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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본능? 이성? 짝짓기의 비밀 03

동물의 왕국선 센 놈만 한다

승자독식 짝짓기는 원초적 본능…약한 수컷 배려 인간만 ‘배란 은폐’

  • 송홍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동물의 왕국선 센 놈만 한다

동물의 왕국선 센 놈만 한다

‘동물의 왕국’에서의 짝짓기는 권력을 가진 ‘대장’의 특권이다. 사진은 다람쥐 원숭이.

600만 년 전 남성의 성기에는 가시(spine)가 있었다. 왜일까. 질 베제라노 박사가 이끄는 미국 스탠포드대 발달생물학 연구팀은 “성관계를 맺은 여성이 다른 남성과 몸 섞는 것을 막고자 가시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일부일처제가 정착하면서 남근(男根)이 매끄럽고 부드럽게 바뀐 듯하다는 게 연구팀의 추정이다. 일부일처제를 따르지 않는 일부 동물의 수컷 성기에 가시가 남아 있다. 홍어 수컷은 암컷 몸에 가시를 박고 흘레붙는다. 성기가 두 개인 데다, 그 크기가 몸길이 3분의 1에 이르는 홍어를 옛 사람들은 생식이 괴이하다고 해서 해음어(海淫魚)라고 불렀다.

동물 눈엔 사람의 짝짓기가 괴이할 것이다. 배란을 숨기는 영장류는 사람이 유일하다. 여성도 배란이 언제 일어나는지 알기 어렵다. 반면 나방 암컷은 발정기가 되면 수컷을 유혹하고자 화학물질을 내뿜는다. 개코원숭이 암컷은 빨갛게 부풀어 오른 성기를 드러내놓고 흔든다. 사자 암컷도 큰 대(大) 자로 누워 속살을 보여주며 앙탈을 부린다.

배란 시기를 모르면 후손을 낳아 DNA를 퍼뜨리는 데 불리하다. 사람에게서 ‘배란 은폐’가 일어난 까닭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이 있는데, 그중 ‘아버지를 집에(father-at home)’라고 부르는 가설을 갈래로 나눠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대장 다람쥐원숭이 “암컷은 다 내 거”

△수컷이 배란 시기를 알면 그때만 특정 암컷을 독점해 정자를 뿌린 뒤 다른 암컷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것이 DNA를 더 많이 퍼뜨리는 데 유리하다. △수컷이 다른 암컷을 찾아 떠나면 암컷이 양육을 도맡아야 한다. 하지만 배란을 은폐하면 수컷이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암컷이 배란을 은폐하면 언제 임신 가능한지 알 수 없으니 수컷 처지에선 다른 수컷으로부터 암컷을 지키는 데 유리하다. 또 태어난 새끼가 자신의 DNA를 가졌다는 것을 확인하려면 암컷 곁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다면 배란 은폐가 일어나지 않는 동물의 짝짓기는 남녀의 그것과 얼마나 닮고, 얼마나 다를까.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 사는 다람쥐원숭이 무리의 대장은 ‘홍만’이다. 녀석은 다른 수컷보다 덩치가 크다. 이 무리의 새끼 원숭이는 모두 녀석의 자식이다. 다른 수컷 원숭이는 녀석이 집권한 이후 암컷과 ‘러브’하지 못했다. 대장 자리에 오르지 못한 수컷은 평생 짝짓기 한 번 못하고 죽는다. 다람쥐원숭이 암컷의 몸은 봄에 달아오르는데, 그때마다 짝짓기를 하고자 반란을 일으키는 수컷들을 ‘홍만’은 성공적으로 제압해왔다.

다람쥐원숭이 암컷의 권력관계는 생식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적으로 매력적인 암컷이 권력 피라미드에서 상위를 차지한다. 대장이 총애하는 암컷이 2인자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다람쥐원숭이 암컷의 전성기는 3~8세로, 이즈음 수태가 가장 잘된다.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늙은 다람쥐원숭이 암컷의 모습은 처량했다. 수컷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면 몸도 눈에 띄게 약해진다.

‘홍만’은 덩치가 커서 대장이 된 게 아니라, 왕위에 오른 뒤 덩치가 커졌다. 다람쥐원숭이처럼 권력을 잡은 뒤 호르몬 작용으로 체격이 좋아지는 종이 적지 않다. 대장이 무리의 암컷을 독식하는 기린의 경우, 대장 자리에 오른 기린은 목이 더 길어진다. 그래서 무리 가운데 가장 긴 목을 자랑한다. 기린 암컷은 목이 가장 긴 녀석하고만 성관계를 맺는다.

암사자 ‘비너스’, ‘색공’으로 군림

동물의 왕국선 센 놈만 한다

발정기 때 암컷은 속살을 보여주며 앙탈을 부린다.

유전자를 후대의 퍼뜨리려는 욕구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본능이다. 암컷을 독차지하는 ‘홍만’ 탓에 수도승처럼 사는 다람쥐원숭이들의 고통과 기갈이 얼마나 심할까. 하지만 다람쥐원숭이 암컷은 무정하게도 ‘센 놈’, 그리고 ‘권력을 가진 놈’과만 흘레붙는다.

영장목 성성잇과에 속하면서 침팬지 다음으로 사람과 가까운 고릴라 암컷도 ‘강한 놈’하고만 몸을 섞는다. 고릴라 집단에서 대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고릴라 집단에선 암컷과의 짝짓기를 독차지하는 대장을 ‘실버백’이라고 부른다. 정권을 잡은 고릴라는 등의 털이 은색 혹은 회색으로 변하기 때문. 권력을 장악하면서 털색이 ‘럭셔리’하게 바뀌는 것이다. 사람도 권력을 잡으면 자신을 돋보이려 하기는 마찬가지다. 남성도 여성을 유혹하고자 센 척, 돈 많은 척하기 일쑤다.

등에 은색 혹은 회색 털이 난 고릴라는 앞선 대장이 암컷들의 질에 정자를 뿌려서 태어난 새끼를 다 죽인다. 인간사회에서도 계부가 영아살해의 범인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고릴라 암컷이 배란을 은폐할 수 있었다면 실버백의 영아살해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람 처지에서 배란 은폐는 ‘강한 놈’에게는 제약이다. 여러 여성과 성관계를 맺을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 반면 약한 남성에겐 일종의 보호정책과도 같다.

에버랜드 사파리에 사는 암사자 ‘비너스’는 ‘색공’을 무기로 권력을 지닌 수사자를 거느리면서 실력자가 됐다. 비너스는 섹스를 권력 유지 도구로 사용한다. 가장 센 수컷을 다스려 작은 초원을 지배한다. 비너스는 2002년 수사자 ‘여비’가 집권할 때부터 여제로 군림했다. 비너스의 관능에 포박당한 젊은 수사자가 쿠데타로 대장 자리에 오른 뒤 늙으면 비너스에 매료된 또 다른 수사자가 반역을 일으키면서 ‘사자 제국’의 왕위는 계승돼왔다.

비너스가 사파리를 다스리는 법은 비겁하지만 영특하다. 비너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자나 호랑이가 있으면 다가가 시비를 건다. 그럼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진 힘 좋은 수사자가 비너스가 시비를 건 사자나 호랑이를 혼내준다.

고양잇과 맹수의 암컷은 볼품없는 수컷에겐 좀처럼 몸을 허락하지 않지만, 사자는 승자 독식이 덜 엄격하다. 왕이 잠을 자거나 먹이를 먹을 때 서열이 낮은 수컷이 짝짓기를 한다. 반면 호랑이는 ‘센 놈’이 거의 모든 암컷을 독차지한다.

사자는 암컷이 발정하면 하루 종일 암컷 곁에 머무르면서 20~40번 성관계를 갖는다. 하루에 60번 넘게 암컷 질에 성기를 밀어 넣는 녀석도 있다. 암컷의 발정기는 개체마다 다르다. 왕은 날마다 새로 발정한 암컷을 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랫도리 힘이 약해진다. 쾌락이 쿠데타의 빌미가 되는 것.

비너스는 사람의 눈으로는 종잡을 수 없는, 맹수의 눈에만 보이는 특별한 매력을 지녔다. 권력을 잡은 수사자의 목덜미를 핥는 비너스의 혀는 능란했다. 녀석은 강한 수컷을 ‘핥고 빠는’ 데 능숙하다. ‘타임’ 편집장 리처드 스텐겔은 “유권자의 ‘엉덩이를 핥는(ass-licking)’ 데 능란한 정치가가 성공한다”고 말했다. 다독거리고(stroking) 빨아주는(sucking up) 데 뛰어나야 이성을 유혹하기에 유리하다. 암사자 비너스가 그렇다.

동물의 왕국선 센 놈만 한다

침팬지 사회에서는 상위계급의 수컷이 암컷과 성관계를 나눠 갖는 형태로 짝짓기가 이뤄진다.

침팬지 암컷에게도 성관계는 전략적 아부의 수단이다. 암컷은 실력자를 다독거리려고 엉덩이를 추켜세워 성기를 보여준다. 발정기엔 관계가 역전한다. 호의를 얻으려는 수컷이 음식을 바치고, 암컷의 털을 골라준다. 상위계급의 수컷들이 암컷과의 성관계를 나눠 갖는 침팬지의 경우, 권력 피라미드의 위쪽을 차지할수록 자신의 DNA를 후손에 물려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노련한 대장은 영향력 있는 암컷들의 몸단장을 돕고, 음식을 나눠주면서 혹시 있을지 모를 반역에 대비해 지지를 이끌어낸다. 버빗원숭이 암컷은 대장에게 빌붙음과 동시에 현재는 지위가 낮더라도 향후 권력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개체를 찍어 털 고르기를 해준다.

동물 세계에서 희귀하면서도 이상한 제도가 일부일처제다. 하지만 일부일처제가 있기에 약한 남성도 짝짓기를 하고 후손을 남길 수 있다. 늙고 보잘것없는 여성 역시 마찬가지. 혹자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금수와 한 범부에 넣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의 짝짓기도 깊이 들어가면 동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단지 사람의 이성이 만든 제도가 포장하고 있을 뿐.



주간동아 2011.05.09 786호 (p28~30)

송홍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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