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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정의(正義)

두 개의 정의(正義)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치 않겠다.”
만화영화 ‘세일러문’의 마법소녀들이 변신할 때 외치는 ‘구호’다. 만화영화의 인기가 높았고 사랑, 정의, 용서라는 거창한 단어들이 함께 어우러져서인지 한 번만 들어도 뇌리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 문구다.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받지 못할 자들을 처벌한다는 ‘사이다’ 내용은 누구에게나 통쾌하기에 대중문화의 단골소재가 돼왔다.   

최근 김수남 검찰총장은 퇴임사에서 “인자함은 지나쳐도 화가 되지 않지만 정의로움은 지나치면 잔인하게 된다”는 소동파의 시구를 인용했다. 시구 앞부분까지 감안하면 벌을 줘도 되고 안 줘도 될 때 벌을 지나치게 주면 잔인하게 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강기석 노무현재단 상임중앙위원(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의’라는 제목으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옥중 서신을 올렸다. 대부분 언론이 한 전 총리의 서신 내용에 주목했지만 같은 글에서 다른 대목이 더 눈길이 갔다. 

강 위원은 김 전 총장의 퇴임사를 옮기면서 “이것이 개인적 변명이나 자기 방어를 위한 논리라면 몰라도 검찰의 진실을 말한 것은 아니다. 한 전 총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꼬박 2년 징역을 살리고 영치금까지 빼앗고 남편의 통장을 털어 추징금을 징수한 이런 잔인한 짓거리는 검찰이 정의로웠기 때문이 아니다. 이명박, 박근혜 개노릇했던 검찰은 전혀 정의롭지 않았다”고 썼다.

두 사람이 말하는 정의는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김 전 총장의 정의에는 ‘벌을 줘야 할 사람에게 벌을 주지 않은 데 대한’ 반성이 빠져 있다. 강 위원의 정의에는 대법원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한 일방적 주장만 담고 ‘개노릇’이라는 적의가 가득하다.

반성이 없거나 적의에 찬 정의는 정의가 아닐 개연성이 크다.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서 소피스트이자 열혈청년인 트라시마코스는 정의가 ‘강자를 위한 이익’이며, 그렇기에 커다란 불의를 저지르고도 오히려 정의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는 궤변이었으나 현실에선 그의 말대로 커다란 정의로 포장된 불의가 무수히 많았다. 그래서 정의에 대해선 누구나 겸손하고 늘 되돌아보는 숙고가 필요하다. 여기에 ‘세일러문’처럼 사랑까지 덧붙인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주간동아 2017.05.24 1089호 (p5~5)

  • 서정보 편집장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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