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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맞아 죽어나가도 “총이 좋아”

미국인들 총에 대한 유별난 집착…총기 보유 통해 정체성과 자부심 확인

총 맞아 죽어나가도 “총이 좋아”

총 맞아 죽어나가도 “총이 좋아”

1월 8일 미국 애리조나 주 투산에서 자행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치명상을 입은 민주당 가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 사진(가운데). 그가 입원한 병원 앞에 시민들이 촛불과 꽃을 가져다놨다.

미국에서는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면 일시적으로 총이 더 많이 팔린다. 사건을 계기로 규제가 강화될지 모른다는 우려로 일종의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2011년 1월 8일 애리조나 주 투산의 한 쇼핑센터에서 괴한이 총기를 난사해 연방판사를 포함해 6명이 숨지고 12명이 부상한 사건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음 날부터 전국 총 가게 매출이 일제히 늘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사건 바로 일주일 뒤, 투산에서 열리기로 한 총기 박람회는 예정대로 개최됐고 성황을 이뤘다. 박람회장 한구석에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조기가 을씨년스럽게 걸려 있었을 뿐이다.

미국은 한국의 우방이자 혈맹이다. 한국인도 양복을 입고, 양옥집에 살며, 양식을 즐긴다. 또 한국 사회의 많은 제도와 가치관이 미국에 동화됐지만 총에 대한 미국인의 집착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실제 미국인 중 많은 수가 총을 소유하면서 긍지를 느낀다. 소수인종보다는 주류사회에 속한 사람에게, 진보보다 보수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 여성보다 남성에게, 그리고 대도시보다 중소도시와 시골에서 사는 사람에게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군인도, 경찰도 아닌 민간인 어른이 총을 차고 다니며 기뻐한다.

총기난사 일어나면 사재기 현상

실제 미국 전체 가구의 40% 이상이 총을 보유한다. 가정집 총기 보유 실태는 어느 기관도 자신 있게 집계하지 못한다. 다만 설문조사 결과와 매년 미국에서 생산된 총의 내수 판매량, 총기 수입량 등을 근거로 추계할 따름이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2005년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 성인 1012명 중 42%가 총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시사 문제에 관해 믿을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고 자신하는 비영리 인터넷 사이트(justfacts.com)도 미국인 전체 가구의 40~45%가 총을 보유하고 있다고 추계했다.

미국에서는 주(州)마다 총기 관련 규정이 다르다.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던 애리조나는 버몬트, 알래스카와 함께 규제가 특히 느슨한 주다. 애리조나에서 총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손에 넣고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슈퍼마켓에서 우유 한 통을 사 가지고 나오는 시간보다 5분쯤 더 걸린다. 우유를 살 때에는 없는 신상확인 절차가 추가되기 때문. 신상 확인은 강력범 전과와 정신 병력이 있는지를 연방정부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알아보는 절차로 전화 또는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애리조나에서는 총을 휴대하고 길거리로 나오는 것도 행인 눈에 보이지 않도록 잘 감추기만 하면 무제한 허용된다. 대부분 주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총을 차려면 미리 신고해야 한다.



미국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08년 미 전역에서 총 1만6702명이 살해됐는데 이 중 67%가 총에 의한 살인이었다. 2007년에 총을 사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1만7352명이나 됐다. 사정이 이렇다면 민간인의 총기 보유를 금지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미국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정부가 보유 금지는커녕 총기 규제를 조금이라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많은 시민이 벌떼처럼 덤비며 반대한다. 다수의 정치인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혹은 표심을 사기 위해 동조하고, 사법부도 이에 공감하는 판결을 내린다.

애리조나 참사에서 범인의 제1목표였고, 현재 중태에 빠진 가브리엘 기퍼즈 의원도 몇 년 전 재선 캠페인을 앞두고 유권자들 앞에서 “나는 총을 보유하고 있으며 민간인의 총기 보유권을 강력히 옹호하는 사람”이라 했다. 사실 미국인 중에는 총기를 더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이른바 ‘반총’(反銃·antigun) 의견을 가진 사람도 많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흔히 ‘친총’(親銃·progun)의 아우성에 묻혀버린다.

미국 헌법에서 총에 관한 언급은 단 한 문장이 있을 뿐이다. 건국 당시 미국 사회의 중요한 제도이던 민병대의 역할과 관련해, 민간인이 무장할 권리를 인정한 조항이다. 이를 근거로 대부분의 미국인은 민간인의 총기보유권을 헌법이 보장한다고 믿는다. 2007년 CNN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002명 중 65%가 헌법이 총기보유권를 보장한다고 답했다. 성별로 구분해보면 남자의 72%, 여자의 58%가 그렇게 생각한다. 문제의 헌법 조항 전문은 이렇다.

헌법에서도 “무기 휴대할 권리”

총 맞아 죽어나가도 “총이 좋아”
“기강이 잘 선 민병대가 자유로운 주(州)의 안보에 필수적인 상황에서, 주민이 무기를 보유·휴대할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다.”

이 조항이 민간인이 총을 가질 권리의 근거가 될 수 있느냐를 놓고 전부터 반총 진영에선 이견이 많았다. 이 조항은 옛날 민병대원의 권리에 관한 것이어서, 지금의 민간인과는 상관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2008년 이 조항이 민병대 아닌 일반인에게도 총기보유권을 부여한다고 판결했다. 반총 쪽의 입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킨 해석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존의 총기 관련 각종 규제가 위헌은 아니라고 같은 판결에서 해석해 충격이 완화됐다. 판결에 앞서 대법원 판사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역사관 논쟁은 물론 원문의 해석을 둘러싼 문법 논쟁까지 벌어졌으나, 5대 4의 의견으로 이 판결이 채택됐다.

미국의 모태가 된 동부의 식민지들은 상비군 없이 민병대를 통해 군사력을 유지했다. 그 시절에도 북미의 프랑스 식민지 퀘벡과 무력 충돌이 수시로 있었을 뿐 아니라 인디언과의 대립, 폭동 진압 등을 위해서도 병력이 필요했다. 민병대는 평소 민간인 자격으로 각자 생업에 종사하다가 유사시 소집돼 군인으로 복무하는 병력을 말한다. 한국의 동원예비군과 비슷하지만 상비군에서 현역 복무를 마친 사람 위주로 편성되는 한국의 경우와 달리, 미국 민병대는 현역 복무 없이 처음부터 대기 자원으로 존속하는 점이 달랐다. 민병대는 평소 총기와 탄환을 집에 보관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영국은 본국인으로 구성된 정규군을 파견해 독립 세력을 진압하려 했는데 이에 맞선 병력이 각 식민지가 자체적으로 결성해 운영하던 민병대였다. 영국 정규군은 상비군이면서 직업 군인이었던 데 비해, 식민지 민병대는 아마추어 군인이었다. 독립 전 13개의 식민지가 영국 치하에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각기 다른 나라처럼 행동했다. 각 식민지는 이웃 식민지와 유대 없이 현지 주민으로 구성된 의회를 통해 자치했다. 이 전통에 따라 각 식민지는 독립선언 직후부터 자신들의 고장을 ‘나라’라는 뜻의 ‘스테이트’(state·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번역)로 호칭했다.

8년간의 전쟁 끝에 1783년 독립됐다. 13개 식민지가 통합되면서 연방정부가 수립된 것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나서였다. 이 과도기에 미국인 중 연방정부 수립에 회의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 큰 나라 영국을 싸워 쫓아낸 마당에 북미에 새로 큰 정부가 들어서면 각 주를 짓누르는 압제자가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뒷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중남미가 그랬듯 13개 독립국으로 존속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이런 논란 속에서 연방결성주의자들이 임시 연방의회 격인 대륙회의의 이름으로 헌법 초안을 만들었고 13개 주 의회에 비준을 요구했다. 압도적인 찬성으로 비준한 곳은 소수였고 대부분 팽팽한 토론 끝에 간신히 반수를 넘겨 비준했다. 버지니아 주는 조건부로 비준했다. 조건은 빠른 시일 안에 연방의 전횡에 제동을 걸 장치를 헌법에 추가한다는 것. 그 장치로 거론된 게 연방정부가 통수하는 상비군의 규모를 최소화하고, 그 대신 종전대로 주들이 운영하는 민병대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연방이 횡포해지면 민병대의 무력을 바탕으로 연방을 탈퇴할 수 있다는 으름장이기도 했다.

친총주의자 vs 반총주의자

총 맞아 죽어나가도 “총이 좋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월 12일 애리조나 주 애리조나대 매케일센터에서 열린 총기 난사 희생자 추모식에 참석해 가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의 남편 마크 켈리 씨를 포옹하며 위로하고 있다.

이런 진통을 거쳐 연방이 탄생하자 의회는 곧바로 헌법에 추가할 보완 조항 10개를 만들어 1791년 발효했다. 조항의 태반은 미국인이라면 공통적으로 누려야 할 개인의 권리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는 주들의 위상을 강화하는 장치였다. 보완 조항 제2조가 바로 지금까지 총기보유권의 근거로 인용되는 문제의 대목이다.

미국의 각 주에는 지금도 민병대가 존속하지만 건국 초기와는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현재 민병대는 평소에는 주 정부의 재량으로 운영되지만 유사시에는 연방 상비군에 편입될 예비 자원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또한 과거의 민병대는 건강한 모든 남자가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지원자로만 구성된다. 연방정부는 이들을 통틀어 ‘미국국가방위대’라 부른다.

오늘날 ‘친총주의자’들은 조상이 정규군이 아닌데도 영국군을 물리쳐 자유를 쟁취한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후 민중이 보유한 총 때문에 정부가 횡포를 부리지 못한 결과 오늘날의 강대국 미국이 있다고 믿는다. 이 자부심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나, 이들이 믿고 있는 민병대의 영웅담에는 상당한 신화적 거품이 섞여 있다고 지적받는다. 어찌됐든 이런 믿음이 미국 총기 문화의 바탕에 깔려 있다. 일본의 사무라이가 칼을 차며 자신의 존재감을 느꼈듯 미국인, 특히 친총 미국인은 총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의 일부로 여긴다. 조선 말기 단발령 직후 우리 조상이 방성대곡하고 의병까지 일으켜 저항했던 정서를 생각하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민병대 전통 이외에 서부개척기 오지에서 인디언이나 악당, 야생동물 등의 공격에 대한 자위책으로 민간인이 총에 의지한 것이 총기에 대한 일반인의 애착을 키웠다는 해석도 있다. 이에 대해 반총에서는 이견을 낸다. 인구 면에서 볼 때, 실질적인 서부 개척의 주역은 연방정부에 의해 계획적으로 이주한 농민인데 이들은 총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서부영화 등이 총잡이 영웅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얘기다.

친총은 역사적 배경을 따질 것 없이 현실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에 대한 호신의 목적으로 총을 지닐 수밖에 없고, 총이 없으면 더 많은 강력범죄가 횡행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에는 친총주의자의 단체가 여럿 있어 총기문화 창달을 위한 갖가지 활동을 벌이며 정치인을 상대로 총기 규제를 막도록 로비한다. 전국 어디에서든 총기보유권을 둘러싼 법정투쟁이 벌어지면 유리한 판결이 나도록 당사자를 지원하기도 한다. 대표적 단체가 140여 년이나 된 전국소총협회로 미국 내 로비단체 중 최강으로 꼽힌다. 미국 18대 대통령 율리시즈 그랜트가 퇴임 후 이 단체의 회장을 지낸 것을 비롯해 하나같이 ‘쟁쟁한’ 사람이 대표를 맡는다.

반총도 여러 단체가 있는데 그중 ‘브래디 캠페인(Brady Campaign)’의 활동이 돋보인다. 이 명칭의 연원이 된 제임스 브래디는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때 공보비서관으로 대통령을 수행하다가 총을 맞았던 사람이다. 간신히 생명은 건졌으나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할 장애를 안은 그는 반총 운동에 진력하고 있다.

친총 단체의 하나인 ‘미국총기소유자모임’은 전국 정치인을 ‘총기관’(觀)을 기준으로 A에서 F까지 점수를 매겨 발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범생에 대해 당선을 지원하고, 열등생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F등급을 받았다. 열등생 오바마 대통령은 애리조나 참사 추도사를 읽는 도중 희생 어린이에 관한 대목에서 50여 초나 말문을 닫은 채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림으로써 웅변보다 큰 목소리로 비분을 표현했다.



주간동아 2011.01.31 773호 (p90~92)

  • 밴쿠버=황용복 북미 전문 통신원 facebo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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