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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인터뷰

“어르신들의 노래 ‘청춘합창단’ 감동 겸손이 무엇인지 배워”

부활의 ‘오래된 보컬’ 박완규

  • 김명희 여성동아 기자mayhee@donga.com

“어르신들의 노래 ‘청춘합창단’ 감동 겸손이 무엇인지 배워”

“어르신들의 노래 ‘청춘합창단’ 감동 겸손이 무엇인지 배워”
1997년 그룹 ‘부활’ 보컬로 데뷔해 시원한 창법과 끝없이 올라가는 고음으로 ‘보컬 레전드’라는 찬사를 받았던 박완규(39). 1990년대 말 노래방에선 그의 노래 ‘천년의 사랑’을 부르다가 목이 쉬는 사람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곤 했다. 그러나 재능이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부활’을 박차고 나와 1999년 솔로로 독립했지만 ‘천년의 사랑’ 외엔 대중적으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고, 심지어 활동다운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가 올해 1월, 10년 세월을 건너뛰어 ‘부활’과의 콜래보레이션 음반 ‘비밀’로 컴백한 데 이어 최근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의 보컬 트레이너를 맡아,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도전에 나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웃고 울며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다.

▼ ‘청춘합창단’에서 보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방송에서 보인 건 아주 작은 부분이다. 어르신들이 주는 감동에 심사위원들이 숨 쉬기조차 버거워 녹화를 중단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분들이 나와서 하시는 말씀이 거의 같다.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거다. 부모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말이 갖는 무게감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방송을 보면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거나 투병 중이거나 제 목소리를 잃는 등 아픈 사연을 지닌 분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다.



“그분들은 말이 아니라 삶 자체로 가족에 대한 사랑, 인생에 대한 예의를 가르쳐주는 것 같다. 그 자리에 있다 보면 누구든 타인의 삶 앞에 절로 겸손해진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든다.”

▼ ‘위대한 탄생’에서는 김태원 제자들에게 독설을 쏟아냈는데 ‘청춘합창단’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당황스럽기도 하다.

“나는 똑같다.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할 뿐이다. ‘노래에 겉멋이 들었다’ ‘원곡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정도가 무슨 독설인가. 때로는 요즘 사람들이 너무 순하게 길들여져 진실을 받아들이기 버거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백청강을 비롯한 김태원 제자들은 다른 도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든 환경에 놓여 있었다. 시청자에겐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시청자가 그 친구들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각자의 펫(애완동물)이라 여기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친구들도 7월 강화도 총기 난사 사건 때 사망한 해병대원들과 똑같은 남자고 성인이다. 그 친구들이 조금 심한 이야기 들으면 가엽고, 해병대원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건가. 물론 그 친구들 모두 내 스승의 제자고, 친형제 같다. 하지만 그들이 잘되고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듣기 좋은 말뿐 아니라 진심 어린 충고도 공감해주면 좋겠다.”

“어르신들의 노래 ‘청춘합창단’ 감동 겸손이 무엇인지 배워”
한 방에 푹 빠져 시작한 밴드부

▼ ‘위대한 탄생’ 이야기에서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을 연결시키다니,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로커로서의 의무 같은 건가, 개인적 호기심인가.

“꼭 알아야 할 건 알고 싶다.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가 왜 흔들렸는지, 총기를 난사한 상병이 왜 그랬는지…. 스타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해주세요’라는 것이다. 대중이 어디가 아픈지, 무슨 걱정을 하는지 모르면서 어떻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나. 입에 발린 말을 쏟아내고 음원 장사에만 혈안이 돼서는 오래 사랑받을 수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학생 박완규의 꿈은 검사가 돼 사회 정의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가 그를 불러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라는 것이었다. 착한 막내아들 박완규는 순순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보니 자신에게 적잖은 상처가 됐던 것 같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생전 처음 보는 주산, 부기, 타자, 펜글씨를 배웠다.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었다. 여러 동아리를 기웃거리다가 밴드부에 ‘꽂혔다’. 그는 밴드부 형들과 어울려 미군이 드나드는 클럽에서 음악을 익혔고, 군대에 다녀온 후 1996년 ‘부활’ 멤버로 발탁돼 활동을 시작했다.

▼ 밴드부에는 어떻게 들어갔나.

“속된 말로 한 방에 가서 푹 빠졌고,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었다(웃음). 그 당시 내 목소리는 예쁘고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갔지만 개성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파트 뒷산에 올라 소리를 질렀다. 영화 ‘서편제’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웃음). 그때는 등산하는 사람도 없어서 사실 좀 무서웠다. 그 짓을 아침에 4시간 동안 하고, 학교 갔다가 오면 다시 산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다. 방학 때는 온종일 산에서 살았다. 하도 소리를 질렀더니 한번은 경찰이 출동했다. 산 밑에 절이 있는데 스님이 ‘산에서 귀신 나온다’면서 신고했다고 하더라. 9개월 정도 그렇게 온몸의 발성기관이 열리는 듯한 기분으로 소리를 질렀더니 영화 ‘에일리언’에서 새끼 에일리언이 숙주의 몸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뭔가가 몸에서 쑥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목소리가 트였다.”

▼ 김태원 씨는 가장 아끼는 후배로 박완규를 꼽는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전에 태원이 형이 ‘너는 투명해서 좋다. 성질이 나빠서 그렇지 너만큼 투명한 놈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머리를 안 굴린다는 거다(웃음). 이쪽 세계는 그런 게 상당히 중요하다. 형들 앞에서 머리 굴리다가는 맞거나 퇴출당하거나, 라인에 낄 수 없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잔머리 굴리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 솔로로 나오는 과정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1993년 ‘사랑할수록’을 수록한 ‘부활’ 3집이 100만 장 이상 팔렸는데 그다음에 나온 4집이 2만 장밖에 안 팔렸다. 말도 안 되게 망한 거다. 1996년 내가 합류했고 이듬해 5집이 나왔는데 그 역시 돈이 안 됐다. 멤버가 행사를 뛰어도 생활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내가 태원이 형한테 ‘나는 부활이 돈이면 돈, 음악이면 음악 둘 중 하나로 가면 좋겠다.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지만 형이 음악으로 가자고 하면 굶어도 따라갈 자신이 있고, 돈으로 가자고 해도 갈 것이다. 하지만 음악과 돈 사이에서 어설프게 양다리를 걸친다면 그룹에서 나가겠다’고 했다. 그때 태원이 형이 ‘돈과 음악은 구별할 수 없다. 구별하겠다고 해도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나는 ‘예, 알겠습니다’ 하고 나온 거다.”

“어르신들의 노래 ‘청춘합창단’ 감동 겸손이 무엇인지 배워”
디지털 싱글보다 스토리 있는 앨범 만들 터

▼ 지금도 자신이 옳았다고 생각하나.

“얼마 전 재발매한 ‘부활’ 5집을 듣다가 태원이 형한테 ‘잘못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우리나라 최고 명반을 하나만 낼 수 있다면 굶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들어보니 ‘부활’ 5집이 그런 음반이었다.”

▼ 그랬더니 김태원 씨가 뭐라고 하던가.

“‘그걸 이제 알았니?’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더라(웃음).”

▼ ‘부활’에서 나와 발표한 ‘천년의 사랑’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럼에도 생활이 계속 힘들었던 이유는.

“아이가 둘 달린 가장인데 월급이 100만 원 남짓밖에 안 됐다. 콘서트에서, 방송에서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 노래 부르면서 머릿속으로는 카드 값 계산을 해야 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내 선택이었기에 더는 구구절절하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는 얼마 전 아내와 이혼했다. 두 사람은 스무 살에 만나 스물여섯에 결혼해 아들딸을 두었지만 사랑은 불운했던 음악 인생을 극복하지 못했다. 박완규 부부는 함께 살며 미워하기보다 떨어져서 친구로 지내는 길을 택했다.

▼ 아이들에게는 어떤 아빠인가.

“이혼했으니 50점은 빼야겠고, 같이 놀아주지 못하니 40점을 더 빼야겠고, 나머지 10점에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는데 그래도 미안하다.”

▼ 아이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나이에 비해 철이 많이 들었다. 이혼 얘기할 때 아이들과도 터놓고 말했는데 큰아이가 ‘아버지 어머니가 헤어지는 건 싫어요, 많이 생각해보시면 좋겠어요. 저도 저지만 동생이 상처를 많이 받을 것 같아요. 하지만 엄마 아빠가 그렇게 결정하시면 이해는 할 수 있어요’라고 하더라. 동생이 한 살 어린데 자기 눈에는 아기처럼 보였나 보다. 이혼한 날 아이들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갔다. 아이들도 그날 이혼하는 걸 알고 있었다. ‘위대한 탄생’에 출연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아이 친구들은 ‘연예인이 왔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게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

▼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나.

“지금 음반 작업을 하는데 디지털 싱글보다 스토리가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내 목소리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태원이 형과는 음악적 교류를 계속할 것이다. 언더에서 올라올 수 있었던 발판이 됐던 게 ‘부활’이며 또다시 살아날 기회를 준 것도 태원이 형이다. 나와 ‘부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고 그 결과물도 나오게 될 것이다.”



주간동아 799호 (p67~69)

김명희 여성동아 기자may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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