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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총살에 휴대전화 꺼져도 문자메시지는 通한다

北, 국경 일대서 통화자 색출 무시무시한 탄압 … “보복성전 시작” 한국 협박도

  • 주성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총살에 휴대전화 꺼져도 문자메시지는 通한다

총살에 휴대전화 꺼져도 문자메시지는 通한다
북한 최고위층이 화폐개혁 실패를 깨달은 시점은 1월 중순. 화폐개혁이 지난해 11월30일 단행됐으니 결국 한 달 반 만에 현실을 파악한 것이다. 실패에 따른 첫 조치는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포함한 화폐개혁 실무진의 경질이었다.

이번 화폐개혁 실패 후 민심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악화됐다. 과거에도 북한에는 실패한 정책이 상당히 많았지만 민심을 크게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많은 주민이 피땀 흘려 번 재산을 하루아침에 눈 뜨고 약탈당했을 뿐 아니라, 피해를 보지 않은 주민들도 살인적인 물가폭등으로 살기 힘들게 됐다. 그러므로 주민들이 느끼는 분노는 그 어느 정책적 실패 때와 비길 수 없는 것이었다.

민심 악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한 북한 당국은 당근과 채찍을 병행한 수습에 나섰다. 2월5일 김영일 내각총리가 평양에서 인민반장들을 대상으로 화폐개혁의 실패를 자인하고 사과했다는 소식이 기자의 정보망에 포착됐다. 그리고 2월8일과 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8비날론연합기업소를 이틀 연속 현지 지도했고, 북한 ‘노동신문’은 전면을 할애해 이를 보도했다. 민심 수습을 위한 분위기 연출에 김 위원장과 총리가 직접 전면에 나선 것은 북한의 현재 상황과 민심이 얼마나 악화됐는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해준다.

화폐개혁 失政 책임 밖으로 돌리기

북한 당국이 꺼내든 채찍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2월8일 북한의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는 연합성명을 내고 ‘불순세력을 쓸어버리기 위한 보복성전’을 경고했다. 두 공안기관이 연합성명을 낸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 성명 발표 후 한 달 동안 북중 국경 일대에선 무시무시한 탄압이 벌어졌다.



성명 발표 후 북한 당국은 국경 일대에서 주민들에게 연합성명 전문을 읽어주면서 휴대전화나 불법녹화물을 갖고 있는 경우 자진신고를 하라며 이를 위반하면 극형에 처한다고 경고했다. 이후 실제로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주민들이 총살됐다는 소식이 남쪽에도 전해져온다. 대북 라디오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은 지난달 9일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시장에서 40대 초반의 화교 남성 2명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내부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처형됐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대북 라디오방송인 ‘열린북한방송’도 이달 4일 북한 공안기관의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1월 말 함흥시 모 군수공장 노동자인 정모 씨가 자신이 사용하던 중국 휴대전화가 집에서 발견돼 총살형을 선고받고 바로 집행됐다”고 전했다. 정씨는 탈북한 뒤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와 통화해 시장 쌀값이나 사는 형편을 알려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중국 이동통신망에 가입된 휴대전화를 몰래 반입해 한국과 국제전화를 하는 방식으로 연계를 가진다. 하지만 중국 휴대전화 전파가 북한 내륙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북중 국경 일대에서만 한국과의 통화가 가능하다. 정씨도 국경에 나와 몰래 친구와 통화를 했다고 한다.

이를 안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는 국경 일대에 전파탐지기를 집중 배치해 몰래 통화하는 사람들을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이것도 부족해 최근에는 국경 일대에서 공안 관련 기관원들이 24시간 경계태세에 들어가 예고 없는 숙박검열과 가택수색을 하면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고 한다. 전파탐지기를 중국에서 추가로 대량 구매하고 있다는 전언도 들린다. 이뿐 아니라 국경경비대에 탈북자 사살 지시가 내려졌다고도 한다. 강을 넘는 탈북자를 사살하라는 지시는 대량 탈북이 발생하던 1990년대 후반은 물론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내려진 적이 없었다.

북한이 국경 일대에 이 같은 공포 분위기를 만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화폐개혁의 부작용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는 동시에 분노한 민심이 남한의 반북세력과 연계되는 것을 우려해서이고, 또 하나는 탈북을 막기 위해서다. 특히 화폐개혁 이후 아사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자 국경 일대를 통제하지 못하면 또다시 대량 탈북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큰 것으로 보인다.

탈북하는 사람 대다수는 국경지역으로 와서 탈북통로를 모색하는 동안 인근 민가에서 며칠 묵을 수밖에 없다. 또 남한이나 중국과 연계된 휴대전화는 탈북 자금을 보내주거나 탈북 지시를 내리는 데 이용된다. 북한 당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대량 탈북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휴대전화 사용을 차단하고 국경에 외부인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북한 공안 당국이 만들어내는 무시무시한 공포 분위기가 현재는 효과가 있어 보인다. 탈북 및 대북단체들과 북한을 연결해주는 휴대전화가 하나둘 꺼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뿐 아니라 북중 국경에서 활동하는 탈북 브로커도 거의 잠적했다. 한 탈북자는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연결되는 통로가 3곳인데 지금은 모두 ‘먹통’이 됐다고 말했다. 북중 국경 일대에서 휴대전화를 소지했던 사람 상당수가 ‘지금 같은 때는 최대한 조심해서 숨어 있는 게 낫다’고 판단해 휴대전화를 꺼버린 듯하다.

안전하고 저렴한 국제 문자메시지

하지만 북한 당국도 마냥 안심만 할 수는 없다. 탄압에 동원된 보안원들이 24시간 집중경계 태세를 항상 유지할 수도 없다. 숨겨진 휴대전화들이 호시탐탐 재가동의 기회를 노리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결정적으로 북한이 운용하는 수천 대의 전파탐지기를 쓸모없게 만들 방법이 개발됐고, 이것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바로 국제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연락하는 방식이다. 문자메시지는 최신식 전파탐지기에 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단속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동안 남한과 북한은 국제전화로 연락을 해왔는데 최근 몇 년 한국과 중국 사이에 국제 문자메시지가 급속히 상용화하고 있다. 가격도 국제전화보다 저렴할 뿐 아니라 안전도 담보된다. 남북 사이에 음성이 오가던 시대에서 바야흐로 장문 메시지가 오가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이 글을 통해 남한에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지만 북한 보안 당국도 이미 알고 있거나 곧 알게 될 사실이니 이제는 밝혀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북한 공안 당국이 연합성명을 발표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는 이들이 휘두르는 채찍이 국경 일대를 포함한 북한 내부에만 국한돼 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연합성명이 남한에 사는 탈북자들까지 보복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성명은 “(반공화국 체제 전복 시도에는) 사람으로 살기를 그만두고 오물장으로 밀려간 인간쓰레기들까지 동원되고 있다”면서 “민족을 등지고 나라에 화를 몰아오는 역적무리들은 이 나라,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살아 숨 쉴 곳이 없다”고 경고했다. 또한 “우리에게는 아직도 다 말하지 않고 다 공개하지 않은 최첨단의 세계적인 타격 역량과 안전보위 수단이 있다”면서 “어중이떠중이들의 책동을 짓뭉개버리기 위한 전면적인 강력조치를 취할 것이며… (중략) 거족적인 정의의 보복성전은 이미 시작됐다”는 등 각종 협박을 나열했다. 이것이 단순 협박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북한의 공작원들이 지금쯤 남한에서 본보기를 보여줄 일벌백계(一罰百戒)의 희생양을 겨누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2010.03.23 728호 (p22~23)

주성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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