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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한국, 北에 식량줘라”?

정부 대북지원 승인워싱턴 입김인가…북한 식량사정에 궁금증 증폭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한국, 北에 식량줘라”?

폭우로 완전히 침수한 도로 위를 걸어가는 일곱 명의 주민. 흙탕물 가득한 물살은 누가 봐도 처참한 자연재해 현장이다. ‘조선중앙통신’이 7월 15일 촬영해 이튿날 계약사인 AP 등에 전송한 이 한 장의 사진은 그러나 이내 조작 시비에 휘말렸다. 7월 18일 AP는 대동강이 범람해 주변 일대가 성인 무릎 위까지 침수한 사진 속 모습이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조작했을 수 있다며 전 세계 고객사에 삭제를 당부했다.

조악한 기술을 동원해 굳이 사진까지 조작해가며 평양이 노린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해석은 둘로 갈렸다. 먼저 당국자들은 “2012년 ‘강성대국의 해’에 후계체제 구축을 기념하는 풍족한 배급을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내려는 시도”라고 평했다. 자연재해가 심각하거나 식량사정이 극히 나빠서라기보다 내년을 위한 ‘쌓아두기’라는 견해다. 기자가 만난 일부 당국자는 ‘앵벌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쌓아두기용 vs 전례 없이 절박”

그러나 “그렇게만 보기에는 최근 북한의 행동이 전례 없이 절박해 보인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진 조작만 해도 등장인물 수를 늘려 ‘인민의 낙원’을 홍보하거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감추려고 활용한 적은 있지만, 어려움을 강조하려고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욱이 대북(對北) 식량지원 사업을 진행해온 국제기구들은 그동안 부정적 평가를 연이어 내놓았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이 3월 펴낸 ‘2011년 인도주의 활동 보고서’에서 “계속되는 자연재해와 국제사회의 지원 감소로 식량난이 악화해 전체 주민의 37%가 외부 사회의 식량지원에 의존해야 한다”고 밝힌 내용이 대표적이다. 7월에는 수해지역에 실사단을 파견했던 세계식량계획(WFP)이 최대 37만5000명의 이재민에게 120일간 식량을 공급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산하 인도지원사무국(ECHO) 역시 6월 진행한 현지 평가에서 “기아사태가 심각한 위기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일부 당국자는 이러한 국제기구의 평가에 대해서도 “바이어스가 있을 수 있다”는 비판을 내놓는다. 지원사업을 계속해야만 조직 운영이나 유지가 가능한 국제기구 특성상 북한의 식량사정이 심각하다는 견해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이들 국제기구의 검토보고서 말미에 한결같이 기금 확보의 필요성 강조와 모금 참여 독려가 따라붙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

최근 대북 식량지원 재개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 국내 인도주의 비정부기구(NGO)들에 대해서도 정부 일각에서는 비슷한 맥락의 반론이 나온다. 일부 NGO는 2007년 초에도 북한 주민 600만 명 이상이 아사 위험에 처했다고 주장했지만, 그해 실제 식량사정은 그보다 훨씬 나았다는 것이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최고의 북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정부와 현지 실사를 거쳤다는 국제기구 및 민간단체들의 엇갈리는 판단은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다.

상황 판단 변화 없이 정책 변화?

분명한 점은 북한의 경제사정이 최근 수년 사이 크게 나빠졌다는 것으로, 이는 위성사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지구촌 전역을 촬영해 매년 집계하는 야간 위성사진의 불빛 개수를 살펴보면, 북한은 2008년에 전년 대비 25% 가까이 줄었고 2009년에는 다시 10% 가까이 감소했다. 이는 1997년 무렵 ‘고난의 행군’으로 불린 대기근 시기와 비슷한 수치인 데다 2년 연속 감소는 1992년 관측 시작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러한 불빛 개수의 증감은 해당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변화 추이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게 서구 전문가들의 시각. 통계가 사실상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북한이지만, 야간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최근 수년 사이 경제상황이 급속도로 악화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농업이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제3세계 국가에서 이러한 상관관계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두 차례의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대북지원을 중단했지만,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로 이를 만회하는 중이라는 일부의 평가는 사실과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대북지원을 주장하는 인도주의 단체 관계자들은 앞서 설명한 정부 당국자들의 확신에 구조적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낸다. 쉽게 말해 그 근거라는 정보 당국의 분석이 왜곡됐을 수 있다는 ‘도발적’ 주장이다. 대북 식량지원 문제에 부정적인 정부 고위층의 기류가 정보 당국 관계자들에게 암묵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든 ‘식량위기는 아니다’라는 정보평가가 다시 정부 고위층의 확신을 강화하는 순환 고리 구실을 하는 것 같다는 추론인 셈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최근 정부 당국의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사실. 7월 25일 정부는 지난해 연평도 포격 이후 사실상 금지해왔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이하 민화협)와 천주교 민간단체의 대북 밀가루 지원을 8개월 만에 승인했다. 이튿날 민화협은 개성 육로를 통해 황해도 사리원시 주민을 대상으로 밀가루 300t을 북측에 전달했다. 통일부 측은 “지원 대상 기관과 분배량을 명시한 세부계획서를 제시하고 최종 수혜자에 대한 모니터링을 합의하는 등 분배 투명성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승인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당국자들 역시 최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이뤄진 비핵화 회담 등 남북관계의 변화 조짐과 관계가 있음을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북한 식량사정에 대한 정부 내부의 평가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 통일부는 민간 전문가들을 모아 비공개 세미나 형태의 의견 청취 기회를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 당국자는 “객관적 성향을 지닌 인사들이 대부분 ‘안 좋은 상황임은 분명하지만 내년용으로 비축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대북지원 반대 소견을 여러 차례 밝혀온 인사들을 제외하고도 이러한 견해가 주를 이뤘다는 설명이다. 상황 평가의 변경이 아니라 한반도 주변 정세의 변화에 따라 식량지원 문제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 하나의 가시’에 정부 곤혹

이와 관련해 눈여겨볼 부분이 6월 2일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로버트 킹의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 발언이다. 직전 북한을 방문했던 킹 특사는 “긴밀한 동맹국인 한국이 미국과의 협의에서 (식량지원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며 한미 간 이견이 있음을 내비쳤다. 특히 “우리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많은 이슈 부분에서 한국 정부에 동의하지만 일부 문제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언급을 통해 미국은 대북 식량지원을 계획했지만 한국이 이에 반대했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전폭적 지지를 바탕으로 형성한 한미 간 대북정책 공조에 이견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 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ARF 비핵화 회담을 비롯한 최근의 분위기가 워싱턴의 강력한 요청에 영향받은 것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대북 식량지원 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분배 투명성만을 문제 삼았다면 모르지만 ‘식량사정 우려가 과장됐다’고 말하던 정부가 그에 관한 설명 없이 대북지원을 승인하는 것은 원칙의 일관성 부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 문제와 함께 2011년 여름에 형성된 분위기 반전 속에서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시’라는 것. 정보가 정책을 결정하는가 정책이 정보를 결정하는가라는 해묵은 논란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간동아 798호 (p19~21)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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