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1

2010.04.13

시장이 변했다, ‘뉴 노멀’ 트렌드로

주머니 사정에 맞춘 ‘스마트 소비’가 대세 … 명품 전략+합리적 가격 융합 필요

  • 양은영 코트라(KOTRA) 통상조사팀 차장 yey@kotra.or.kr

    입력2010-04-08 1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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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이 변했다, ‘뉴 노멀’ 트렌드로

    LG전자는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중산층을 대상으로 고급 LCD TV를 보급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0년 글로벌 경제는 ‘뉴 노멀’이라는 용어로 시작한다. 언뜻 생각하면 서로 어울리지 못할 2개의 영어단어로 이뤄진 ‘뉴(New) 노멀(Normal)’은 ‘새롭게 변화한 양상이 일상화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원래 2000년대 초 미국 월가에서, 당시 폭풍우처럼 몰아치던 닷컴 열풍이 일시에 꺼져버린 현상을 두고 나온 말이었다.

    2008년과 2009년을 휩쓸고 간 글로벌 경제위기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2009년 하반기부터 감지되던 글로벌 시장의 변화는 이제 특정 지역의 트렌드가 아니라 전체 시장을 지배하는 질서, 즉 뉴 노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와 기업의 변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소비자들은 신중하고 실용적인 성향으로 바뀌었다. 사고 싶다고 무조건 돈을 주고 구매하는 모습은 이제 없다. 사려는 물건의 실용성과 가치, 무엇보다 자신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스마트 소비’가 대세다. 지난 호황기 때 높아진 안목과 불황기 때 절약의 필요성과의 타협점이랄까. 재미있는 것은 선진국이라 부르는 잘사는 나라에서 이 같은 성향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중저가 시장 공략하는 명품기업들

    기업들은 과거의 ‘묻지 마 투자’를 버렸다. 대신 튼실하고 영양 많은 분야에만 집중한다. 매출을 늘려서 기업의 덩치를 키우기보다 이익을 더 많이 내서 건강한 기업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재고 감축, 공정 효율화, 아웃소싱 등을 통한 원가절감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신흥 시장을 위한 중저가 제품 개발 및 출시에 전에 없던 공을 들이고 있다.



    2010년 세계 시장의 뉴 노멀 트렌드는 선진국 시장과 신흥 시장의 양상이 뒤바뀐 현상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비싼 제품이 잘 팔릴 것 같은 선진국 시장에서는 중저가 제품 시장이 활기를 띠고, 저가 제품만 팔릴 듯한 신흥 시장에서는 오히려 최고급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이른바 명품 기업들도 중저가 제품라인을 신규 출시하는 등 구매력이 약화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미국에서는 명품 브랜드 코치(Coach)가 중저가 브랜드 ‘Poppy’를 출시하며 ‘합리적 가격의 명품(Affordable Luxury)’ 전략을 펴고 있다. 유럽 시장도 다르지 않다. 한 미국 TV드라마에 등장해 일약 패셔니스타가 사랑하는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은 ‘지미 추’는 영국에서 중저가 유통점 H·M과 공동으로 중저가 라인을 개발했다. 기존 400파운드짜리 액세서리를 15파운드에, 500파운드의 부츠를 180파운드에 출시해 이를 사려는 소비자들이 새벽부터 매장 앞에서 장사진을 치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폴크스바겐이 기존 가격보다 2600유로(약 400만 원) 낮춘 미니밴 특판 모델을 내놓아 다른 경쟁사들을 자극하고 있다. 르노자동차 그룹 역시 루마니아 ‘DACIA’ 자동차를 인수, 중저가 생산라인으로 활용한다.

    반면 신흥 시장에서는 정반대 마케팅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LG생활과학’은 베트남 시장에서 모험을 걸었다. 개당 700~1000달러에 이르는 초고가 상품을 출시한 것. 일반적인 베트남 소비자들의 구매력에 비춰볼 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지만, 이 제품은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모두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최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초고가 마케팅이 통한 것.

    LG전자는 인도 시장에서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고급 LCD TV를 중산층 시장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현지 소비자 취향을 반영해 사운드 위주의 기능을 추가하고, 음악과 춤을 결합한 인도 시장 전용광고를 꾸준히 선보인 것이 주효했다. 현재 LG전자는 전체 LCD TV 시장의 26%를 차지한다.

    뿐만 아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는 일반 휴대전화보다 가격이나 이용료가 최소 2배나 높은 블랙베리 등의 스마트폰 판매가 늘고 있다. 조만간 스마트폰이 일반 휴대전화를 완전히 대체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러시아에서는 노키아가 내놓은 고급 디자인 브랜드 베르투 휴대전화가 4000유로(약 620만 원) 이상의 초고가임에도 신분을 과시하려는 신흥 부유층을 중심으로 꾸준히 팔리고 있다.

    이는 신흥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투자와 소비가 많아진 것은 물론, 소득수준 격차가 심해지면서 최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고급품 시장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신흥국의 최상류층 소비수준은 선진국의 상류층을 능가한다.

    베트남서 1000달러 고가품 완판기록

    시장이 변했다, ‘뉴 노멀’ 트렌드로

    합리적 가격의 명품 전략을 펴고 있는 미국 명품 브랜드 코치.

    하지만 신흥국에서도 시장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중산층 대상의 중저가 제품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품질이 좋지 않은데도 단지 ‘저가’라는 이유로 잘 팔리지는 않는다. 이런 신흥 시장의 움직임에 가장 가시화된 움직임을 보인 것은 일본 기업이다. 지난 경제위기를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보낸 일본 기업들은 기존의 ‘고부가 고급제품’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구매력이 떨어진 선진국 시장 대신 왕성한 구매욕을 보이는 신흥 시장에 집중하겠다는 것. 이른바 ‘볼륨 존(Volume Zone)’ 전략이다.

    파나소닉, 샤프, 닛산, 소니, 시세이도 등 일본의 대표기업들이 아시아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아시아 중산층 시장에 녹아들기 위해 품질은 유지하면서도 가격을 낮춘 제품을 대량 공급하겠다고 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그동안 일본 기업들이 금기시하던 해외생산, 해외조달을 크게 늘리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런 일본 기업들의 중저가 제품은 신흥 시장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도 점점 비중을 넓혀가고 있다. 혼다는 북미 시장에서 주력 차종 가격 인하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닛산, 소니 등은 유럽 시장에서 특가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이는 선진국 시장의 ‘스마트 소비’ 경향과 맞물려 좋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과거와는 전혀 다른 변화가 세계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2010년 전열을 정비한 각국의 기업들은 이미 시장주도권 확보를 놓고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과연 누가 이 새로운 질서를 자신의 표준으로 삼고 주도권을 장악할 것인가, 누가 이 혼돈기를 평정하고 1인자가 될 것인가. 이는 우리 생각보다 아주 빠른 시간에 결정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우리 기업들은 지난 경제위기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는 계기로 삼았다. 뉴 노멀 트렌드로 변화하는 시장에서도 고급품의 프리미엄 전략과 합리적 가격을 적절히 융합하는 유연성, 순발력으로 위기 속 진가를 발휘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휴대전화, LCD TV 등 하이테크 제품이 시장 점유율을 계속 높이고 있다. 그러나 미래 시장의 최강자가 되려면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과거의 영광만 추억하며 시장의 변화를 두려워하면 기회는 오지 않기 때문. 남보다 한발 빠른 대응으로 시장을 지배해 2011년 ‘뉴 노멀’ 트렌드는 ‘한국 기업의 세계시장 정복’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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