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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말잔치에 속고 또 손가락 원망하나

선거

말잔치에 속고 또 손가락 원망하나

말잔치에 속고 또 손가락 원망하나

‘알프스를 넘는 보나파르트’, 다비드, 1800~1801년, 캔버스에 유채, 272×232, 말메종 샤토 국립미술관 소장.

요즘 눈과 귀가 호강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국회의원 후보자의 공약 때문이다. 공약대로라면 취업, 출산, 보육, 노후 등 무엇 하나 걱정할 것이 없다. 우리가 그토록 꿈꿔온 사회가 곧 이뤄질 것 같다. 굳이 가보지 않은 천국을 찾을 필요도 없다. 후보자들이 국회에 입성하는 그 순간부터 대한민국이 천국일 테니까.

하지만 모든 후보자를 다 찍어줄 수는 없고 한 명만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벽보를 보며 누구를 선택할지 즐거운 고민에 빠지는 그 시간 후보자는 피가 마르는 듯한 고통을 겪을지도 모른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4년을 또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후보자가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다. 대중이 단 한 명을 결정하는 데 후보자의 이미지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최고의 이미지를 만들어 성공한 지도자를 꼽으라 면 단연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대혁명 때부터 정치, 신문, 삽화 등을 통해 정치적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그 이미지의 파급력을 잘 알았다. 정치 선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꿰뚫었던 그는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을 선전할 도구로 그림을 선택했다.

나폴레옹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알프스를 넘는 보나파르트’다. 나폴레옹이 스페인 왕 카를로스 4세의 초상화를 보고 의뢰한 작품이다. 말에 앉은 나폴레옹이 팔을 들고 돌진을 명령한다. 나폴레옹이 입은 망토, 말의 갈기와 꼬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알프스의 사나운 날씨를 나타낸다. 나폴레옹 발밑에는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 대제와 샤를마뉴 대제의 이름을 새겼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1800년 나폴레옹은 말 대신 산길에 강한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다. 다비드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나폴레옹에게 직접 모델을 서달라고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나폴레옹은 “초상화와 내가 닮고 안 닮고는 중요치 않다”며 “천재의 창의력을 발휘해 그리면 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앞발을 든 말에 평온하게 앉은 모습으로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다비드는 역사적 장면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이상화된 통치자의 모습을 표현했다. 새로운 시대에 등장한 영웅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미화한 이 작품이 성공하자 이후 3년 동안 조수들과 네 점의 복제화를 더 그렸다.

단 한 명을 선택하기에 앞서 후보자 개개인을 속속들이 알면 좋겠지만 우리에겐 그럴 기회가 충분치 않다. 벽보나 방송을 통해 후보자를 만나고 그들이 내건 공약을 접할 뿐이다. 선거 공약은 어느 하나 딱 부러져 보이는 것이 없다. 그저 벽보에 적힌 선거 공약을 보고 짐작 혹은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

선거 공약을 믿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 에밀 프리앙(1863~1932)의 ‘정치토론’이다. 한낮에 둥근 테이블을 에워싸고 앉은 남자 네 명이 토론을 벌인다. 멀리 보이는 들판은 그들이 농부임을 나타내며 그림 위쪽 차양과 테이블 위 물병은 날씨가 덥다는 것을 암시한다. 테이블에 놓인 빵은 그들이 점심식사 후 휴식을 취하는 중임을 짐작케 한다.

말잔치에 속고 또 손가락 원망하나

(왼쪽)‘정치토론’, 1889년, 프리앙, 나무에 유채, 26×33, 개인 소장. (오른쪽)‘시골 선거일’(부분), 빙엄, 1852년, 캔버스에 유채, 96×132,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소장.

콧수염이 있는 사내가 소매를 걷어 올린 팔로 모자를 쓴 남자를 끌어당기는 듯한 모습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의미인 동시에 이들이 정치토론 중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화가 나 고개를 돌리고 주먹을 움켜쥔 남자와 그에게 계속해서 뭔가를 얘기하려는 듯한 사내를 또 다른 두 남자가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정치 성향이 앞의 두 사내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탁자 위 에 쌓인 술잔은 정치토론을 시작한 지 오래됐음을 알려준다.

19세기 프랑스 농촌 마을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에서 손을 괴고 앉은 남자의 자세는 정치가 농촌생활과 별 상관없는데도 여전히 골치 아픈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나 국가를 불문하고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는 대체로 사회 구성원의 1%다. 평소 평범한 사람은 그들에게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선거철이면 그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그때만 우리가 그들로부터 존경받는다.

투표일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 조지 칼렙 빙엄(1811~1879)의 ‘시골 선거일’이다. 선거를 하려고 마을 광장에 많은 남자가 모였고, 투표장 입구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그들 앞에서 푸른색 옷을 입은 남자가 모자를 벗고 인사한다. 후보자로서 표를 부탁하는 것이다.

줄 서 있는 남자들 뒤에서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싸우고, 입구 옆에 선 남자들은 아직도 정치토론 중이다. 이미 투표를 마친 남자들은 술에 취해 졸고 있다. 남자들의 초라한 옷은 가난한 노동자임을 나타내며 술 취한 남자들은 투표일에 마을잔치가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참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국민의 의무를 농촌의 선거일 풍경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남북전쟁 후 정치에 입문했다.

우리는 투표일에 단 한 명을 선택하고도 여전히 온갖 걱정을 달고 살아야 한다. 그래도 4년간 손가락의 힘을 믿어야 한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주간동아 831호 (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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