율은 13.8%.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전국적으로 전문상담교사가 단 4명뿐이었다.

교내에서 학교폭력 관련 상담과 예방활동을 하는 위(Wee)클래스 설치율도 42.6% (4845개 학교)에 그쳤다. 위클래스 담당자의 절대 다수가 계약직으로 상담 업무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6월 감사원이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대책 추진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교육부는 위클래스 전문상담사의 인건비 예산을 줄였다. 이에 따라 서울 지역에서만 전문상담사 453명이 감원됐고, 전국적으로는 지난해와 비교할 때 1000명이 줄었다.

서울시 교육위원회 김형태 교육의원은 이에 대해 “교육부와 지방 교육청은 위클래스를 운영하려고 수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학교마다 전문상담실을 마련했다. 그런데 상담인력이 줄어들면서 일부 학교는 해당 공간을 교사휴게실 등으로 쓰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한 학교폭력 피해자 학부모는 “학교에 상담선생님이 있다 해도 상담이 잘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교 측이 고용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전문상담사를 10개월 단위로 채용하기 때문”이라며 “아이들이 수시로 바뀌는 선생님을 어떻게 믿고 고민을 털어놓겠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부가 모든 기초자치단체에 설치하도록 한 ‘학교폭력대책지역협의회’(협의회) 역시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은혜 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27개 기초자치단체 중 절반이 넘는 121곳이 올 들어 9월까지 단 한 번도 협의회를 열지 않았다. 기구를 만들기만 하고 아예 한 차례도 회의를 하지 않은 곳도 18곳이나 됐다. 결국 협의회는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보여주기식’ 정책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발표 당시 충분한 고려 없이 정책을 마련하는 바람에 오히려 학교 현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법률)에 따르면 폭력 사건을 조사하고 처리하는 기구는 각 학교에 설치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다. 법률은 학폭위원을 10명 이하로 하고, 과반수는 학부모가 맡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조항 때문에 상당수 학교폭력이 은폐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학폭위에 포함된 학부모는 대부분 학교에 우호적인 이들로, 사건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보다 학교 측의 뜻을 따를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근절 또 말로만 끝나나

3월 경북 경산의 한 고교생이 “학교폭력은 지금처럼 하면 100% 못 잡아낸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열린 ‘학교폭력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정부 차관 회의’ 모습.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교육부, 경찰, 검찰 등 관련 부처 차관급 관료들과 함께 토론하고 있다.

최근 통계 보면 오히려 폭력 늘어

자녀의 학교폭력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B씨는 “학폭위 당시 위원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마음으로 학교와 교사의 책임을 면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상처를 받았다. 외부 전문가가 포함돼 있지 않으니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학폭위의 처분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하는 건수도 크게 늘고 있다. 재심에 따라 결과가 바뀌는 경우도 많다. 경기도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 4월까지 관내 학교폭력 사건 관련 징계가 재심을 통해 바뀐 비율은 38%로, 10건 중 4건꼴이었다.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비판을 반영해 학폭위 위원의 학부모 구성을 현행 ‘과반수’에서 ‘1인 이상’으로 바꾸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는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문제를 놓고도 당초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의 실질적 반성을 유도하기 위해 졸업 후 5년간 학생부에 기재한다’고 밝혔다가, 7월 ‘졸업 후 2년’으로 기간을 줄이고 졸업 전 가해 학생이 반성한 사실이 확인되면 아예 내용을 지워주기로 하는 등 정책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정책 추진 과정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3월 경북 경산에서 동급생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교생은 “학교폭력은 지금처럼 하면 100% 못 잡아내요”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2011년 12월 대구에서 투신자살해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 수립을 이끈 고(故) 권승민 군의 어머니 임지영 씨도 “지난 2년간 다양한 학교폭력 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겉치레만 요란했지 정작 실행된 건 없다. 최근 통계를 보면 학교폭력은 오히려 늘고 있다”며 “정부가 단호한 원칙을 세우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지 않으면 어린 학생들이 공포와 고통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913호 (p32~33)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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