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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옆 녹지 공간에 끈끈하게 흐르는 ‘공동체 DNA’

일본 세타가야구 | 갈아엎는 재개발 아니라 ‘수복형 마을 만들기’

  • 도쿄=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내 집 옆 녹지 공간에 끈끈하게 흐르는 ‘공동체 DNA’

내 집 옆 녹지 공간에 끈끈하게 흐르는 ‘공동체 DNA’

세타가야구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이 4.3km의 기타자와 녹도(綠道).

“성과물이라… 뭘 말씀하시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인터뷰를 앞두고 질문지를 보낸 요시하루 아사노우미 ‘재단법인 세타가야 트러스트 마을 만들기’ 과장의 회신에는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히 묻어났다. ‘성과물’이라는 말이 세타가야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마을 만들기’와 다소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원어로는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라고 하는 ‘마을 만들기’는 일본 도시행정의 독특한 프로세스 가운데 하나다. 관청의 일방적인 주도로 이뤄지는 도시계획 대신 주민의 의견을 모아 지역을 더 살기 좋게 만드는 자발적인 운동에 가깝다. 관과 민이 함께 어우러져 만드는 이러한 행정모델은 1970년대 처음 모습을 드러낸 후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고, 도쿄의 세타가야구는 이 시스템을 가장 먼저 적용해 활발히 이용한 곳으로 유명하다. 1992년 이 프로세스를 전담하는 마을 만들기 센터를 만들었고, 2006년에는 세타가야 트러스트 협회와 통합해 현재의 재단법인이 됐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녹도(綠道) 인상적

사실 전철을 타고 돌아본 세타가야의 첫 이미지는 ‘하염없이 심심한 동네’에 가깝다. 눈에 띄는 첨단 건축물도, 신주쿠나 긴자처럼 경제활동 인구로 북적거리는 번화가도 없다. 도쿄 도심 서쪽에 위치한 인구 80만 명 남짓의 전형적인 주택단지. 신주쿠에서 오다큐선 전철로 20분 남짓이면 닿는 지역에는 중산층을 위한 다세대주택이 빼곡하고, 다시 10여 분을 더 가야 나오는 외곽에는 상류층을 위한 단독주택단지가 있다. 모두 아침이면 도심으로 출근했다가 저녁이면 되돌아오는 직장인과 그 가족을 위한 주거지역인 셈.



그러나 발품을 팔아가며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니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골목마다 말끔하게 정리된 풍경은 일본 도시 특유의 분위기라 쳐도, 골목을 돌아서면 예상치 못했던 그림이 나타나는 것. 세타가야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기타자와 녹도(綠道)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1970년대 후반 생활하수가 흐르던 기타자와 하천을 복개한 뒤, 세타가야 사람들은 그 위에 자동차가 달리는 또 다른 도로를 만들지 않았다. 그 대신 길 전체에 나무와 풀을 심고 벤치를 놓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산책로로 조성한 것이다. 늘어선 다세대주택단지와 잇닿은 4.3km의 길에서는 한낮인데도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노인과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가득하다는 길은 아침마다 전철역을 향하는 사람의 통근로이기도 하다.

최근 수년간 기타자와 하천 상류 일부의 복개판을 뜯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하수처리장에서 정화한 물을 다시 상류로 보내 1급수가 흐르는 폭 1~2m 규모의 친수공간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힘을 발휘한 게 ‘마을 만들기’ 프로세스였다고 구청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어느 구간을 복원할지, 복원 후에는 어떻게 관리할지 크고 작은 문제를 모두 다담회(茶談會)라 부르는 주민과의 모임에서 결정했다는 것이다. 수질 관리가 중요하다는 의견부터 이를 관리할 자원봉사자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까지 다양한 견해를 취합하고 중립적으로 조정하는 구실을 재단이 맡았다.

내 집 옆 녹지 공간에 끈끈하게 흐르는 ‘공동체 DNA’

단독주택단지의 한적한 풍경.

“쉽게 말해 구청은 하드웨어를 맡고 재단은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식이죠. 구청이 기본적인 계획을 입안하면 재단을 통해 주민의 뜻을 모으고 조정합니다. 그 과정에서 계획을 아예 백지화하거나 수정하는 경우도 부지기수고요.”

시미즈 유코 세타가야구청 도시계획계장의 말이다. 이렇듯 유기적인 역할 분담이 세타가야 마을 만들기의 성공 요인이라는 뜻이다. “구청장이 바뀌면 주민과의 폭넓은 소통 시스템도 변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1970년대에 이 프로세스를 처음 기획한 구청장이 32년간 연임했기 때문에 완전히 뿌리내릴 수 있었다”고 겸연쩍은 듯 웃어 보인다. 올해 4월 취임한 새 구청장 또한 “마을 만들기의 DNA를 계승하겠다”고 공약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마을 만들기는 낡은 주택단지를 한꺼번에 갈아엎고 아파트와 주상복합으로 이뤄진 ‘새 도시’를 건설하는 재개발이 아니라, 기존 주거지를 조금씩 손봐가며 살 만한 동네로 ‘가꿔가는’ 업그레이드에 가깝다. 세타가야구가 최근 중점을 두는 부분은 친환경적인 생활환경과 소단위 모임의 활성화. 곳곳에 크고 작은 ‘시민녹지’를 조성하고 주민이 다양한 취미활동 모임을 만들도록 장려, 지원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세타가야의 서쪽 끝에 해당하는 세이조가쿠엔(成城學園) 인근 지역은 대표적인 고급 주택단지다. 창립 한 세기가 가까워 오는 유서 깊은 학교 주변으로 격조 있는 옛날 가옥과 현대 건축미를 자랑하는 단독주택이 부러울 만큼 빼곡하다. 한 가지 흠이라면 오래된 동네다 보니 이렇다 할 녹지 공간이 없다는 점. 구청과 재단법인은 이를 해결하려고 여러 개의 작은 공원을 조성해나가는 중이다.

내 집 옆 녹지 공간에 끈끈하게 흐르는 ‘공동체 DNA’

유서 깊은 전통가옥을 매입해 시민 공간으로 활용하는 세이조 고초메의 정원.

17곳 공간에서 소모임과 다양한 취미활동

그렇다고 기존 가옥을 헐거나 새로 땅을 산 것은 아니다. 대지가 넓은 개인주택의 정원을 일정 기간 임차하거나, 경사지의 자투리 땅을 손보는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저렴하게 공간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10월 13일 오후 방문한 세이조산초메(成城三丁目) 시민녹지에서는 마침 주민의 티타임이 한창이었다. 자그마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안부를 주고받으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풀과 나무가 그리우면 누구나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집 옆의 소규모 녹지 공간이 모두 17곳이다.

전철 길을 건너 세이조고초메(成城五丁目)의 또 다른 작은 정원을 찾아가자 할아버지와 할머니 자원봉사자가 방문객을 맞는다. 지어진 지 100년이 가까워 오는 유서 깊은 가옥을 재단이 트러스트 형식으로 매입해 시민공간으로 활용하는 곳. 방 한 칸 월세가 우리 돈 100만 원을 훌쩍 넘는 도쿄의 살인적인 집값 때문에 많은 전통가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지만, 일본식 옛 정원의 풍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마당에는 크고 작은 마을 주민의 행사를 알리는 게시물이 붙어 있었다.

내 집 옆 녹지 공간에 끈끈하게 흐르는 ‘공동체 DNA’

1 ‘재단법인 세타가야 트러스트 마을 만들기’의 요시하루 아사노우미 과장. 2 전철 지하구간 초입의 자투리 땅에 만들어놓은 도시 농장. 3 출퇴근용 자전거로 빼곡한 전철역 앞 주차장. 4 경사지를 이용해 조성한 시민녹지.

이마저 여의치 않은 곳에서는 집주인의 사정으로 잠시 빈 일반주택을 빌려 ‘마을 공생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10곳의 이런 공간에서는 매일 3~4차례 각종 공동체 모임이 열린다. 독서, 요리, 스포츠, 사진, 봉사활동 등 종류도 다양하다. 마음 맞는 주민이 함께하는 일종의 사랑방인 셈. 2008년부터는 이들 모임의 활동을 알리는 소식지를 펴내는 등 최근 가장 적극적으로 확대해나가는 사업이라고 요시하루 과장은 말했다.

그렇다고 이들 모임을 재단 측이 나서서 조직한 것은 아니다. 주민 스스로 모임을 만들어 신청하면 재단이 공간을 마련해주고 운영비를 일부 보조해줄 뿐이다. 지난 20년간 운영비를 지원받은 소모임이 총 250개. 구청과 재단은 이를 위해 별도의 마을 만들기 펀드를 조성해 운영하는 한편, 육아기금이나 스포츠 진흥기금 같은 일반예산에서도 일부 충당한다. 물론 자원봉사에 적극 나서거나 선뜻 공간을 제공하는 주민이 있기 때문에 한정된 예산으로도 다양한 모임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게 재단 측 설명이다.

“원래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느냐?”

내 집 옆 녹지 공간에 끈끈하게 흐르는 ‘공동체 DNA’

주민 소모임 활동 모습과 소식지.

원래는 평범한 농촌이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도쿄가 급팽창하면서 인구가 유입된 세타가야의 도시 역사는 이제 반세기를 훌쩍 넘겼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모여든 곳이다 보니 주민 사이의 유대관계나 지역에 대한 애정이 옅었으리라는 점은 불문가지. 오히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공동체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고, 여기에 목조주택이 다수였던 지역의 방재(防災) 문제를 함께 논의할 필요성이 더해지면서 ‘마을 만들기’가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화재에 취약한 목조주택을 없애고 현대식 주택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택한 방식은 한국식 ‘싹쓸이’ 재개발이 아니었다. 주민 의견을 바탕으로 계획을 결정한 뒤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개량사업을 진행하는 이른바 ‘수복형 마을 만들기’였다. 신규 단지 건설은 몇몇 상업지구로 한정했을 뿐, 몇 년이 지나면 옛 마을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전벽해는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의 뉴타운 개발방식과 비교하는 기자의 질문에 재단 관계자는 “그런 식이라면 원래 거기 살던 사람은 다 어디로 가느냐?”고 되물었다. 자기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해서 세타가야는 ‘하염없이 심심한 동네’로 남았다. 색색의 조명이 빛나는 롯폰기힐스의 화려함이나 코니아일랜드를 연상케 하는 오다이바의 세련미는 남의 일일 뿐이다. 그 대신 수십 년 세월 이곳에서 뿌리박고 사는 사람이 남았고, 어떤 아이가 누구네 집 자식인지 훤히 아는 끈끈한 유대감이 남았다. 그러고 보니 ‘성과물’이라는 말을 의아해하던 재단 측의 첫 반응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을 듯했다. ‘마을 만들기’에서의 ‘마을’은 단지나 도시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공동체’라는 소프트웨어에 가까운 개념이고, 따라서 눈에 보이는 ‘성과물’이 존재할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도시 아파트마다 붙여놓은 ‘·#51931;·#51931;마을’이라는 단지 이름 틈에서 우리가 잊고 사는 ‘마을’의 진짜 의미다.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행정의 속도나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죠. 그렇지만 시간이 걸려도 필요한 과정이고, 결국은 그게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너무 모범답안이긴 해도, 한없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시미즈 계장의 마지막 말이었다.



주간동아 2011.11.07 811호 (p24~27)

도쿄=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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