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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의 캐릭터 들쑤시기

엽기 야동 멜로 버럭 “노인도 남자다” 선언

신세대 노인 이순재

  • 김용희 평론가·평택대 교수 yhkim@ptu.ac.kr

엽기 야동 멜로 버럭 “노인도 남자다” 선언

엽기 야동 멜로 버럭 “노인도 남자다” 선언

강풀 만화가 원작인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이순재는 ‘하이킥’ 시리즈 등에서 그간 연기해온 열혈노인 캐릭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노인 캐릭터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은 고정돼 있다. 유교 전통 속에서 노인은 ‘어르신’이라 불리며 공경의 대상, 연륜과 위엄의 상징으로 존재해왔다. 노인은 ‘점잖은 체면’이나 ‘나잇값’을 지녀야 한다고 강요받는데, 이는 나이가 주는 선물인 동시에 저주처럼 보인다. 1990년대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는 “신자유주의 자본경제에서 동아시아의 경로(敬老) 의식은 동양적 온정주의와 함께 자본주의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걱정이 노파심에 불과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노인은 경로의 대상이 아니라 문젯거리가 됐다. 독거노인, 노인의 성(性), 노인 우울증, 치매노인…. 특히 연금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한국의 경우, 노인은 아직 버리지 못하고 광에 모셔둔 구형 텔레비전 신세가 돼버렸다. ‘좋은 새것’의 시대를 맞은 현재. 노인은 귀찮은 ‘헌것’이 된 것이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이순재는 기존 ‘노인’에 대한 선입견을 하이킥으로 날려버렸다. 식구들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질 않나, 남 앞에서 함부로 방귀를 뀌거나 몰래 야동에 빠지질 않나. 또 여자 교감과 연애를 하면서 과도한 남성성을 보이려 애쓰질 않나. 그는 점잖기는커녕 사춘기 진행형의 청년처럼 혈기충천하다. 무례하고 주책스럽지만 로맨틱한 연애를 꿈꾸는 낭만주의자다. 열혈노인의 등장인 것이다.

개봉 중인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도 이순재는 열혈노인 캐릭터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강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원작자의 말대로 ‘지붕 뚫고 하이킥’의 이순재를 한옥 동네에서 다시 구성해낸다. 영화 속 그는 성질이 더럽다.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욕을 해댄다. 시트콤이 아니니 함부로 방귀를 뀌지는 않지만(방귀 뀌기는 코믹물에서 필수 미장센이다), 멜로 휴먼극답게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스쿠터를 타고 새벽 우유배달을 하는 김만석(이순재 분)은 폐지를 팔아 먹고사는 송씨 할머니(윤소정 분)를 만난다. 모든 사람이 잠든 새벽. 그들은 우유를 배달하고 폐지를 모으면서 스치고, 만나고, 서로를 돕는다. 김만석은 이름 없는 그녀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사랑의 편지를 쓰고, 생일 케이크를 준비하면서 로맨스 노인으로 변해간다. 송씨 할머니는 연애를 시작하면서 글씨를 배우고, 이름과 주민등록증을 얻고, 사랑의 편지를 쓰게 된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우리 곁에 방치된 독거노인과 소외된 부모세대의 사랑과 고독과 자살에 대한 영화로, ‘사랑은 나이와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강력한 우리 시대의 구원’이란 메시지를 전한다.



삶이 덧없기에 소중하듯, 죽음이 가까이 와 있는 노인들이라 ‘사랑’이 더욱 값지게 빛난다.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오직 남는 것은 사랑이다. 그러나 ‘나이듦’이나 ‘늙은 부부의 사랑’이라는 진부하리만큼 낯익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닭살 소재가 5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깜찍발랄 엽기충천 ‘캐릭터’ 때문이다. 즉, 전혀 다른 것들이 충돌하고 결합해 녹아든 김만석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그린 덕분이다. 욕쟁이 영감과 낭만 멜로의 결합, 점잖은 노인의 야동 즐겨보기, 스쿠터를 타고 연애 즐기기(스쿠터나 오토바이는 젊은이의 상징임에도…. 그러니까 오늘의 명언은 ‘연애를 하려면 스쿠터나 오토바이를 사야 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캐릭터 발굴로 신파, 통속, 최루성 멜로의 단순평면 코드는 입체성을 띠게 된다. 1990년대에 ‘신세대’란 말이 유행하면서 청바지에 빨간 티를 입고 젊게 사는 노인상이 신세대 노인으로 통한 바 있다. 매체들은 앞다퉈 가만히 있는 노인들에게 청바지와 빨간 티를 입히려고 용썼다. 젊어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체면과 도리를 들먹이면서 정직한 욕망을 억누르는 행태가 오히려 속되다. 이것이 ‘엽기 야동 멜로 버럭’ 이순재 캐릭터에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다.



주간동아 779호 (p77~77)

김용희 평론가·평택대 교수 yhkim@p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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