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6

2009.12.22

이탈리아의 풍요로움 ‘2006 베라차노’

  • 조정용 ㈜비노킴즈 고문·고려대 강사

    입력2009-12-18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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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의 풍요로움 ‘2006 베라차노’
    1170년부터 와인을 만들어왔다는 카스텔로 디 베라차노는 16세기에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뉴욕과 허드슨 강을 탐험한 이탈리아의 탐험가 조반니 다 베라차노에서 유래한다. 그가 호령하던 이 성(城)에서는 오늘날 이탈리아를 잘 표현하는 레드 와인이 나온다. 토스카나 그레베 마을 산등성이에 자리한 이 양조장에서는 토착품종 산지오베제를 압착해 전통이 깃든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을 담근다.

    뉴욕 시는 자신을 발견한 탐험가를 기리기 위해 다리에 그의 이름을 새겼는데, 브루클린과 스테이턴 섬을 연결하는 베라차노 다리가 그것이다. 금문교를 제치고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로 알려졌던 이 다리에서는 해마다 수만명이 참가하는 뉴욕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다리를 지을 때 베라차노 성에서 가져온 벽돌을 몇 개 보태 완성했으며, 그 답례로 시에선 뉴욕의 벽돌 몇 개를 보내 카스텔로 성곽에 넣도록 했다. 이에 성주 루이지 카펠리는 친선의 뜻을 맞교환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베라차노가 뉴욕에서 유명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며, 베라차노 와인은 그 유명세를 온몸으로 확인하는 매개체 노릇을 한다.

    베라차노는 자급자족 생활의 공동체를 떠올리게 한다. 산등성이의 포도밭, 올리브밭, 각종 채소와 과실수, 발사믹 제조 공장, 올리브기름 짜는 곳, 그리고 멧돼지 사육장도 있다. 이 모든 게 가능한 이유는 높은 산등성이에 자리해도 샘물이 솟기 때문이다. 물은 곧 풍요로움을 상징하니 중세부터 이 성은 풍성함이 넘치는 곳이었음이 분명하다. 베라차노의 키안티 클라시코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이 성을 찾아가서 소금으로만 간을 한 돼지갈비 구이에 곁들이는 것이다. 양조장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지하에서 건져 올린 와인과 함께 요리를 맛보노라면 여기가 이탈리아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베라차노는 라틴어로 멧돼지의 땅이란 뜻이다.

    필자의 저서 ‘올댓와인 2’에서도 추천한 바 있는 베라차노는 라벨에 조반니 다 베라차노의 초상화가 박혀 있어 쉽게 구분된다. 병 주둥이에 붙은 검은 수탉 그림은 작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지닌다.



    분홍빛 종이는 이탈리아 최고 등급 DOCG를 표시한다. 2006 빈티지는 알코올 도수 13.5%이며, 온화하고 산뜻한 질감이 식욕을 자극한다. 라벨 뒤편에 보니 필터링을 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그러니 이 와인을 오랫동안 숙성한 애호가라면 찌꺼기를 병 바닥에 모이게 한 뒤 위에 뜬 맑은 와인을 즐기는 것이 좋겠다. 수입 아영FBC, 가격 6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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