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1

2013.08.19

‘스폰서 계약’ 지키지 않았다고 처벌 못 해

화대 면탈과 사기죄

  •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남성원

    입력2013-08-19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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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폰서 계약’ 지키지 않았다고 처벌 못 해
    윤락행위를 제공하겠다고 속여 화대만 챙기면 사기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금품 등을 제공할 것을 전제로 성행위를 하고 그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면 사기죄에 해당할까. 이와 관련해 최근 인천지방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주기적 성관계의 대가로 돈을 주기로 하는 이른바 ‘스폰서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다. 한 남성이 인터넷 조건만남 사이트에서 만난 20대 여성 3명에게 주기적으로 성관계를 하면 매달 500만~600만 원을 주겠다고 하고 이들 3명과 모두 14차례 성관계를 가졌지만 약속한 돈을 지급하지 않아 여성들이 남성을 고발한 사건에 대한 판결이다.

    그러나 2001년 이와 다른 취지의 대법원 판례도 나왔다.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고 술집 종업원과 성관계를 가진 뒤 절취한 신용카드로 그 대금을 결제하는 방법으로 화대 지급을 면한 사람에게 사기죄를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위 두 판결은 서로 상반된 것일까. 그렇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 두 판결을 비교해보면 사기행위라고 구성한 내용이 다르다. 최근 ‘스폰서 계약’ 사안에서는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고 성관계를 맺은 행위를 사기행위로 본 반면, 2001년 대법원 판례 사안에서는 화대를 지급할 것처럼 속이고 성관계를 가진 행위가 아니라, 성관계를 맺고 난 후 절취한 카드를 정상적인 신용카드인 것처럼 속여 대금을 결제한 행위를 사기행위로 문제 삼은 것이다.

    따라서 전자의 사안은 사기행위로 ‘성관계를 취득’한 셈이 되고, 후자의 사안에서는 사기행위로 ‘화대에 해당하는 대금지급 의무를 면한’ 셈이 된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 성관계 자체를 ‘재산상의 이익’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무죄가 선고됐지만, 후자의 경우 대금지급 의무를 면한 것이 재산상 이익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기죄를 인정한 것이다. 결국 유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례는 화대편취 사건이라기보다 절취한 신용카드로 사기 결제한 사건인 것이다.

    인천지방법원 재판부는 무죄선고를 하면서 “성관계를 재산상 이익으로 보기 어렵고 피고인이 피해자를 속여 성관계 대가지급 의무를 면제받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별도 사기 결제행위 없이 화대를 지급하지 않은 행위만으로는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정리하면, 화대만 받고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사기죄에 해당하지만, 반대로 성관계를 하고 화대를 지불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사기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판례인 것 같다.



    형사처벌 문제를 떠나 민사적으로 살펴보자. 화대 지급을 청구하거나 화대 대가인 성관계의 이행을 청구할 수는 없다. 우리 민법에서는 반사회질서에 해당하는 계약은 불법이므로 무효로 보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매음계약이 무효임을 근거로 화대 반환을 청구할 수도 없다.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법원인급여라 해도 수익자의 불법성이 급여자의 불법성보다 현저히 큰 경우에는 반환을 청구할 수 있고, 반환을 거부하면 횡령죄에도 해당한다. 윤락녀 몫의 화대를 포주가 보관하다가 임의로 사용한 경우 횡령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판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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