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2

2013.06.17

화끈하게 무더기로 피어나 ‘방긋’

터리풀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06-17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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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끈하게 무더기로 피어나 ‘방긋’
    쏟아지는 햇살이 참 뜨겁습니다. 벌써 이리 더운데 여름을 어찌 날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그래도 숲 속은 초록이 먼저 눈을 시원하게 해주고 나뭇잎의 왕성한 증발산 덕에 시원하지요. 거기에 산길을 오르다 흐드러지듯 피어난 소담스러운 터리풀 무리를 만나면 더욱 시원해지곤 합니다. 터리풀 꽃송이들이 하늘을 이고 앉아 혹은 깊은 숲가로 흘러나와 한 무더기 뭉텅 피어나면, 맑은 계곡에서 선녀를 만난 듯 한여름 무더위가 씻은 듯 사라지고, 마음까지 밝고 정결해지니까요.

    터리풀은 장미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전국 산자락이나 숲가 혹은 산꼭대기 초원지대에서 자라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꽃은 아니지요. 터리풀은 자라는 장소나 높이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빠르면 6월부터 피기 시작하고 8월까지 볼 수 있기도 합니다. 딱 여름 동안만 피어나는 꽃이지요.

    터리풀이 어떤 곳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 이유는 키가 커서일 것입니다. 다 자라 꽃이 피고 나면 1m쯤 되니까요.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 풀 사이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햇빛을 차지하려는 노력의 결과일 것입니다. 줄기 끝에 달리는 꽃은 아주 작지만 수없이 많은 꽃이 산방상(房狀)으로, 다시 취산상(聚狀)으로 모여 달려 풍성하게 펼쳐집니다. 처음 피는 꽃은 연한 분홍빛이 돌기도 하지만 점차 흰빛에 가까워지지요.

    손바닥처럼 갈라진 커다란 잎이 달리고 그 옆으로 아주 작거나 퇴화해 흔적만 남은 소엽이 6쌍에서 9쌍까지 마주 달리는데, 작은 잎과 그보다 조금 큰 잎이 번갈아가며 달려 아주 재미있습니다. 제일 위에 달리는 큰 잎의 길이가 15cm 정도 되니 아주 큼직한 잎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왜 이름이 터리풀일까요? 예전엔 털이풀 혹은 털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꽃차례 모양이 털이개 모양을 닮아 그리 불렀을까 하는 추측을 해봤습니다. 한자로는 광합엽자(光合葉子)라 하고, 영어 이름은 메도스위트(meadowsweet)입니다. 학명 가운데 속명 필리펜듈라(Filipendula)는 라틴어로 ‘실’이라는 뜻의 필룸(filum)과 밑으로 처진다는 뜻을 가진 펜듈루스(pendulus)의 합성어입니다. 기본 종의 뿌리가 마치 작은 공 같은 것이 실에 매달린 듯 보여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하네요.



    벌이 꿀을 빨아 오는 원천이 되는 밀원식물이 되며, 어린순은 먹기도 합니다. 터리풀류의 전초나 뿌리는 약초로도 쓰는데, 특히 화상이나 동상에 쓴다고는 하지만 그리 특별하게 이용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꽃이 많지 않은 한여름 화단에서 좋은 관상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식재할 때는 식물체가 커서 마치 관목으로 보일 정도로 풍성하므로 여러 포기를 모아 심어 놓으면 아주 특별한 모습의 정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꽃꽂이용 절화로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제가 이 꽃을 처음 만난 것은 아주 오래전 식물을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건봉산 계곡에서였습니다. 금강산을 찾아가는 길목인 그 계곡은 민통선 지역이었는데, 낯설고 새로운 땅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식물을 찾아다니다 만난 것이 터리풀이었습니다. 마치 갈 수 없는 북녘땅을 그리움으로 바라보는 듯 높다란 산정에서 흐드러지게 핀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더운 여름에 정말 느낌 있는 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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