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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의 캐릭터 들쑤시기

말을 거세한 마초 진정한 영웅으로

영화 ‘풍산개’에서 풍산

  • 김용희 소설가·평론가·평택대 교수 yhkim@ptu.ac.kr

말을 거세한 마초 진정한 영웅으로

말을 거세한 마초 진정한 영웅으로

‘풍산개’에 출연하며 6kg을 뺀 윤계상.

사내아이는 어릴 적부터 위험을 무릅쓰도록 강요받는다. ‘위험한 것’은 ‘남성성’의 상징이다. 담배와 술, 칼과 총, 오토바이와 자동차 경주 따위 말이다. 그것은 극단성과 과격성을 내재한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남성성은 폭력 속에 내재한다. 이상적 남성성에 도달하고자 남성은 자신의 감정선을 ‘허약’한 것으로 치부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다. 그것은 폭력적인 고통이며 위험이다. 무모한 도전과 모험을 통해 남성성을 발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성이 폭력적 남성성에 빠지지 않는다면, ‘강한 남자’라는 환상적 이미지에서 벗어난다면 세상은 훨씬 평화로워질 것이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감정을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모성적 관계성을 중시하고, 감동받을 때 눈물 흘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김기덕이 보여주는 마초 캐릭터는 흥미롭다. 영화 ‘나쁜 남자’에서 한기, ‘빈집’에서 태석, ‘풍산개’에서 풍산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말을 거세한 채 ‘침묵’ 속에 웅크린다. 현실과 소통하는 매개인 언어를 배제한 채 오직 강렬한 눈빛, 표정, 비명으로만 존재한다. 한기는 매춘가 포주이며, 태석은 빈집을 돌아다니는 한량, 풍산은 남북한을 오가며 물건과 사연을 전하는 배달부다. 그들은 마치 유령처럼 말이 없고 기이할 만큼 강력하다.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제작을 맡은 영화 ‘풍산개’는 현실의 언어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직 ‘행동’과 ‘눈빛’으로 ‘산다’. 그렇다. 말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눈빛과 행동으로 ‘말한다’. 영화 속 남한 국정원 요원과 북한 보위부 요원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거짓 ‘말’이 얼마나 허망하고 욕된가. 가증스러울 만큼 남을 이용하고 치사할 만큼 삶을 욕되게 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헛된 ‘말’을 하며 살아가는가. 오직 진실은 ‘눈빛’과 ‘행동’에 있다는 듯 ‘풍산’은 사람의 말에 어떤 대답도, 대꾸도 하지 않는다. 남한 요원이든 북한 요원이든 똑같이 묻는 “너는 어느 쪽이냐?”라는 질문 앞에서 그는 질문의 허망함과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에 반발하듯 끝까지 침묵한다.

‘말’로 거드름 피우며 허세와 허장을 부리는 이 세상의 수많은 마초 앞에서 김기덕은 세상을 조롱하듯 입을 닫아버린다. 어떤 물음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은 ‘말’에 있지 않고, 말하는 순간 진실은 사라진다는 듯한 태도다. 말 없는 냉담한 침묵, 불친절한 단절을 통해 진심을 전달하려는 듯하다.



영화 ‘풍산개’에서 은옥은 풍산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는다. 달콤한 사랑의 말과 값비싼 선물로 육체적 탐닉만을 사려는 애인을 버려둔 채. 은옥은 어떤 묻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고 자신을 북한에서 남한으로 데려다 준 풍산을 따른다.

김기덕은 영화 ‘풍산개’에서 냉담하고 말이 없으며 기이할 만큼 괴력을 지닌 신비한 ‘마초’를 탄생시킨다. 그의 자폐적 세계에 ‘여자’가 나타나면서 그가 사랑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이고 열정적인지도 보여준다.

사랑은 단순한 ‘언어’ 유희가 아니며 사랑의 진정성이란 자기희생을 담보할 때 그 빛을 발한다는 것을, 그리고 단순하게 말 없는 카리스마로 ‘똥폼’이나 잡으며 ‘깝죽’대는 비굴한 마초가 아닌 진정한 영웅으로서의 ‘마초’도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주간동아 2011.07.04 794호 (p73~73)

김용희 소설가·평론가·평택대 교수 yhkim@p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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