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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형님’의 입김과 조율 솜씨?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선출에 또다시 이상득 의원 그림자 드리워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형님’의 입김과 조율 솜씨?

“(한나라당) 주류 내부에서 이병석 의원을 설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누가 했다는 말은 들은 적 없다.”

5월 4일 단독 출마해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김무성(59) 의원이 다음 날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한 이야기다. 여기서 주류는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친이계(친이명박계)고, 이병석(58) 의원을 설득했다는 말은 ‘원내대표 불출마 선언’을 뜻한다.

이 의원은 4월 29일 원내대표 경선출마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22일 경선출마를 선언한 지 딱 일주일 만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의원을 설득한 것일까.

3선 의원인 이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대표적인 이상득계로 분류된다. 이상득(75) 의원(전 국회부의장)과 같은 경북 영일 출신으로, 지역구도 같은 포항이다. 이 전 부의장은 포항 남·울릉, 이 의원은 포항 북. 두 사람은 포항 동지상고 동문이기도 하다.

경선 전 절묘한 외유길



이 의원은 이명박(69) 대통령과도 학맥으로 가깝게 연결돼 있다. 이 의원은 포항 동지상고를 거쳐 고려대를 졸업한 이 대통령과 같은 길을 걸었다. 11년 차이가 나지만 같은 고향,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까지 동문이라면 인연이 깊은 셈이다. 현재 이 의원은 포항 동지상고 총동문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 의원이 18대 국회 전반기에 16개 상임위원회 가운데 의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토해양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것도 이런 관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회 후반기 이 의원의 목표는 원내대표. 이 의원은 경선출마 선언 당시 “이명박 실용주의 정권 창출에 앞장섰던 사람으로서 국민과 당에 무한 책임을 느껴 원내대표 출마를 결심했다. 내가 원내대표가 되면 세종시 문제를 조속히 매듭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을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에 정치권 안팎에선 이 의원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전 부의장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 전 부의장이 원내대표 경선을 전후해 외유를 나간 점에 주목한다.

이 전 부의장은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4월 24~30일 5박6일 일정으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에 다녀왔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자원외교 행보 중 하나”라는 게 이 전 부의장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일정이 절묘하다. 이 의원이 경선출마를 선언하고 이틀 후에 해외에 나갔다가 경선출마를 포기한 다음 날 귀국했다. 이 전 부의장과 특히 가까운 이 의원이 경선출마를 포기할 경우 이 전 부의장에게 날아올 ‘개입 의혹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절차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공교롭게도 이 전 부의장 측이나 이 의원, 김 신임 원내대표까지 이 전 부의장의 후보 조율 개입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모두 같은 이유를 대며 부인했다. “이 전 부의장은 그동안 외국에 나가 있지 않았느냐”는 것.

이 전 부의장 측은 “이 의원의 경선출마 포기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의원은 이 전 부의장이 외국에 나갔다가 귀국하기 전 출마포기를 결정했다. 이 전 부의장이 국내에 없을 때 일이다. 대통령특사 일정은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몇 개월 전에 이미 정해진 상태다. 이 전 부의장은 이번 당 원내대표 경선과정이나 후보 조율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혹시나 의심을 받을까 봐 보좌관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릴 정도였다.”

이 의원은 ‘경선출마 포기결정을 하기 전에 이 전 부의장과 상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전 부의장은 자원외교를 위해 외국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포기결정을 전후해) 만날 수 없었다”면서 “지금 우리 당에 경선보다 필요한 것이 ‘아름다운 양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신임 원내대표도 이 전 부의장이 외국에 나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원내대표 경선과정에서 이 전 부의장을 만나거나 접촉한 적이 전혀 없다”며 이 전 부의장 측의 지원 가능성을 일축했다.

1년 전 원내대표 경선에서 ‘보이지 않는 손’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이 전 부의장은 경선기간 중 일본으로 외유를 떠났다가 경선 사흘 전에 귀국했다. 당시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경선은 ‘안상수-김성조’ 후보와 ‘황우여-최경환’ 후보 2파전으로 격돌을 치렀다. 논란의 핵심은 이 전 부의장이 이재오 전 최고위원(현 국민권익위원장) 측을 견제하기 위해 ‘황-최’ 후보를 지원했다가 이 전 최고위원 측이 강력히 항의하자 귀국 후 마음을 바꿔 ‘안-김’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했다는 것. 이 전 부의장은 당시에도 일본 외유를 이유로 경선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적극 해명했지만, 당내에서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의원은 드물었다.

이 전 부의장은 이번에는 경선 나흘 전에 들어왔다. 1년 전과 달리 김무성 의원 단독 출마로 조율이 끝난 뒤다. 경선 자체가 없으니 더 이상 마찰이 빚어질 것도 없다. 하지만 그사이 수많은 후보가 줄줄이 출마를 포기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1년 준비하고 사흘 만에 포기 왜?

당초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는 김 신임 원내대표와 이 의원뿐 아니라 4선의 정의화(62)·황우여(63) 의원, 3선의 안경률(62)·고흥길(66)·이주영(59) 의원 등 7명이나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했던 황 의원과 정 의원은 1년 가까이 원내대표 출마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져 격돌이 예상됐다.

친이계 최대 모임인 ‘함께 내일로’ 대표를 맡고 있는 안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높게 점쳐졌다. 범이명박계로 분류되는 고 의원과 중립 성향의 이주영 의원도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며 출마를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4월 26일 김 신임 원내대표의 출마선언 이후 모든 출마 예상 후보가 뜻을 접었다. 이 의원이 출마 포기를 선언한 29일까지 단 사흘 만의 일이다. 특히 이 의원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출마선언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 의원이 27일 발표한 ‘원내대표 출마사퇴의 변’을 보면 얼마만큼 힘든 결정이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난해 계파 간 싸움으로 진행된 원내대표 경선에서 ‘의미 있는 패배’를 당한 뒤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준비해왔습니다. 정말 이번만은 원내대표직을 맡아 멋지게, 신명나게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불퇴전(不退轉)의 각오로 최선을 다해 여러분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뼈와 살을 깎는 심정으로 출사의지를 접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당내 화합과 이에 바탕을 둔 안정적 국정운영 때문입니다.”

한나라당 안팎에서 정 의원은 원내대표 대신 후반기 여당 몫 국회부의장을 맡을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진다. 당내 주류이자 이재오계의 대표주자인 안 의원은 출마 포기 이유에 대해 “여권 전체가 대승적 차원에서 친이와 친박을 아우를 수 있는 원내대표를 뽑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그 뜻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친이계인 고 의원은 정책위의장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자연스레 정리됐다. 친이계가 김 신임 원내대표 추대로 방향을 정하면서 중립 성향의 황 의원과 이주영 의원은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져 출마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 자리를 둘러싸고 과연 사흘 만에 정치인들 각자가 이처럼 원만하고 자연스럽게 조율하는 것이 가능할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전 부의장의 당내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는 한 정치전문가의 분석에 고개가 더 끄덕여진다.



주간동아 2010.05.10 736호 (p16~17)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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