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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구려는 미래의 역사, 웅대한 자부심 제대로 알리겠다”

‘고구려’ 펴내는 김진명 작가 “강대국 틈바구니서 우리가 먼저 강해져야죠”

  • 이설 기자 snow@donga.com journalog.net/tianmimi

“고구려는 미래의 역사, 웅대한 자부심 제대로 알리겠다”

“고구려는 미래의 역사, 웅대한 자부심 제대로 알리겠다”
1993년 한국에선 ‘김진명 꽃’이 활짝 피었었다. 600만 부가 팔린 희대의 베스트셀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이하 무궁화)가 출판계를 강타했다. 이후 그는 작품을 내는 족족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종횡무진 한반도 역사를 휘젓는 게 그의 전매특허. ‘김진명표 소설’이란 말도 나왔다. 그런 그가 일생 벼려온 소설 ‘고구려’를 들고 나왔다. 3월 1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김진명(54) 작가를 만났다.

“고등학생 때는 쾌활하고 말을 참 잘했다. 같은 말이라도 내가 하면 다들 재미있어서 뒤로 넘어갔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간 뒤 ‘말’에 회의를 느꼈다. 사람들 만나서 수많은 말을 나눠도 집에 돌아오면 그저 말에 불과했구나 싶어 허탈했다. 행동이 말을 못 따라가는 데서 느끼는 갭이 컸다. 그래서 말을 천천히, 노인처럼 하는 연습을 했다.”

인터뷰는 ‘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학창 시절 어땠느냐”는 질문의 답변이 곧장 말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는 맑고 굵은 음성으로 느릿느릿 이야기했다. 이따금 문장과 문장 사이 긴 공백이 이어졌다. 부드러운 다갈색이되 펀치가 묵직한 눈빛. 덩달아 머릿속에서 질문을 곱씹어 조심조심 꺼내놓았다.

▼ 청춘 시절 주 관심사는.

“공부는 안 했다. 입시 위주 교육은 쫓아가기 싫었다. 풍성하고 아름다워야 할 소년 시기를 그렇게 소진하고 싶지 않아서 ‘참나’를 찾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시키는 공부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 반 성적도 뒤에서 세 번째였다. 62명 중 야구 특기생, 아이스하키 특기생 다음이 나였다.”



▼ ‘무궁화’를 선보이며 곧장 작가로 데뷔했다. 언제부터 습작했나.

“‘무궁화’가 처음 쓴 소설이다. 대학 때까지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작가로서 소양을 갖췄다고 본다. 글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가의식을 갖추면 등단하거나 작품을 내지 않아도 작가라고 본다. 군대 가기 전까지 도서관에서 살면서 ‘세상의 모든 책을 소화하겠다’는 각오로 책을 읽었다. 습작 과정을 거치지 않았지만 의식이 날카로운 상태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무궁화’는 쓸 때부터 히트를 예감했다.”

▼ 청춘 시절 나를 바꾼 한 권의 책을 꼽는다면.

“고 2 때 읽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교과서에 영국 수필가 월터 페이터가 ‘명상록’에 대해 쓴 글이 실렸는데, 관심이 생겨 원전을 찾아봤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임에도 거지 옷을 입고 거지 음식을 먹었다. 물질적 성취보다 내면의 성취를 이루려 애썼고, 그의 인생에서 현실적 가치는 헛된 것이라는 점을 간접 경험했다. 이는 지금도 내 인생의 큰 지침이다.”

▼ ‘명상록’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살고 있나.

“돈을 모으거나 경쟁 교육을 시키는 데 관심이 없다. 여행, 식도락, 술을 좋아해 돈은 모으기보다 주로 쓴다. 돈 모으는 데 재미를 들여 의미를 따지는 삶과 멀어질 것을 경계해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부모가 아이를 만드는데, 나는 독서 하나만 강조했다. 아내도 영문학도로 인문학적 마인드가 강해 뜻이 같았다. 다행히 아이들도 잘 따라줬다. 스물아홉인 큰아들은 현재 문학, 뮤지컬 등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이번 ‘고구려’를 쓰는 데 도움을 많이 줬다. 스물셋인 둘째 아들은 군대에 있다.”

▼ 20대 내내 책만 읽었나. 미남이라 인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2학년 겨울방학 전에 ‘이제 연애를 해봐야겠다’싶었다. 모교(한국외대) 정문 앞에서 오가는 여학생을 관찰했다. 관상학 책도 섭렵해 내면이 알찬 여성을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마음이 끌려 따라간 여학생이 지금 와이프다. 둘 다 사랑의 순수를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군대 갈 때도 ‘다녀올게’ 이러고 말았다. 사랑의 의미를 평생 모르고 죽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인간(人間)’이란 단어에서 보듯,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관계이고, 그중 핵심은 사랑이다. 여기서 사랑은 남녀 간 사랑만을 뜻하지 않는다. 혼자 사색하고 공부해도 사람을 고민하면 그게 곧 사랑이다.”

‘삼국지’ 필적할 13부작 ‘고구려’

‘무궁화’600만 부, ‘몽유도원(가즈오의 나라)’ 200만 부, ‘황태자비 납치사건’ 100만 부, ‘하늘이여 땅이여’250만 부, ‘1026(한반도)’100만 부…. 그의 이름은 이제 출판가에선‘흥행보증수표’, 독자들에겐 ‘KS마크’가 됐다. 신작 ‘고구려’ 1권도 출간 2주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4위에 오르며‘대박’을 예고하고 있다(3월 11일 기준). 총 13권 출간 예정인 ‘고구려’는 그가 17년간 염원해온 ‘인생의 소설’. 우선 3권까지 출간한 뒤 2, 3년에 걸쳐 전권을 완성할 계획이다.

▼ ‘고구려’가 필생의 역작이라는데. 왜, 언제부터 구상했나.

“고구려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다. 우리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미래의 역사다. 중국이 약소국에 머물렀다면 사정이 달랐을 거다. 하지만 중국이 부상하는 이상 고구려 역사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탐욕이 있는 나라이고, 우리는 500년을 속국과 다름없이 지냈다. 대한민국이 크려면 과거를 떨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한민족 역사와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고구려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 ‘민족·국가주의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늘 있다. 오늘날 시대정신과도 괴리가 느껴진다.

“인종, 국가 간 경계 없이 모든 나라가 휴머니즘을 공유하는 사회가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리비아인과 미국인의 인생은 천양지차다. 보편적 가치를 숭상하지만, 당장 이상에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다. 그 이상에 가닿으려면 우선 강해져야 한다. 내면의 힘을 키우고, 왜곡된 역사를 정립해 미·중·러·일 강대국 사이에서 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

▼ 첫 작품이 워낙 인기를 끌었는데. 후작에 대한 부담은?

“그런 면에서는 자유롭다. 앞서 말한‘명상록’은 ‘남의 칭찬, 원망, 비난이 얼마나 하찮은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수많은 영웅호걸도 지나간 존재일 뿐인데,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타인은 나뭇잎에 불과한 것 아닌가.”

▼ 역사나 사건을 뒤집어보는 작품을 많이 썼다. 무언가의 ‘이면’에 매혹되는 이유는.

“뉴스 형성 과정을 보자. 같은 일이라도 그 회사 수위와 회장이 아는 내용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성계가 함흥으로 오는 차사를 활로 쏘아 죽였다는 ‘함흥차사’ 에피소드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상식에 비춰보면 이방원이 이성계 세력 결집을 견제해 퍼뜨린 헛소문 아니겠는가. 대중은 ‘눈을 찔린 자들’이라 한다. 저지른 자는 숨기고 왜곡하는데 그것을 캐낼 사람은 없다. 기자나 학자도 여러 사정으로 한계가 있다. 작가는 시간과 노력을 충분히 투입해 자료를 찾고, ‘허구의 장’ 인 소설로 그것을 마음껏 풀어낼 수 있다. 10·26사건 핵심 관계자인 존천의 증언을 듣기 위해 쌀 수입자로 신분을 속여 인간적으로 접근했었다.”



주간동아 779호 (p56~57)

이설 기자 snow@donga.com journalog.net/tianmi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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