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1

2011.11.07

해경이 ‘위그船’ 떨떠름해하는 이유

시속 150km 이상인 ‘바다의 KTX’ 안전성 예민 반응…여객선 상용화 두고 “개발 먼저” 논란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11-11-07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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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경이 ‘위그船’ 떨떠름해하는 이유
    선박은 물과 부딪치는 조파(造波)저항 때문에 아무리 출력을 키워도 시속 90km 이상으로 달리기 어렵다. 이 때문에 냉전기인 1976년 군사첩보위성을 통해 소련의 내해(內海)인 카스피 해에서 최고 시속 550km로 달리는 물체를 발견한 미국은 경악했다. 미국은 이 쾌속체를 ‘바다의 괴물(Sea Monster)’이라고 명명하고 예의 주시했다. 그리고 이것이 1930년 핀란드의 카아리오가 처음 만들고 독일 등에서 연구한 위그란 사실을 알아냈다.

    비행기는 강한 힘을 내는 엔진과 날개 덕분에 뜬다. 엔진이 강한 힘으로 밀어주면 날개에서 위로 뜨게 하는 힘인 양력(揚力)이 발생한다. 양력은 날개가 클수록 커진다. 그런데 양력은 지상에 가깝게 날면 강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를 지면(地面)효과라고 한다. 지면효과를 얻으려면 고도 3~5m로 비행해야 한다.

    육지에서는 언덕과 산, 건물 때문에 이런 비행이 불가능하지만, 바다는 광대한 평면이기에 가능하다. 그래서 해상이나 수상에서 비행기보다 작은 날개를 달고 아주 낮게 비행하는 쾌속체를 개발했다. 이 쾌속체는 ‘지면효과를 이용한 날개(Wing in Ground Effect)’라는 뜻으로 위그(Wig)로 약칭한다.

    수면에서 고도 3~5m로 비행하는 배

    소련은 이 쾌속체를 수송함, 상륙함, 6기의 함대지 미사일을 탑재한 미사일 고속함으로 이용하려고 실험운항을 계속했으나 실전배치는 하지 못했다. 서방국가도 이때부터 위그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위그는 날씨가 나쁘면 운항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큰 물의 표면에서는 잡아당기는 힘인 표면장력(表面張力)이 일어난다. 큰 바람이 일어 파도가 3~5m 이상 높아지면, 물이 위그에 닿아 잡아당기기에 위그는 제대로 운항하지 못한다. 표면장력을 이기고 운항하려면 위그는 덩치를 키워야 한다.



    이는 똑같이 수상에서 떠오르는 수상비행기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물에서 떠오른 수상비행기는 고도를 높여 비행하므로 큰 파도로 인해 표면장력을 받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흐린 날 쏟아지는 비도 위그에는 좋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내리 누르는 힘을 가하니, 위그는 충분한 양력을 얻지 못한다. 큰 바다에서는 3~5m의 파도가 치거나 비 내리는 날이 비일비재하므로 위그는 실용성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소수의 전문가는 계속 관심을 기울였다.

    뜨고 내리는 것은 물에서 하지만 운항은 물 위로 하기에 위그는 “배냐, 비행기냐?”라는 논란을 일으켰다. 이 문제는 국제해사기구(IMO)가 ‘배’로 결론 내림으로써 일단락됐다. 그 후 위그 뒤에는 반드시 선(船)이 붙어 위그선으로 불렸다. 냉전이 끝나기 직전 노태우 정부는 소련에 14억5000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고 뒤를 이은 러시아가 경제위기로 상환에 난색을 표하자, 1993년 상환금 일부를 군사기술로 받는 일명 ‘불곰사업’을 하게 됐다.

    그때 받은 것 중 하나가 위그선 기술이다. 이 기술은 한국해양연구원이 받아 강창구 박사를 중심으로 후속 연구를 해왔다. 당시 여객선 분야에서는 큰 발전이 있었다. 동체(胴體)를 두 개로 한 쌍동선(雙胴船)이 등장한 것. 이 배는 두 동체 밑으로 공기압을 쏴 동체를 수면으로 많이 올라오게 한 다음 운항하는 공기부양선이다. 공기부양선은 조파저항이 적어 고속 운항이 가능하다.

    배 밑에 스키 같은 것을 단 여객선도 나왔다. 이 배는 항행 때 스키 때문에 동체가 위로 올라와 빨리 달릴 수 있다(하이드로포일, 일명 수중익선·水中翼船). 이런 식으로 고속화하자 강 박사 팀은 위그여객선을 만들 수 있다고 보고 필요한 기술 개발에 나섰다. 강 박사 팀은 40~50명을 태우고, 시속 150km 이상으로 운항하는 위그여객선이 적당하다는 목표를 세웠다. ‘바다의 KTX’를 만들기로 한 것.

    이명박 정부는 관심을 보였다. 세계 최초로 한국이 위그여객선을 개발해낸다면 또 하나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봤다. 강 박사는 한국해양연구원을 나와 전북 군장산업단지에 윙십(Wing Ship)중공업이란 회사를 만들고, WSH-500으로 명명한 40~50인승 위그여객선 건조에 착수했다. 그러나 많은 문제에 부딪혔다.

    해경이 ‘위그船’ 떨떠름해하는 이유
    여객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안전이다. 배의 규모와 설비 등에 등급을 매기는 것을 선급(船級)이라고 한다. 선급은 배의 안전성에 대한 평가인지라, 새로 만든 배에 운항해도 좋다는 인증을 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선급이 이 일을 하고, 세계적으로는 로이드선급이 유명하다. 로이드선급으로부터 인정받으면 그 배는 세계적으로 안전성을 인정받는 셈이다.

    로이드선급이 인정을 내주는 과정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배를 건조하는 과정에 참여해 ‘이것은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것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일일이 감독한다. 로이드선급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면 그때야 비로소 인정을 해준다. 윙십중공업은 1년 이상 로이드선급의 감독을 받으면서 WSH-500을 건조해왔다. 10월 진수한 이 배는 군산-제주 항로를 시험 운항할 계획이다.

    “반대하지 마라” 청와대 입김

    위그여객선 개발이 가시화하자 국내에서도 위그선에 대한 인증 문제가 생겼다. 한국선급이 위그여객선의 안전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주제로 연일 회의와 토론회를 열었다. 정부도 바빠졌다.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는 해사기술과를 중심으로 위그여객선 문제를 다루는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점검에 들어갔다. 국토부는 “객관적으로 안전성을 검증하겠다”고 했으나, 외부에서는 ‘국토부는 위그여객선 실용화를 지지하는 쪽’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해양경찰청(이하 해경)의 처지는 미묘하다. 각종 선박이 운항 중에 사고를 일으키면 해경이 조사에 나선다. 따라서 해경은 선박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어떤 기관보다 예민하게 반응한다. 시속 150km 이상으로 달리던 위그여객선이 사고를 내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하리라는 것은 뻔한 일. 그래서인지 해경은 위그여객선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한 전문가의 말이다.

    “한국이 개발한 ‘KTX 산천’은 모든 안전 검사를 통과했는데도, 실제 운행해보니 자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느냐. KTX 열차는 철로만 달리지만, 위그여객선은 오픈된 공간에서 모든 자연 조건에 노출돼 달려야 하니 좀 더정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바다에서 시속 150km는 철로에서 300km보다 더 빠른 속도인데, 한국은 위그여객선 개발 기대에 젖어 안전성 문제를 너무 안일하게 넘긴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국토부는 지지, 해경은 반대’ 구도는 위그여객선의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더 높은 곳의 관심 때문에 위그여객선 상용화를 허가해주는 쪽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해경에는 요식적인 반대만 하라는 압박이 내려온다”고 귀띔했다. 그는 “더 높은 곳이란 위그여객선 개발을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으로 정한 청와대를 말하는가”란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위그여객선 안정성 논쟁은 위그여객선을 개발하는 측이 안전성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해경 측이 위그여객선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쪽으로 흐르는 상황이다. 과연 어떤 결론이 날지 주목된다.

    안전성 외에 경제성 문제도 봐야 한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 만에 제주에 도착할 수 있다. 차를 타고 군산까지 달려가 위그여객선을 타고 3시간을 달려 제주에 가려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경제성은 안전성과 더불어 위그여객선 사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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