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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동일본 대지진 한반도가 떤다 07

지진과 쓰나미 휩쓴 자리 희망을 키우고 있었다

동아일보 박형준 기자의 동일본 대지진 현장 르포

  • 박형준 동아일보 기자 lovesong@donga.com

지진과 쓰나미 휩쓴 자리 희망을 키우고 있었다

3월 12일 기자는 동일본 대지진 취재를 위해 미야기(宮城) 현 센다이(仙臺) 시로 왔다. 11일 지진이 일어났으니 발생 하루 만에 일본으로 온 것이다. 이곳에서 다양한 현장을 둘러봤다.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의 피해, 피난소 사람들, 물과 식량이 부족한 현장, 자원봉사하는 모습…. 그 과정에서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깜짝깜짝 놀랐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 배려 생수 건네준 택시기사, 방 내준 호텔

12일 오후 3시경 후쿠시마(福島) 공항에 도착해 센다이까지 택시를 타고 왔다. 저녁때가 되자 슬슬 배가 고팠다. 편의점에 들렀지만 헛수고였다. 대부분 편의점은 문을 닫았고 영업하는 곳에도 음식이 없었다. 센다이가 가까워질수록 편의점에는 아이스크림조차 다 팔렸다.

식당을 찾아봤지만 문을 연 곳은 전혀 없었다.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지진 취재에서 물과 음식이 없으면 큰 문제다. 아무 준비 없이 일본에 온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고민하는 기자를 본 택시 운전사 에가와 히로시(江川洋·25) 씨는 센다이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는 “밥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없어 미안하다. 그 대신 빵과 과자, 생수를 가져왔다”며 비닐봉지를 건넸다. 후쿠시마에서 센다이까지 약 6시간을 달려왔지만 에가와 씨의 배려에 피곤함이 사라졌다.

호텔에서도 따뜻한 배려를 느꼈다. 그날 밤 늦게 센다이에 도착했기 때문에 호텔 잡기가 쉽지 않을 터. 하지만 첫 번째 방문한 곳에서 단번에 잡을 수 있었다. 센다이 역 인근 프린스호텔이었다. 종업원 사토 사야카(佐藤淸香) 씨는 “한국에서 온 기자라면 방을 마련하겠다. 일본인은 어떻게든 일본에 거처가 있지만 한국에서 왔다면 얼마나 힘들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참상을 잘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보니 그 호텔은 신규 고객을 모두 거절하고 있었다. 여진으로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 하지만 하루 전 밤늦게 찾아온 기자에게만은 방을 내준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을 취재하는 전 과정에서 물과 음식 부족은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일부 편의점은 물품을 공급받아 문을 열기도 했으나 서너 시간 지나면 모두 동이 났다. 사정이 그렇다면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와 남보다 빨리 물건을 몽땅 사들고 나올 법하다. 하지만 일본인은 철저하게 줄을 서서 차례대로 물품을 구매했다. 그 줄은 물건이 다 팔릴 때까지 계속 유지됐다. 일본인에게는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빨리 움직이는 사람이 임자’인 한국 상황에 익숙한 기자로선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 질서 새치기 없이 차례대로 물품 구매

새치기하는 차량도 보지 못했다. 12일 후쿠시마에서 센다이로 오는 국도는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당시 후쿠시마 현에 있는 원전이 문제가 돼 후쿠시마를 탈출하려는 차량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평상시 2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6시간이나 걸렸다.

택시에서 보니 국도 곳곳에 비상도로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차량도 비상도로를 이용해 빨리 가지 않았다. 위험신호를 감지하고 피난하는 과정에서도 모두 질서를 지키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어릴 때부터 배려, 질서 등을 강조하는 일본 문화가 몸에 배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피난소에서도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 모두가 따랐다. 대지진 초기에는 물과 전기가 없었다.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봐도 물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자 대변과 소변 보는 곳을 따로 정해놨고 모두가 그 규칙을 지켰다. 하찮게 보이는 규칙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규칙을 모두 지킨 덕분에 피난처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할 수 있었다.

# 동료의식 눈에 띄는 모든 사람에게 “피하세요”

취재 도중 쓰나미 경보가 울린 적이 있다. 14일 오전이다. 당시 센다이에서 택시를 타고 남쪽으로 약 30분 떨어진 나토리(名取) 시 유리아게(上)로 가고 있었다. 유리아게는 해안 마을이어서 쓰나미의 피해가 컸다. 그런데 갑자기 해안 마을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던 자위대 차량이 전속력으로 기자가 탄 택시 방향으로 달려왔다. 라디오에선 “3m 규모의 쓰나미가 관측됐다. 도착까지 15분 걸리니 해안에서 빨리 벗어나라”는 경고가 나왔다. 택시 운전사는 기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갑자기 유턴했다. 기자는 운전사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곧장 내렸다. 좀 더 해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갑자기 한 일본인이 기자의 팔을 잡았다.

“지금 해안으로 가면 죽습니다. 바닷가로부터 전속력으로 달아나야 합니다. 빨리 뛰어요.”

그는 기자만 챙길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도 계속 쓰나미 경고를 했다. 그 경고를 듣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일일이 주변 사람들에게 “쓰나미가 옵니다. 도망가세요”라고 알려줬다.

물론 지진과 쓰나미가 잦은 일본에서는 원칙처럼 정해진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 살기도 바쁜 와중에 외국인까지 챙기는 모습은 한국에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 참사 바닷가 마을 통째로 사라진 집

지진과 쓰나미 휩쓴 자리 희망을 키우고 있었다

3월 13일 나토리 시에서 목숨을 겨우 건진 한 여성이 대지진과 쓰나미가 몰아닥치기 전까지 도로였던 곳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

지진과 쓰나미의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사망자 수는 얼마가 될지 모를 정도로 매일 발표할 때마다 늘어났다. 특히 이와테(岩手) 현의 바닷가에 자리 잡은 도시들은 피해가 컸다.

이와테 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시는 약 80%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쓰나미에 일부 건물이 무너진 게 아니라 모든 집이 통째로 사라진 것. 마을 초입에 도착했을 때 기자는 날카로운 대형 송곳이 들판 빼곡히 들어선 것으로 착각했다. 찬찬히 살펴봤더니 송곳은 목재 가옥의 기둥과 서까래 등이 부서진 잔해였다. 쓰나미가 덮치면서 산 아래 일부 가옥을 빼고는 모든 집이 산산조각 났다.

사실 기자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다까지는 8km나 남아 있어 마을 초입에서는 바다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형체 없이 마을이 쓸려나갔다는 게 이상했다. 그 비밀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에 있었다. 바다에서 시작된 쓰나미가 강을 타고 올라왔고, 강폭이 줄어드는 것과 반비례해 쓰나미의 위력은 훨씬 강해진 것.

강 양쪽으로 집들이 사라지면서 리쿠젠타카타는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정도로 변했다. 잔해 더미에는 무수히 많은 시민이 깔려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위대가 포클레인으로 작업을 벌이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많이 널려 있는 잔해를 다 치우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를 정도였다. 리쿠젠타카타 시청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14일 현재 신원을 확인한 사망자는 70명, 행방불명은 1282명이다.

이와테 현 오후나토(大船渡) 시의 피해도 컸다. 철근을 사용한 건물은 다행히 쓰나미에 견뎠지만 목재 가옥은 모두 파손됐다. 이 때문에 마을 곳곳에 건물이 들어서 있기는 하지만 목재 가옥의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액화석유가스(LPG) 탱크도 쓰나미에 떠내려가 도로 한가운데 있었다. 위험천만이었다.

# 희망 살아만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전례 없는 대참사 속에서도 일본인은 차분했다. 피난소에 들르면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지내고 있었다. 자원봉사자가 꾸려져 노인들을 돌봤다. 피난처 명부를 붙여놔 누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피난소에서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볼 때면 기자도 힘이 났다. 리쿠젠타카타에 사는 간노 게사(管野子·58) 씨는 쓰나미 후 6명의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기자가 15일 피난소에서 간노 씨를 만났을 때는 6명 모두 재회를 했다. 간노 씨는 인터뷰 내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너무 감격스럽고 기쁜 나머지 눈물이 나온 것이다.

간노 씨의 집은 쓰나미로 흔적조차 사라졌다. 쓰나미 당시 귀중품이나 지갑을 챙길 여유도 없었다. 피난소에서 음식과 잠잘 곳을 주지 않으면 당장 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이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살아만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간노 씨의 남편 간노 유키오(管野幸男·58) 씨가 스스로 다짐하듯 한 말이다. 그 말은 모든 일본인이 마음속으로 되새기고 있지 않을까 싶다.



주간동아 779호 (p34~36)

박형준 동아일보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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