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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강유정의 ‘영화에 수작 걸기’

악덕 기업가 양심불량 딱 걸렸어!

정용기 감독 ‘홍길동의 후예’

  • 강유정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악덕 기업가 양심불량 딱 걸렸어!

악덕 기업가 양심불량 딱 걸렸어!

과잉행동과 돌출정서가 난무하는 영화 속에서 이범수의 연기는 균형추 구실을 한다.

한동안 한국 문화에는 ‘팩션’이 유행이었다. 물론 지금도 ‘선덕여왕’을 비롯해 한국의 스토리텔링에서 팩션이 우세종은 확실하지만 말이다. 대개 팩션은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보탠다. ‘신윤복이 여자였더라면’이라는 가상에서 출발한 ‘미인도’나 정조를 둘러싼 수많은 야사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근 역사물을 ‘소환’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훨씬 가볍게 역사적 소재를 활용해 현재적 상상을 증폭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예를 들면 정용기 감독의 ‘홍길동의 후예’가 그렇다.

‘홍길동의 후예’는 ‘소설 속 주인공인 홍길동이 실제 인물이었다면’이라는 가상에서 출발한다. 홍길동이 실제 인물이라면 그 후손도 있지 않을까, 라고 순진한 상상을 해본 셈이다. 그런데 상상은 순진할수록 매력적이고 힘이 세다. ‘홍길동의 후예’는 먼저 그런 점에서 관객의 호기심을 사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홍길동의 18대손 홍무혁(이범수 분)은 고등학교 음악교사다. 하지만 평범하고 음전한 이 음악교사는 학교를 벗어나면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시대의 악인들을 처단하는 의적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의적 행위는 비단 홍무혁만의 일이 아니다. 홍길동의 직계 자손들, 홍무혁의 아버지나 남동생도 의적에 가담한다. 말하자면 의적은 홍길동 가문의 가풍이자 업적이며 그들만의 비밀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악인’의 캐릭터다. 사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웅영화에서도 영웅은 악인의 구체적 성격으로 인해 더 부각된다. ‘배트맨’에서 배트맨보다 조커나 펭귄맨 같은 악인이 해당 편수를 환기하는 단서가 되지 않던가. ‘홍길동의 후예’가 선택한 악인은 교묘한 술수로 기업들을 사냥하고 정치권과 결탁해 불법적으로 자산을 늘리는 기업가다. 홍길동은 집안의 오랜 범행대상이자 여전히 파렴치한인 이정민(김수로 분)을 습격하고 현금을 빼앗아 ARS 기부금에 쏟아붓는다.

고전 ‘홍길동전’에서 악인은 백성의 피땀 어린 노동력과 가산을 착취하는 ‘탐관오리’로 명시돼 있다. 그렇다면 현대화 작업의 관건은 바로 현대적 탐관오리의 선택일 테다. 탐관오리는 단순히 돈이 많은 부자라기보다 공직에 있으면서 권력을 악용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홍길동의 후예’가 선택한 악인인 기업가 캐릭터는 조금 어긋나는 바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한 것이다. 아직 탐관오리라 부를 수 있을, 부패한 공직자나 정치가가 많은데 굳이 기업가, 상인 캐릭터로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질문 말이다. ‘가문 시리즈’를 만든 코미디 영화의 대가답게 정용기 감독은 홍길동 가문과 악인의 대결을 진지한 정치적 맥락이 아닌 코믹한 몸 개그로 이끌어간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허균이 ‘홍길동전’을 통해 구현하려 했던 정치적 혁명의 맥락을 읽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아니, 아예 읽을 필요가 없다.

‘홍길동의 후예’는 허균의 역작 ‘홍길동전’의 현대적 패러디가 아니라 한국의 전통에 뿌리를 둔, 순수 토착적 영웅 캐릭터의 복원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만일 적의 캐릭터를 계속 바꾼다면 2편, 3편 제작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홍길동의 후예’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이범수의 연기력이다. 워낙 정평이 나 있는 튼실한 배우지만, 과잉행동과 돌출정서가 난무하는 영화 속에서 이범수는 균형추 구실을 해낸다. 김수로의 ‘추리닝 악인’ 캐릭터도 인상적이긴 하지만 단순한 캐릭터를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연출한 흠을 지우기는 어렵다. 게다가 그런 식의 장난기 어린 악역은 이미 김수로의 다른 출연작에서 여러 번 봤다.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가 개봉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홍길동의 후예’는 이제 역사적 실존인물이 아닌 픽션 속 허구적 인물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한국의 전통 서사 속 전우치나 홍길동은 신출귀몰, 말 그대로 영웅 캐릭터가 아니었던가. 비록 조금은 어설픈 형태로 현대화했지만 그 시도만큼은 주목할 만하다.



주간동아 2009.12.08 714호 (p84~84)

강유정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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