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1

2011.06.13

대한민국 의사 선생님들 가슴에 손 얹고 답해보세요

의사와 윤리의식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입력2011-06-13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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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의사 선생님들 가슴에 손 얹고 답해보세요

    히포크라테스 동상

    얼마 전 고려대 의대 남학생 3명이 동료 여학생을 집단으로 성추행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5월 21일 이들은 6년 동안 함께 수학한 동기 여학생 A씨와 경기 가평 용추계곡의 한 민박집에서 술을 마신 뒤, A씨가 잠이 들자 옷을 벗기고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는 것.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자신들의 성추행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했다는 점이다. 다음 날 A씨는 경찰과 여성가족부 성폭력상담소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고, 학교 상담센터에도 관련 사실을 알렸다. 그는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안팎서 낯 뜨거운 일탈 행동

    이 사건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해당 남학생들의 퇴교를 요구하며 인터넷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퇴교 요구에 서명한 사람이 순식간에 1만 명을 넘어섰다. “불순한 학생들이 의사가 된다고 생각하면 역겹다”는 것이 서명의 주된 이유다. 이처럼 사회적 파장이 큰 이유는 그들이 예비 의사 신분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직업 특성상 환자의 신체를 보고 만질 수 있다. 물론 의료 차원의 진찰과 치료 행위에만 국한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신체의 은밀한 부위 또는 성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보고 만질 수 있다. 그러므로 고도의 윤리 의식과 전문 직업관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의사가 됐음에도 이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5월 19일 전북 모 병원 마취과 레지던트 B씨는 만취 상태로, 입원 중인 C씨 침대에서 나란히 누워 잠을 자다 발각됐다. 도대체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의사이기에 낯 뜨겁고 부끄럽다.

    10여 년 전부터 전국 의과대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한쪽에선 수재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우려하며 대한민국 미래를 걱정했다. 다른 한쪽에선 우수 인재가 의대에 몰리는 만큼 한국 의료가 획기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했다. 이런 시점에 일부 의대생과 전공의가 철없고 무분별하며 비윤리적인 일탈 행동으로 국민 전체에게 크나큰 걱정거리를 안겨줬다.



    이제부터라도 의사가 되려는 이가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에 반드시 윤리 의식을 포함시켜야 한다. 임상 의사에게는 상위 몇 % 이내의 훌륭한 성적과 뛰어난 지적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철저한 윤리 의식이다. 의학도나 기존의 의사 모두 철저한 자기 탐색과 성찰이 필요하다. 필자는 감히 본인을 포함한 선후배 및 동료 의사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자기 설문 양식의 질문과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당신은 환자의 몸과 마음을 진찰하면서 그들의 존엄성을 인정합니까? 만일 그러하다면 지금의 그 가치관을 잊지 마십시오. 만일 아니라면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또는 당신의 자부심만큼 소중한 사람이 환자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진료에 임하십시오.

    둘째, 당신은 환자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개인적인 호기심 내지는 편향된 감정을 배제합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의 그 평정심을 잘 유지하십시오. 아니라면 적어도 환자를 진료하는 순간만큼은 사회적 계층, 성별, 외모, 빈부 차이 등을 잊고 그들을 대하십시오.

    대한민국 의사 선생님들 가슴에 손 얹고 답해보세요

    의사는 고도의 윤리 의식과 전문 직업관을 갖추어야 하므로 의사가 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사진은 환자의 상태에 대해 논의하는 산업사회 의사들의 모습.

    셋째, 당신은 환자를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달콤하거나 위협적인 언행을 사용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라면 당신은 의사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정말 훌륭한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혹시 그렇다면 당신은 돈을 벌거나 의사로서의 권위를 지키려는 목적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보십시오. 경제적 이득과 권위는 훌륭한 의사가 되면서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먼저 추구하려고 하면 훌륭한 의사가 되기 어렵습니다.

    넷째, 당신은 동료 의사를 사랑해 그들을 형제나 가족처럼 여기면서 환자의 치료를 위해 서로 협력합니까? 그러하다면 당신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잘 따르는 의로운 의사입니다. 의료계에서 명망과 신임이 분명할 것입니다. 아마 다른 직역의 사람과도 원활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겠지요. 그러나 아니라면 당신은 그저 서로 경쟁하는 음식점 주인과 비슷해집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만 한목소리를 내는 집단적 이기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다섯째, 환자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합니까? 이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그대로 나오는 문구입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당신은 의사 제1의 본분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입니다. 아니라면 도대체 제1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해보십시오. 다른 어떤 대답도 당신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당신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성적인 느낌 또는 욕구를 배제합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자기 조절과 통제 능력을 갖춘 의사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부터 집중적인 자기반성과 도덕성 강화훈련에 들어가십시오. 양서를 읽고 명상을 하며 멘토(mentor)를 구해 충고와 조언을 얻으십시오.

    한 가지 더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은밀하게 성적 충동을 행동으로 옮긴 적이 있습니까? 아니라면 당신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모습의 의사일 뿐입니다. 그러하다면 당신의 면허 유지가 위험하니 지금이라도 이직을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의 추악한 성적 충동 및 행동 때문에 피해자가 된 환자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십시오. 불명예스럽고 창피한 불상사에 처하기보다 지금의 퇴진이 당신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환자를 위해 더 나은 선택입니다.

    신뢰와 애정, 그래서 의사는 醫師다

    이상 여섯 가지 질문에 모두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의사라 할 것이다. 어떤 의사는 다음과 같이 반문하기도 한다.

    “왜 우리 사회는 의사에 대해서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가혹한 판단을 내리나?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불공평하다. 의사가 된 것이 억울하고 때론 후회된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인 것 같다. 의사라는 직업을 단지 여러 직업 중 하나로 여기는 경우라면 말이다. 그러나 의사는 다르다. 의사를 한자로 쓰면 ‘醫師’다.‘師’는 스승을 의미한다. 대단한 영광이고 책임이다.

    의사 처지에선 존경과 권위는 별로 주어지지 않은 채 책임과 비난만 더 많이 부과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는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존경과 권위를 다시 찾아 진정한 의사로 거듭난다면, 스승을 뜻하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국민의 신뢰와 애정이 배어들 것이다. 각고의 노력과 부단한 자기 성찰을 하는 의사, 그리고 사회의 모범과 귀감이 되는 도덕성을 갖춘 ‘의사 선생님’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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