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1

2011.06.13

독도 홍보 유럽서 첫날 ‘바르샤 우승’ 감동 만끽

스페인 바르셀로나

  • 글·사진 김은열 독도레이서 www.facebook.com/dokdoracer

    입력2011-06-13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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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홍보 유럽서 첫날 ‘바르샤 우승’ 감동 만끽

    FC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5월 28일, 홈팀인 FC바르셀로나의 우승을 기념해 독도레이서가 뒤풀이로 흥을 돋우었다.

    “돈이 없어!”

    유럽 일정을 시작하며 비상사태에 돌입한 독도레이서. 낮은 물가와 여기저기서 이어진 도움의 손길로 풍요로웠던 남미를 떠나며 긴급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높은 생활수준과 휴가철의 조합을 감안하면 유럽에서는 살인적 물가를 피할 수 없을 터. 이에 우리가 세운 전략은 절약, 또 절약이다. 숙박비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하는 비행기안에서 밤을 보낸 우리는 다시 공항에서 하루를 기다린 다음 밤차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불편한 잠자리, 누적된 피로, 산더미 같은 짐이 함께 한 고단한 일정을 소화하며 5월 23일 월요일 아침 입성한 바르셀로나. 이곳은 독도레이서가 유럽 일정을 시작할 ‘유럽의 관문’이자 앞으로의 활동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었다. 여기서 겪을 온갖 시행착오가 이제부터의 여정에 밑거름이 될 터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조바심 때문에 우리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당일 한인 민박집에 짐을 부리자마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현지 답사를 나갔다.

    많은 이가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첫손에 꼽는 바르셀로나는 파리, 로마 등과 함께 관광도시의 선두를 다투는 곳. 항구와 평야를 낀 천혜의 자연조건을 자랑하는 이곳은 아름다운 경관과 풍요로운 먹을거리로 곳곳에서 여행자를 유혹한다. 하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바르셀로나 시민의 절반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이다. 시내 중심부로 나가면서 마주친 가우디의 ‘카사 밀라(Casa Mila)’와 ‘카사 바트요(Casa Batllo)’는 그가 부호를 위해 지은 저택으로,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유려한 곡선과 언뜻 보면 기괴하기까지 한 독특한 모양이 매력이다.

    우리가 묵은 한인 민박집 ‘가정집’에서 만난 김용대 작가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매력적인 분으로, 가우디의 작품세계와 삶에 매료돼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정집’에 머무는 동안 김 작가가 저녁마다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를 조금 옮기자면, 건축물에 스며든 가우디만의 자연친화적 색채는 가족이 단명한 불우한 가정사와 병약한 어린 시절의 체험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몸이 아파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가우디는 집 근처의 동식물과 교감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 새겨넣은 카탈루냐의 자연 환경 모습에는 고향과 어린 시절, 신이 만든 이상적인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이 녹아 있는 셈이다.



    가우디와 ‘사그라다 파밀리아’

    독도 홍보 유럽서 첫날 ‘바르샤 우승’ 감동 만끽

    (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응원 열기가 한창인 바르셀로나 거리 풍경. (아래) 독도와 비빔밥 홍보행사를 준비 중인 독도레이서.

    가우디가 불과 31세에 공사 총감독을 맡은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가족성당)는 이러한 ‘가우디 코드’가 모두 집대성한 건축물로, 2026년 가우디 100주기에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김 작가와 함께 찾아간 이곳은 크기도 크기지만 탄생, 수난, 영광을 소재로 한 건물의 정면부 파사드가 압권이다. 성경의 각 장면을 그대로 옮긴 듯한 조각상을 눈으로 훑어나가다 보면 첨탑에 새겨진 ‘Sanctus(거룩하도다)’라는 글귀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지면을 달구던 무자비한 뙤약볕이 한풀 꺾이고 해가 뉘엿뉘엿하던 늦은 오후였다. 성당에 들어서니 벽면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빛이 여러 겹 겹쳐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평생 금욕과 경건을 추구하며 ‘건축가의 이름을 빌려 수도승의 삶을 살았다’는 가우디. 그는 이 성당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마침내 그토록 갈망하던 ‘신의 영역’에 도달했으리라. 기차에 치여 숨지던 순간 남루한 옷에 든 것이라고는 땅콩 몇 알과 성경뿐이었다는 가우디의 최후를 듣고 우리 모두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 시간으로 5월 28일 토요일에 벌어진 FC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바르셀로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또 다른 축이다. 바르셀로나는 축구 팬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성지’로, 메시, 이니에스타, 비야 같은 스타가 포진한 FC바르셀로나(애칭 바르샤)의 연고지다. 실제로 민박집에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20분 걸어가니 FC바르셀로나 팀의 홈 경기장인 ‘누 캄프’를 볼 수 있었다. 결승전이 벌어진 날, 이곳은 경기가 진행되는 영국 못지않은 전운이 감돌았다.

    축구에 대한 열기는 이날 있었던 독도레이서의 활동에 재미난 에피소드를 더해주었다. 결승전이 열리기 불과 몇 시간 전, 우리는 세계 일주를 하며 한국의 비빔밥을 소개하는 비빔밥 유랑단 ‘플러스마이너스’팀과 함께 독도와 비빔밥을 동시에 홍보하는 행사를 가졌다. 중국에서 시작해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세계를 돌던 이들과 유럽에서 합류한 것이다. 적절한 행사장소를 물색하다 고른 카탈루냐 대성당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원을 그리며 손을 맞잡은 사람들이 오케스트라의 합주에 맞춰 춘 것은 카탈루냐 지방의 전통춤인 ‘사르다나’였다.

    독도 홍보 유럽서 첫날 ‘바르샤 우승’ 감동 만끽

    가우디가 공사 총감독을 맡은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 100주기인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시식할 비빔밥을 준비하고 사물놀이 악기를 꺼내려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물놀이 민복을 보고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카탈루냐 문화에 대한 긍지가 유난히 높은 이들에게 매주 토요일 저녁 사르다나를 추는 것은 하나의 중요한 의식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날 저녁에는 이들의 자존심인 FC바르셀로나가 우승을 놓고 숙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겨룰 예정이었으니 분위기는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소란을 피운다면 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하릴없이 기다리던 우리는 흥겨운 분위기에 전염돼 어느새 주민들과 함께 네 박자인 사르다나를 배우고 춤추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이들과 춤추며 즐긴 보람이 있었는지 오케스트라 단원 중 한 사람이 우리가 행사할 때 통역을 도와주었다. 게다가 주민들과 어울려 전통춤을 배우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독도와 비빔밥을 소개하는 우리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시선도 따스하고 호의적이었다. 특히 바르샤를 응원하려고 옥상에 올라갔던 이들이 먼 곳에서도 우리의 공연에 박자를 맞추며 호응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때맞춰 이날 FC바르셀로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대 1로 이기며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바르샤의 우승을 지켜본 진귀한 경험이었다.

    지축이 흔들리는 폭죽 소리와 새벽까지 이어진 거리 퍼레이드. 챔피언을 뜻하는 ‘캄피오네’를 외치며 온 도시가 취했다. 우리 역시 성공적인 합동행사를 치른 것을 자축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을 얼싸안고 환호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리를 메운 붉은 악마와 비슷한 모습에 잠시나마 한국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열정, 자유로움, 흥이 가득한 바르셀로나의 정서를 만끽한 밤, 왜 교민들이 한국과 스페인은 ‘닮은 꼴’이라고 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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