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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막걸리 한 잔에 빈대떡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막걸리와 빈대떡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막걸리 한 잔에 빈대떡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막걸리 한 잔에 빈대떡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빈대떡은 갓 갈아낸 녹두를 사용해야 향이 제대로 살고, 돼지기름을 써서 지져내야 고소한 맛이 난다. 빈대떡이 맛있는 집은 그래서 귀하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한국에 거주하거나 관광 온 외국인, 특히 일본인을 대상으로 막걸리에 어울리는 안주에 대해 묻는 것을 봤다. 대답은 단연 ‘지짐이’ ‘부침개’ ‘전’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 대답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설문에 불만이다. 막걸리에 부침개가 어울린다는 것은 다 안다. ‘막걸리에 어떤 부침개가 어울리는가’를 물어봤어야 했다. 파전, 빈대떡, 김치전, 부추전, 배추전, 동그랑땡, 애호박전, 깻잎전, 가자미전, 육전, 굴전, 고추전, 가지전 가운데 도대체 어떤 부침개가 막걸리에 어울리는 걸까.

막걸리 붐을 타고 최근 개업한 선술집은 기본 안주로 부침개를 마련해둔다. 메뉴판 최상단에 있는 것이 ‘모듬전’이다. 그런데 빈대떡이 있는 선술집은 드물다. 옛날에는 막걸리집이라 하면 으레 빈대떡집이었던 사실을 요즘 젊은 세대는 공유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녹두를 갈아야 하고 또 질 좋은 돼지기름을 구해야 하는 일이 귀찮아 그런 것일까.

서울 사대문 안에는 유서 깊은 빈대떡집들이 있다.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선술집이다. 그런데 이들 빈대떡집은 오늘날 막걸리 붐과 아무 연관도 없는 듯 보인다. 그곳엔 단골들만 북적인다. 막걸리 붐이라고 빈대떡집에 찾아와 막걸리를 마시는 젊은이는 거의 없다. 막걸리 붐은 젊은이가 들락거리는 유흥가에나 있는 유행인 것이다.

빈대떡집에선 빈대떡이라는 이름을 놓고 논란이 벌어진다. 빈대떡을 파는 종로 뒷골목에 빈대가 많아 빈대떡이라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전설’이 등장하기도 한다. 빈대떡 어원에 대한 ‘가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빈대(賓待)떡, 즉 귀빈을 접대하는 떡이란 말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억지스럽다. 귀빈을 접대한다는 뜻이 되려면 한자어 구성 원리상 대빈(待賓)떡이라 해야 한다. 후세에 누군가 꾸며낸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빈자(貧者)떡, 즉 가난한 자의 떡으로 빈자떡이라 하다가 빈대떡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빈자떡이 빈대떡보다 더 흔하게 쓰였는데, 그 빈자가 곧 가난한 자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셋째, 중국음식 이름인 병저(餠)가 빙자→빈자→빈대로 바뀌었다는 설이다. 문헌자료까지 있어 상당히 신빙성 있어 보인다.

여기까지는 널리 알려진 빈대떡 어원에 대한 주장이고, 최근 이 빈대떡 어원 논쟁에 끼어들 만한 새로운 ‘가설’이 나왔다. 빈대가 녹두라는 주장이다. 한자로 녹두(綠豆)는 ‘푸른 콩’이란 뜻이다. 녹두의 사투리(또는 옛말)에 푸르대가 있다. 사전에도 올라 있는 단어다. 우리 민족은 콩 이름에 ‘-태’라는 접미사를 붙였다. 서리태, 백태, 흑태, 오리알태…. 이를 한자로 ‘-太’라 쓰지만 이 한자는 표기를 위해 빌려온 것일 뿐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콩을 ‘-太’라 하지 않는다. 푸르대의 ‘-대’는 ‘-태’와 같은 것으로 콩을 말한다. 이 푸르대가 풀대→분대→빈대로 변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충분히 근거가 있어 보인다(인터넷에 떠도는 ‘가설’인데 아쉽게도 이 ‘가설’을 내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는 자리는 보통 논쟁거리가 하나 있어야 재미있는 법이다. 빈대떡 어원 논쟁에 ‘푸르대 어원설’을 보탰으니 막걸리 맛이 더 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막걸리에는 빈대떡이 제일이다.



주간동아 2011.05.02 785호 (p68~68)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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