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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폭탄테러 | 긴급 현장취재

화약 냄새 속에 눈물바다 오슬로는 울고 있었다

‘주간동아’ 기자 테러 발생 직후 현장 목격…다문화주의 관용과 조화 숙제 남겨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화약 냄새 속에 눈물바다 오슬로는 울고 있었다

“비극적인 테러가 발생했다.”

기자가 노르웨이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공항에 도착한 것은 7월 22일 오후 5시(한국시간 밤 12시). 숙소가 있는 오슬로 중앙역에 가려고 공항버스를 타자 버스 운전기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테러 소식을 전했다. 다른 취재 건으로 노르웨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기자는 100여 명(최종 사망자는 94명)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숙소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자 모든 채널에서 노르웨이 테러사건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오슬로 정부청사 주변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한 시간이 현지시간 기준 오후 3시 30분(한국시간 9시 30분)이었으니 사건 발생 1시간 30분 후에 도착한 셈이었다. 사건 발생 초기라 정확하게 몇 명이나 죽었는지, 범인은 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다음 날 유력한 테러 용의자로 거론된 범죄자 얼굴이 큼지막하게 실린 현지 조간신문이 호텔 로비 곳곳에 놓여 있었다. 신문을 들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테러공격을 당한 정부청사로 들어가는 길은 군인들에 의해 차단돼 있었다. 출입 저지선 너머로 깨진 유리조각과 부서진 건물 파편이 그날의 끔찍함을 보여줬다. 군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철통경비를 서고 있었다.

추가 테러 대비 팽팽한 긴장감



테러를 당한 정부청사 건물뿐 아니라, 국왕이 사는 왕궁 주변과 오슬로 시청사 등 오슬로 시내 주요 공관에는 군인과 경찰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건 초기 현지 경찰은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단독 범행으로 발표했지만 공범자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혹시 있을지 모를 추가 테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유럽 각국 언론사도 속속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서둘러 자리 잡은 뒤 취재를 시작했다. 카메라 기자들은 연신 카메라로 오슬로 시내 상황을 찍어댔고, 취재 기자들은 부지런히 주위를 돌아다니며 시민과 인터뷰하고 관련 소식을 황급히 전달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탓인지 기자들의 표정에도 긴장이 가득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군인과 경찰은 비교적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테러 충격 탓에 오슬로 시내의 많은 관광지가 문을 닫았다.

‘It closed(닫혔음)!’

화가 뭉크의 대표작 ‘절규’를 전시해 오슬로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들른다는 국립미술관도 이날 문을 닫았다. 먼저 도착해 있던 미국인 노부부가 친절하게(?) 미술관 문이 닫혔음을 알려줬다. 노벨평화상의 역사와 수상자의 공적에 관한 자료를 보관한 노벨평화센터에는 다음과 같은 알림판이 붙었다.

“Due to the tragic attacks in the center of Oslo and Utoya Friday 22 July, the Nobel Peace Center is closed Saturday 23.”(7월 22일 오슬로와 우퇴위아섬에서의 비극적인 테러 사건으로 노벨평화센터는 23일 문을 닫았습니다)

많은 관광객이 헛걸음치고 돌아가야 했지만 어느 누구도 불평불만을 터뜨리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테러소식을 접한 오슬로 시민이 하나 둘 오슬로 대성당 근처로 모여들었다. 1697년 창건한 오슬로 대성당은 오슬로 시민의 정신적 지주로, 한국의 명동성당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평화의 나라 노르웨이에서 이런 잔혹한 일이 일어났다니 믿을 수 없어요.”

오슬로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베르게르드(Vergerd) 씨는 침통한 표정으로 성당 입구에 꽃을 내려놓았다. 이미 그곳은 많은 꽃과 촛불로 가득했다.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부에서부터 오슬로에 머물던 각국 관광객, 심지어 노숙자까지 모여들었다.

“잔혹한 일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이미 근처 가게의 꽃은 동이 난 상태였다. 꽃 2~3송이가 95크로네(한화 약 1만9000원)로 비쌌지만, 시민은 너나 할 것 없이 꽃을 사서 억울하게 숨진 이들을 위로했다. 오슬로 대성당은 이미 추모객으로 가득했다. 모두 입을 굳게 다문 채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입을 막은 채 소리 없이 흐느껴 우는 사람도 있었다. 가슴 한쪽이 울컥하면서 기자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성당 한쪽에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초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기도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고인들이여, 부디 편히 잠드소서.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늘도 슬펐던 것일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거셌지만 어느 누구도 우산을 꺼내들지 않았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그 무언가가 오슬로 시민의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현지 언론과 외신은 테러 용의자가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보도했다. 이슬람 세력 확대에 혐오감을 느끼고 외국인 이민자가 늘어나는 것에 불만을 가져왔던 인물로 알려졌다. 사실 이슬람 혐오와 이를 이용하는 극우 세력의 등장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갖고 있는 고민거리다. ‘평화의 나라’로 알려진 노르웨이는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중립정책을 표방하며(그래서 유럽연합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노동자 보호와 사회평등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인권을 중시해 이슬람교도의 이민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비교적 너그러운 편이다.

외신과 현지 시민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번 테러는 단순히 ‘한 미치광이 젊은이의 행동’이 아니다. 다문화주의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극우파가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테러가 “1995년 극우주의자 티머시 맥베이에 의해 발생한 미국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폭파사건과 유사하다”고 보도했다. 실제 노르웨이 테러사건 용의자는 “다문화주의와의 전면전”을 공공연히 거론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테러 역시 다문화주의에 관대한 노르웨이 국민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는 것.

노르웨이 내외신은 이번 테러로 다문화주의를 중시하는 노르웨이 사회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테러주의자의 극단적 도발에 ‘평화의 나라’ 노르웨이 국민이 앞으로 어떤 답을 내놓을지 국제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7월 24일 연설을 통해 “우리는 더 큰 민주주의와 개방성, 그리고 인류애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민에 의해 국가가 만들어진 미국과 달리,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만 해도 이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 통합을 계기로 이슬람권 등에서 많은 이민자가 유럽으로 넘어왔고, 유럽 국가 내에서도 활발하게 이동했다. 유럽 각국의 국민은 이민자를 맞이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맞섰다. 이민자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대로 포용하자는 다문화주의와 일단 이민을 온 만큼 현재 머무는 국가의 문화를 따라야 한다는 동화주의가 그것이다.

관용과 조화를 중시하는 유럽에선 다문화주의가 더 설득력을 얻었다. 특히 인권과 복지를 전면에 내세운 북유럽은 다문화주의의 심장부라고 불렸다. 유럽 경기가 좋을 때는 큰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 경제가 나빠지면서 “이민자들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극우주의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9·11테러를 계기로 이슬람 포비즘이 유럽 각국을 휩쓸었다. 스위스 같은 중립국이나 북유럽 국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충격 딛고 서서히 일상으로 복귀

스위스에선 이슬람사원 건축을 불허하는 주민투표가 통과했고, 지난해 덴마크에선 극우정당인 덴마크 인민당이 총선에서 총 179석 가운데 25석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실제로 오슬로 시민은 외국인 이민자의 증가와 그에 따른 범죄의 증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슬로 한 시민의 전언이다.

“극우주의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정부의 이민정책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젊은이 가운데 일부는‘이민자 때문에 (노르웨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한다.”

이민자가 이민 국가에 동화하지 못하다 보니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이민자에 대한 원주민의 반감이 커지는 악순환을 낳은 것이 사실이다. 관용을 강조하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특히 이민자 문화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강했던 다문화주의 국가 노르웨이도 이에 대한 반발 심리가 조금씩 싹트고 있는 것.

이번 테러로 노르웨이 내 이슬람단체들은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실제 테러 직후 파키스탄 출신 남성이 아무 이유 없이 폭행당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사형제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사형제가 없는 노르웨이는 전쟁 중에도 사형을 하지 않는다. 테러 용의자의 범죄가 사실로 판명 난다고 해도 그의 형벌은 징역 21년에 불과하다. 적지 않은 노르웨이 국민이 사형제를 찬성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민 사이에서 사형제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노르웨이 국회와 여론은 테러범에 대한 형벌을 30년으로 늘리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충격과 슬픔에 빠졌던 노르웨이는 주말을 지나면서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 정부청사로 통하는 입구는 여전히 저지선으로 막혀 있지만, 그 밖의 장소에선 대부분 바리케이드가 사라졌고 군인도 철수했다. 추모 발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슬로 시민은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테러가 노르웨이 전체에 남긴 상처가 아물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문가는 이번 테러가 다문화주의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고 분석한다. 과연 노르웨이 국민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에서 일순간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한 오슬로의 진정한 고민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주간동아 798호 (p16~18)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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