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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비경 트레킹 | 인제·속초 설악산

마등령 올라 공룡능선에 마음 뺏기다

내설악과 외설악 연결하는 환상의 코스… 계곡미와 바위미 빼어나

  •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마등령 올라 공룡능선에 마음 뺏기다

마등령 올라 공룡능선에 마음 뺏기다

마등령에서 본 외설악과 속초 앞바다. 오른쪽 가장 높은 화채봉 아래 외설악의 바위들이 전시장을 이룬다. 왼쪽 우뚝한 바위는 세존봉이다(왼쪽). 수렴동계곡 오세암 갈림길을 물들인 내설악 단풍.

설악산에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산세가 워낙 험준하기에 설악의 진면목을 보려면 고된 산행을 감수해야 한다. 한 번 그 아름다움을 맛본 사람은 더욱 깊은 설악의 품을 원하고, 위험한 산행을 감수하다 설악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리산과 비교하면 얼마나 다른가. 목숨을 걸고 지리산을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님의 침묵’ 떠오르는 내설악 수렴동계곡

설악산은 지리산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산이다. 지리산이 웅장하다면 설악산은 화려하다. 일찍이 서산대사는 명산론(名山論)에서 장엄함과 빼어남의 두 가지 잣대를 이용해 산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지리산은 장엄하되 빼어나지 않다”는 말은 지리산이 빼어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장엄함이 빼어남을 압도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설악산은 빼어남이 장엄함을 압도한다. 이러한 산의 특성은 사람들을 지리파와 설악파로 나누기도 한다. 원대하고 웅장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리파가 되고, 빼어나고 화려한 것에 끌리는 사람은 설악파가 된다.

가을 설악산에서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백담사를 들머리로 마등령을 넘는 것. 설악의 치명적 매력을 비교적 무난하게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백담사~오세암~마등령~설악동으로 이어지며, 거리는 약 14km로 8시간쯤 걸린다. 설악산을 제대로 보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내설악의 은은한 계곡미와 외설악의 화려한 바위미를 즐길 수 있는 멋진 길이다.

백담사로 가려면 인제 북면 용대리에서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예전에는 2시간쯤 백담계곡을 걸었다. 지금은 버스 덕에 15분 만에 백담사에 닿는다. 백담(百潭)이란 대청봉에서 소(沼)와 담(潭)이 100여 개 이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 후손인 이의숙(1733~1807)은 ‘곡백담기(曲百潭記)’에서 “내산의 모든 샘물은 서북으로 쏟아져 갈역(용대리)으로 돌아간다. 황장연(황장폭포)으로부터 아래로 20리, 맑은 물굽이와 깨끗한 늪이 많으니, 이것을 통틀어 곡백담이라 부른다”고 기록했다. 육당 최남선은 금강산은 물론 “해주의 석담, 청주 보은의 화양동 등을 한데 연접해도 그 길이나 그 기이함이나 다 설악의 곡백담을 따르지 못한다”고 했다. 편리함 대신 설악의 비경 하나를 잃은 셈이다.



내설악 특급 전망대 만경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잠시 머물면서 백담사는 커졌다. 인적 뜸하고 소박했던 옛 백담사가 그립다. 만해 한용운 동상에 인사를 올리고 수렴동계곡을 따른다. 계곡물은 투명한 에메랄드빛을 띠고, 길섶에는 붉고 노랗게 옷을 갈아입은 단풍이 반긴다. ‘님은 갔습니다. (중략)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라는 시구가 떠오르는 그윽한 숲길이다. 어쩌면 한용운은 이 길을 산책하다 ‘님의 침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숲길을 1시간쯤 걸으면 영시암에 이른다. 마침 점심때라 영시암에서 국수 공양을 받는다.

“꿈에 그리던 국수 공양을 받아 영광입니다.”

“오, 그래요.”

보살님이 선뜻 국수 두 덩이를 넣어준다. 이어 조각김치와 국물을 받으면 배식 완료. 앉을 것도 없이 후루룩 몇 번 하면 그릇 바닥이 보인다. 꿀맛이다. 마등령을 오르려면 여기서 속을 채워두는 것이 좋다. 영시암을 지나면 오세암과 수렴동산장 가는 길이 갈린다. 오세암 방향으로 들어서면 길이 슬그머니 오르막으로 변한다. 작은 고개를 넘어 두 번째 고갯마루에서 한숨을 돌린다. 여기서 내려서면 오세암이고, ‘탐방로 아님’ 이정표 방향으로 10분쯤 오르면 소나무와 암반이 어우러진 정상부가 나온다. ‘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는 전망대’인 만경대다.

만경대에서는 내설악 일대를 굽어볼 수 있다. 대청봉, 귀때기청봉, 용아장성 등이 펼쳐지는데, 특히 공룡능선 아래 오세암 주변 단풍이 눈부시다. 만경대는 3월 문화재청이 명승 제104호로 지정했다. ‘탐방로 아님’ 이정표 하나로 사람들의 발길을 통제하기보다 안전시설을 보강하고 개방하는 것은 어떨까.

만경대를 내려와 고갯마루를 내려서면 오세암. 다섯 살 아이가 홀로 폭설에 고립됐으나 관음보살과 순수한 교감을 나누며 성불했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내려오는 암자다. 이 전설은 동화작가 정채봉의 손에 의해 오누이 이야기로 변주되면서 우리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다른 절에는 없는 동자전의 동자상에 인사를 드리고 길을 나서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이어진다.

1시간쯤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설악산에서 보기 힘든 평평한 고원이 나타난다. 여기가 마등령 삼거리로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곳 전망대에서 공룡능선을 엿본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송곳니 같은 날카로운 암봉이 공룡능선에서는 최고봉인 1275봉이다. 그 주변으로 험준한 봉우리들이 자유분방하게 솟구쳤다. 공룡능선 산행은 이들 봉우리 사이를 걷는 것이다. 설악동으로 내려가려고 공룡능선과 등을 돌려 마등령에 오른다.

마등령 꼭대기에 서자 입이 쩍 벌어진다. 대청봉에서 화채봉으로 이어진 산등성이와 그 너머 푸른 속초 앞바다가 거침없이 펼쳐진다. 산정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맛은 아주 특별하다. 마등령에서 산등성이를 버리고 동쪽 험한 산비탈을 따라 비선대 방향으로 내려선다. 험준한 돌길이지만 도처가 전망대로, 공룡능선을 비롯한 외설악의 절경을 바라보는 맛이 각별하다.

설악의 늑골처럼 보이는 바위들

마등령 올라 공룡능선에 마음 뺏기다

설악의 늑골처럼 보이는 외설악 바위들.만경대에서 바라본 오세암.

한동안 길은 공룡능선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산비탈에서 올려다본 공룡능선은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을 수호하는 수문장처럼 보인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다. 금강문을 통과하면 시야가 화채봉 쪽으로 바뀐다. 화채봉 아래 자리한 바위가 마치 타오르는 불꽃같다. 공룡능선 못지않은 절경이다.

시나브로 저무는 빛 아래 놓인 바위는 마치 설악의 늑골처럼 보인다. 예전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에서 봤던 ‘고행하는 부다’가 떠오른다. 오랜 단식으로 깊게 파인 부처의 늑골과 힘줄이. 그러자 설악산이 거대한 부처 모습으로 보인다. 대청봉을 머리로 한 거대한 부처 가슴팍에 늑골처럼 바위들이 박혀 있다.

유선대와 장군봉을 오르는 클라이머들을 구경하다 보면 금강굴 갈림길에 이른다. 금강굴까지는 150m에 불과하지만, 지친 몸을 끌고 급경사를 오르는 것은 고행이다. 금강굴은 장군봉 중턱의 자연 석굴로 원효가 수도한 곳으로 알려졌다. 금강굴에서 바라본 외설악 풍경은 또 하나의 절경이다. 금강굴에서 내려오면 드디어 천불동계곡이 보인다. 올해 천불동의 단풍은 더디다. 10월 3~4주는 돼야 단풍이 좋겠다.

비선대에 이르면 어려운 구간은 거의 끝난 셈이다. 차가운 계곡에 발을 담그면 피로가 풀리면서 마등령을 넘어온 자신이 대견하다. 소공원으로 가는 길에 스멀스멀 땅거미가 피어난다. 저항령을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며 어둠이 내려앉은 컴컴한 길을 걷는다.

마등령 올라 공룡능선에 마음 뺏기다

청기와 건물과 단풍이 한바탕 어우러진다.

여행정보

● 교통


자가용은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나들목으로 나와 원통을 지나면 백담사 입구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www.ti21.co.kr)에서 백담사행 버스가 06:05부터 자주 운행하며, 2시간 걸린다. 단풍철에는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표를 구할 수 있다.

● 맛집

백담사 입구에 자리한 ‘용대리’는 황태 요리와 순두부가 유명하다. ‘백담순두부’(033-462-9395)는 20년 넘게 산꾼들의 단골집이다. 직접 된장을 담그고, 두부를 만들며, 나물로 장아찌를 담근다. 순두부정식 6000원, 황태정식 8000원.



주간동아 909호 (p66~68)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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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85호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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