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9

2017.05.24

스포츠

이번에는 KIA 홈구장서 시구?

문 대통령 대선 이벤트로 당선 후 시구 약속…대학·사법연수원 시절 동호회서 중심 타자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donga.com

    입력2017-05-22 16: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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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야구계의 기대가 크다. 역대 대통령과 달리 문 대통령은 마니아 수준의 야구팬인 만큼 야구계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전·현직 야구 관계자가 대선 기간 문 대통령 지지에 나섰다.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공약한 바에 따르면 임기 중 한 번은 직접 프로야구 경기 시구자로 마운드에 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 ‘야구 마니아’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대선 기간 인터넷 홈페이지(문재인닷컴)에 올리기도 했다.



    선거 때부터 야구 마니아 이미지 적극 활용

    이번 대선에서도 야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문 대통령은 광주에선 옛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부산에선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유세에 나섰다. 야구계의 지원 사격도 있었다. 해태 4번 타자 출신이자 KIA 타이거즈 감독을 역임했던 김성한 전 감독은 해태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TV에 출연해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을 했다.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200승 투수인 송진우 전 한화 이글스 코치도 대전 유세 현장에서 기호 1번을 새긴 유니폼을 문 후보에게 선물하며 지지를 표명했다. 부산에서는 박정태 전 롯데 2군 감독이 문 후보 선거운동을 도왔다. 이처럼 지역 연고구단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은 부산과 광주, 대전에서 각 팀을 대표하는 올드 스타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 자체가 차별화된 전략이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프로야구와 인연이 매우 깊다. 먼저 야구 명문 경남중·고 출신이다. 고교 동문인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이 1988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을 추진할 때 법률 자문을 맡았다. 그 인연으로 최 전 감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 직접 선거운동을 도왔다. 문 대통령은 야구 실력도 뛰어나다. 경희대와 사법연수원 시절 동호회팀에서 중심 타자로 활약했다. 

    문 대통령은 야구계를 위한 공약도 내걸었다. 5월 3일 경남 창원시 오동동문화광장 유세 현장에서 문 대통령은 “창원에 메이저리그 구장 부럽지 않은 NC 다이노스 홈구장을 선물하겠다”고 공언했다. 창원시는 2015년 신축 야구장을 짓고자 도비 200억 원을 요청했지만 경남도의 반대로 무산됐다.



    문재인 캠프는 대선 기간 프로야구와 연관된 매우 독특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문재인닷컴 ‘대선 참여리그’를 통해 투표 권장 인증사진을 올리면서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을 선택하게 했다. ‘문재인의 생애 첫 시구는?’이라는 문구와 함께 각 프로팀의 인증사진 포인트를 공개하며 경쟁을 유도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투표 권장 인증사진을 가장 많이 올린 팬들의 팀에 가서 첫 번째 시구를 하겠다는 내용의 이벤트였다.

    결과는 광주가 연고지인 KIA가 5217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마침 KIA는 정규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대통령이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시구하는 장면도 기대해볼 만하다.

    프로야구는 지난해 관중 834만 명이 들 만큼 국민적 관심이 높은 스포츠다. 이 때문에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전두환, 김영삼,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민소통 차원에서 시구자로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시구하는 것만으로는 박수를 받지 못한다. 오히려 야구에 대한 기본 내용도 숙지하지 않고 시구에 나서 야구팬들의 눈총을 산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3년 10월 27일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3차전 시구자로 나섰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많은 박수를 받으며 등장했지만 시구 모습은 많은 야구팬을 실망시켰다.


    지난 대통령과는 다른 시구 보여야

    경호원과 함께 등장한 박 전 대통령은 태극기와 야구대표팀 상징인 푸른색으로 장식된 글러브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러나 글러브를 어느 손에 끼고 공을 던져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당장 현장에서는 “대통령이 워낙 바쁜 분인 만큼 야구를 전혀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참모들이 글러브 착용을 한두 번만 가르쳐줬어도 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더 논란이 된 부분은 퇴장 때 인사였다. 박 전 대통령은 홈팀 사령탑이던 당시 김진욱 두산 감독 대신 원정팀인 류중일 삼성 감독하고만 악수하고 관중석으로 이동했다. 야구장에서 지켜야 하는 불문율 등에 대한 사전 공부가 전혀 안 돼 있다는 인상을 줬다. 사전에 야구에 대한 기초 지식만 파악했더라도 박 전 대통령은 한국시리즈 시구를 통해 훨씬 더 많은 박수를 받을 수 있었을 테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한편 야구 종주국 미국은 1910년부터 백악관과 가까운 연고지 구단의 개막전 시구를 대통령이 맡는 전통이 있다. 많은 사랑을 받는 프로스포츠 행사에 대통령이 직접 참여해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겠다는 것이다. 올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일정 때문에 백악관의 연고지 구단인 워싱턴 내셔널스의 개막전 시구를 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자세히 보도되기도 했다.

    시구 때 입는 복장도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결정한다. 2010년 워싱턴의 개막전 시구를 맡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멋진 폼으로 씩씩하게 빠른 공을 던졌다. 화제가 된 것은 모자였다. 홈팀 워싱턴의 점퍼를 입었지만 모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든든한 지지 기반인 시카고 화이트삭스 로고가 선명했기 때문.

    경호원과 함께 등장하는 한국 대통령과 달리 미국 대통령들은 홈팀 더그아웃에서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눈 뒤 마운드로 나가 정확히 투구판을 밟고 공을 던진다.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 출신이기도 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완벽한 투구폼으로 포수 미트에 정확히 꽂히는 스트라이크를 던져 관중의 환호를 받았다.

    야구통인 만큼 문 대통령의 시구는 역대 미국 대통령의 시구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새 대통령이 국민통합 차원에서 KIA 유니폼에 롯데 모자를 쓰고 마운드에 서는 모습도 기대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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