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샷을 위해 공을 올려놓았다. 멀리, 똑바로 치려고 마음으로 그리고, 온몸을 힘으로 응축시킨다. 연습스윙 두어 번에 어드레스. 무심히 뒤로 뺐다가 때리는 순간 힘을 실어 한 바퀴 돌린다. 하늘로 뻗어 오르며 날아가는 공을 보면서 완벽한 피니시 자세.
호쾌하다. 그리고 나 스스로 만족스럽다. 그러면서 다음 스윙을 그리고, 또 천천히 이동하면서 잔디의 감촉을 즐긴다. 푸른 하늘, 점점이 떠 있는 구름, 넓은 초원, 살살 부는 바람, 강렬한 태양…. 내가 존재함을 느끼는 동시에 공의 생명을 관장하는 신으로서의 나를 확인한다. 그러면서 거꾸로 바라보는 철학을 음미한다. 상대로서의 자연과 대상으로서의 공. 골프장은 무엇이고, 공은 무엇이며, 골프채는 또 무엇인가. 이를 종합하는 나는 또 누구인가.
오랜만에 으뜸가는 고수들과 게임을 즐기며 자연 합일 사상을 온몸으로 음미했다. 얼마 전 서울 태릉골프장에서 내로라하는 아마추어 고수들과 붙었다. 골프 철학이 있는 분들과의 게임이었다. 70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70대 후반을 치는 왕년 골프장 사장님, 전문프로의 길을 마다하고 세미프로로서 오로지 기쁜 마음 하나로 라운드에 나서는 선배, 한때는 언더파를 자랑하며 내기만 전문으로 하다 이제는 그 경계를 넘어선 건설사 전무님….
노선배가 주선한 자리였는데, 두 번째 홀을 마치자마자 모두가 하는 얘기가 “이거, 오늘 오랜만에 집중과 긴장으로 게임을 하는구먼”이었다. 만만한 상대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구태여 내기를 걸 필요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과의 승부로서 한 번 붙어보는 것이었다.
진정한 고수들과의 게임에서는 구태여 집중을 위한 돈 내기가 필요 없다. 그저 상대가 있고 내가 있고 자연만 있을 뿐이다. 나를 다스리면서 내가 설정한 틀, 내가 요구하는 목표, 내가 만든 힘의 배분 원칙을 그렸다 지웠다 반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골프를 해보는 것이 이날의 승부수였다. 하여, 내가 공이 돼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공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공이 스스로 날아가는 것이다.
자연합일 사상 온몸으로 음미
세 번째 홀부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됐다. 탐색전이 끝나고 모두의 실력이 대략 확인됐기에 화면조정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묵언의 게임을 진행하면서 나 스스로 공 자체가 돼버린 빛의 조합으로 길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첫 티샷. 나는 공이다. 이 지상 물질계를 경험하려고 아직 생명이 없는 물질 자체로만 존재한다. 공이 공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저 자유로운 의식상태 자체를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힘의 조합이 단 하나의 길로 이끈다. 이제 자유의 의식상태가 된 공, 나 스스로 부여하고 규정한 힘으로 제한된 자유를 만들었다. 나는 공이라는 진동의 물질이 돼 날아갔다. 생명을 부여받아 스스로 선택한 힘으로 날아간 것이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내 생명, 나 자신에게 부여한 존재 자체를 건드리지 못한다. 내 의지대로 날아왔으며, 앞선 두 번의 행로는 단지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나는 환생했으므로.
이 환생을 위해 죽음을 두 번 거쳤다. 첫 번째 홀에서는 보기를 했다. 의미 없이 휘두르는 채에 의해 내 생명은 그냥 흘러갔다. 그린 근처에 와서 어프로치를 한 후 투 퍼트. 두 번째 홀에서는 옆의 공만 보면서 함께 갔기에 파를 했다. 하지만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그냥 죽음의 순서만 밟았다. 무덤이라 부르기도 하는 홀컵으로 들어가버렸다.
이 두 번의 죽음 이후 세 번째 홀부터는 내가 선택하는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무덤에서의 부활, 티샷으로 재탄생해 날아왔다. 여기는 롱 홀이다. 우주가 지정한 생명, 스리 온 투 퍼트로 파를 해 장수할 것인가, 아니면 빠른 죽음, 즉 버디를 택해 자유라는 휴식을 택할 것인가.
나는 버디로 이 홀의 경험을 빨리 마치기로 했다. 인생 경험이 지루하다고 느끼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가. 빠른 환생을 선택하기로 결심하고 가볍게 날아간 나는 홀 컵, 즉 무덤 옆 1m 거리에 내려앉았다. 얼른 무덤으로 들어가자. 영혼이라는 기억의 저장 덩어리를 내려놓자. 퍼트가 나를 밀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퍼트 힘을 끌어당기자. 그리고 무덤이 나를 빨아들이도록 불러보자. 나는 지체 없이 원하는 대로 땅속으로 들어갔다. 땡그랑 소리까지 내며. 영혼의 기억 저장소인 아카식 레코드에는 지체 없이 하늘과 하나가 됐음을 증명하는 숫자가 그려졌다. 마이너스 1. 버디다.
이번 롱 홀에서의 여정은 의도한 대로 그려졌다. 설계한 그대로의 여정이 재미있었던가. 별로다. 무덤에서 부활한 나는 네 번째 홀 티 위에 올려졌다. 생명을 부여하고 관장하는 주인이 다시 힘을 부여했다. 재탄생한 것이다. 짧은 파4다. 세컨드 샷 지점에서 무덤까지 남은 거리는 80m도 채 안 됐다. 힘은 그대로였으나 내리막 페어웨이라 다른 힘이 나를 인도했다. 중력이라 부르는 힘을 선택해 내리굴러갔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만족감을 얻은 나는 건방지게 굴다 그린 근처에 떨어졌다. 무덤까지 가려면 한 번 더 힘을 써야 한다. 겸손하게 굴어야 한다는 이치를 다시 한 번 깨닫고 조용히 굴러갔다. 무덤 근처에 도달한 다음, 조용히 파를 하며 다시 환생을 준비한다. 이번 홀에서의 여정은 만족스러운가. 그렇다.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건방지게 굴다가는 설계대로 되지 않는다는. 작은 깨달음이 모여 큰 깨달음이 되듯, 실수나 실패가 지혜가 됨을 알았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죽음과 환생을 거듭하며 스코어 카드라 부르는 내 여정을 하나씩 기록했다.
잠시도 긴장 풀 수 없는 게 골프
게임이 끝난 후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 전체 18홀의 스코어 카드를 살펴봤다. 73타. 기준타수보다 한 개를 더 쳤다. 스스로를 평가해봤다. 아직 욕심이 남았구나. 그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해보려고 인생이라는 18홀짜리 여정을 하는가. 단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그 무엇을 해보기 위함인가. 그 무엇이 되려고 자유의지라는 내 본질을 한쪽으로만 사용할 것인가. 아니다. 나는 전생에서 해보지 못한 그 무엇, 반드시 하고 싶었던 그 무엇을 해보려고 환생한 것이다. 한 홀 기록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홀에서는 어떻게 하겠다는 내 의지가 작용해 다시 탄생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다.
그럼 18홀이 다 끝난 상태에서 다시 환생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음 라운드 약속은 무슨 의미인가. 답이 나왔다. 진화하기 위해서다. 몸의 진화가 아닌 영적 진화, 몸속 에너지의 성숙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내가 다시 태어나 이렇게 사는 이유도 당연히 그렇다. 지난번 인생에서 한 맺힌 그 무엇을 풀려고 다시 태어났다. 그런데 그 한을 푸는가 싶었는데 이번 생에서 다른 한을 만들고 있다. 다시 환생하고 싶어서. 마치 골프에서 현재 스코어에 만족하지 못해 한으로 남기듯.
이날 세미프로가 이븐을 쳐서 1등, 내가 2등, 두 선배가 76타를 쳐서 공동 꼴찌를 했다. 뒤풀이 시간에 다 같이 한 말.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이런 골프가 진짜 골프다.” 성공과 실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이 소중하다. 그것이 영혼을 성장시킨다! 노선배가 내린 결론이다.
호쾌하다. 그리고 나 스스로 만족스럽다. 그러면서 다음 스윙을 그리고, 또 천천히 이동하면서 잔디의 감촉을 즐긴다. 푸른 하늘, 점점이 떠 있는 구름, 넓은 초원, 살살 부는 바람, 강렬한 태양…. 내가 존재함을 느끼는 동시에 공의 생명을 관장하는 신으로서의 나를 확인한다. 그러면서 거꾸로 바라보는 철학을 음미한다. 상대로서의 자연과 대상으로서의 공. 골프장은 무엇이고, 공은 무엇이며, 골프채는 또 무엇인가. 이를 종합하는 나는 또 누구인가.
오랜만에 으뜸가는 고수들과 게임을 즐기며 자연 합일 사상을 온몸으로 음미했다. 얼마 전 서울 태릉골프장에서 내로라하는 아마추어 고수들과 붙었다. 골프 철학이 있는 분들과의 게임이었다. 70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70대 후반을 치는 왕년 골프장 사장님, 전문프로의 길을 마다하고 세미프로로서 오로지 기쁜 마음 하나로 라운드에 나서는 선배, 한때는 언더파를 자랑하며 내기만 전문으로 하다 이제는 그 경계를 넘어선 건설사 전무님….
노선배가 주선한 자리였는데, 두 번째 홀을 마치자마자 모두가 하는 얘기가 “이거, 오늘 오랜만에 집중과 긴장으로 게임을 하는구먼”이었다. 만만한 상대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구태여 내기를 걸 필요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과의 승부로서 한 번 붙어보는 것이었다.
진정한 고수들과의 게임에서는 구태여 집중을 위한 돈 내기가 필요 없다. 그저 상대가 있고 내가 있고 자연만 있을 뿐이다. 나를 다스리면서 내가 설정한 틀, 내가 요구하는 목표, 내가 만든 힘의 배분 원칙을 그렸다 지웠다 반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골프를 해보는 것이 이날의 승부수였다. 하여, 내가 공이 돼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공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공이 스스로 날아가는 것이다.
자연합일 사상 온몸으로 음미
세 번째 홀부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됐다. 탐색전이 끝나고 모두의 실력이 대략 확인됐기에 화면조정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묵언의 게임을 진행하면서 나 스스로 공 자체가 돼버린 빛의 조합으로 길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첫 티샷. 나는 공이다. 이 지상 물질계를 경험하려고 아직 생명이 없는 물질 자체로만 존재한다. 공이 공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저 자유로운 의식상태 자체를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힘의 조합이 단 하나의 길로 이끈다. 이제 자유의 의식상태가 된 공, 나 스스로 부여하고 규정한 힘으로 제한된 자유를 만들었다. 나는 공이라는 진동의 물질이 돼 날아갔다. 생명을 부여받아 스스로 선택한 힘으로 날아간 것이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내 생명, 나 자신에게 부여한 존재 자체를 건드리지 못한다. 내 의지대로 날아왔으며, 앞선 두 번의 행로는 단지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나는 환생했으므로.
이 환생을 위해 죽음을 두 번 거쳤다. 첫 번째 홀에서는 보기를 했다. 의미 없이 휘두르는 채에 의해 내 생명은 그냥 흘러갔다. 그린 근처에 와서 어프로치를 한 후 투 퍼트. 두 번째 홀에서는 옆의 공만 보면서 함께 갔기에 파를 했다. 하지만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그냥 죽음의 순서만 밟았다. 무덤이라 부르기도 하는 홀컵으로 들어가버렸다.
이 두 번의 죽음 이후 세 번째 홀부터는 내가 선택하는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무덤에서의 부활, 티샷으로 재탄생해 날아왔다. 여기는 롱 홀이다. 우주가 지정한 생명, 스리 온 투 퍼트로 파를 해 장수할 것인가, 아니면 빠른 죽음, 즉 버디를 택해 자유라는 휴식을 택할 것인가.
나는 버디로 이 홀의 경험을 빨리 마치기로 했다. 인생 경험이 지루하다고 느끼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가. 빠른 환생을 선택하기로 결심하고 가볍게 날아간 나는 홀 컵, 즉 무덤 옆 1m 거리에 내려앉았다. 얼른 무덤으로 들어가자. 영혼이라는 기억의 저장 덩어리를 내려놓자. 퍼트가 나를 밀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퍼트 힘을 끌어당기자. 그리고 무덤이 나를 빨아들이도록 불러보자. 나는 지체 없이 원하는 대로 땅속으로 들어갔다. 땡그랑 소리까지 내며. 영혼의 기억 저장소인 아카식 레코드에는 지체 없이 하늘과 하나가 됐음을 증명하는 숫자가 그려졌다. 마이너스 1. 버디다.
이번 롱 홀에서의 여정은 의도한 대로 그려졌다. 설계한 그대로의 여정이 재미있었던가. 별로다. 무덤에서 부활한 나는 네 번째 홀 티 위에 올려졌다. 생명을 부여하고 관장하는 주인이 다시 힘을 부여했다. 재탄생한 것이다. 짧은 파4다. 세컨드 샷 지점에서 무덤까지 남은 거리는 80m도 채 안 됐다. 힘은 그대로였으나 내리막 페어웨이라 다른 힘이 나를 인도했다. 중력이라 부르는 힘을 선택해 내리굴러갔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만족감을 얻은 나는 건방지게 굴다 그린 근처에 떨어졌다. 무덤까지 가려면 한 번 더 힘을 써야 한다. 겸손하게 굴어야 한다는 이치를 다시 한 번 깨닫고 조용히 굴러갔다. 무덤 근처에 도달한 다음, 조용히 파를 하며 다시 환생을 준비한다. 이번 홀에서의 여정은 만족스러운가. 그렇다.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건방지게 굴다가는 설계대로 되지 않는다는. 작은 깨달음이 모여 큰 깨달음이 되듯, 실수나 실패가 지혜가 됨을 알았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죽음과 환생을 거듭하며 스코어 카드라 부르는 내 여정을 하나씩 기록했다.
잠시도 긴장 풀 수 없는 게 골프
게임이 끝난 후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 전체 18홀의 스코어 카드를 살펴봤다. 73타. 기준타수보다 한 개를 더 쳤다. 스스로를 평가해봤다. 아직 욕심이 남았구나. 그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해보려고 인생이라는 18홀짜리 여정을 하는가. 단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그 무엇을 해보기 위함인가. 그 무엇이 되려고 자유의지라는 내 본질을 한쪽으로만 사용할 것인가. 아니다. 나는 전생에서 해보지 못한 그 무엇, 반드시 하고 싶었던 그 무엇을 해보려고 환생한 것이다. 한 홀 기록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홀에서는 어떻게 하겠다는 내 의지가 작용해 다시 탄생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다.
그럼 18홀이 다 끝난 상태에서 다시 환생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음 라운드 약속은 무슨 의미인가. 답이 나왔다. 진화하기 위해서다. 몸의 진화가 아닌 영적 진화, 몸속 에너지의 성숙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내가 다시 태어나 이렇게 사는 이유도 당연히 그렇다. 지난번 인생에서 한 맺힌 그 무엇을 풀려고 다시 태어났다. 그런데 그 한을 푸는가 싶었는데 이번 생에서 다른 한을 만들고 있다. 다시 환생하고 싶어서. 마치 골프에서 현재 스코어에 만족하지 못해 한으로 남기듯.
이날 세미프로가 이븐을 쳐서 1등, 내가 2등, 두 선배가 76타를 쳐서 공동 꼴찌를 했다. 뒤풀이 시간에 다 같이 한 말.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이런 골프가 진짜 골프다.” 성공과 실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이 소중하다. 그것이 영혼을 성장시킨다! 노선배가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