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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협-北 노동당 간부 중국서 정상회담 논의한 듯

남북 비밀접촉 내막 … ‘정중하게 무시’ 정책에 북한은 답답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민화협-北 노동당 간부 중국서 정상회담 논의한 듯

민화협-北 노동당 간부 중국서 정상회담 논의한 듯
한동안 주목을 끌었던 싱가포르 남북정상회담 논의설이 서서히 묻혀가고 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국회 발언대로라면 남북 대표가 만난 것은 분명한데,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얘기를 하고 헤어졌는지가 불분명한 채로 넘어가고 있다. 이 만남의 정체는 무엇일까.

최근 북한이 펼치는 외교전술은 ‘갈라치기’다. 6자회담에서의 핵심 의제는 북한 핵. 6자회담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마저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기에 이 회담은 늘 북한이 고립되는 5대 1 양상으로 흘렀다.

이러한 구도에서 북한은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6자회담을 회피하고 1대 1로 만나는 갈라치기 전술을 택한 것이다. 은밀한 부탁은 1대 1로 만나야 할 수 있다. 북한 정보를 종합하는 소식통들에 따르면, 올해의 북한 식량 작황은 ‘대단히 나쁘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없으면 내년 봄엔 1993년과 97년처럼 굶어죽는 사람이 많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제사회를 대표하는 5개국은 북한에 하나같이 먼저 핵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핵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을 받아내야 하는 북한으로선 결국 ‘갈라치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을 상대로 한 갈라치기 전술은 ‘외견상으로만’ 성공을 거뒀다. 10월4일 북한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갖게 하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경제지원에 관한 언질을 받아냈다. 이에 대한 대가로 김 위원장은 “북미회담 결과를 보고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갈라치기’ 구사했지만 헛발질

민화협-北 노동당 간부 중국서 정상회담 논의한 듯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안방’에서 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최근 차후 정상회담 논의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정부 내에선 이번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관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맨위 사진은 남북 정상의 세 번째 만남을 가상한 합성사진.

그런데 북한이 그 후에 가진 북미회담에서 6자회담에 복귀한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자, 지난 10월 말 중국은 북한과 맺기로 한 수십억 달러의 경제지원협정 체결을 보류해버렸다.

그리고 올겨울부터 다급해질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식량 사정을 일부 해소해주기 위해 2100만 달러 상당의 식량만 무상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한 북한의 갈라치기는 완전 실패했다.

지난 8월 북한은 미국 여기자 석방을 미끼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였으나, 이렇다 할 지원 약속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10월24일 외무성 리근 미국국장을 미국에 보내 협상을 시도했지만 무상원조 지원조차 받아내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북한은 보스워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초청했고, 미 국무부는 이를 공식 거절했다. 일본은 가뜩이나 납치자 문제로 반북(反北) 의식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북한은 1대 1 협상을 제의하지도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으로부터 빌린 차관을 한국이 탕감해준다는 약속이 있어야 대북지원을 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라, 한국이 대(對)러시아 차관 탕감에 동의하지 않으면 대북지원을 하지 못한다.

이러니 북한은 일본과 러시아를 상대로 아예 갈라치기 전술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을 상대로 한 갈라치기 전술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헛발질’이 되고 말았다. 이 헛발질이 바로 싱가포르 남북정상회담 접촉설을 낳은 근원이다. 북한에서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나온 이 회담에 한국 측 대표로 나간 사람이 누구냐에 관심이 집중됐다.

‘중앙일보’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김대식 사무처장이 대표로 나갔다고 보도했으나, 이 회담이 있던 날 김 처장은 남미에 출장 중이었다. ‘주간동아’의 추적 결과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한 비밀접촉에 나간 한국 대표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이하 민화협) 소속 인사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만난 장소는 싱가포르가 아니라 중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만 해도 민화협에선 진보세력의 힘이 강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보수세력이 강해졌다. 현재 민화협의 대표상임의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 출신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통합특별보좌관을 맡고 있는 김덕룡 전 의원이다. 김 의장은 남북 접촉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맡은 바 있다.

“김정일이 와라” 요구에 회담 교착

민화협-北 노동당 간부 중국서 정상회담 논의한 듯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때 조문특사로 파견된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맨 왼쪽)을 만나는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은 김대식 민주평통 사무처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들을 사설 조문단으로 보고 상대해주지 않다가, 북한 조문단의 다급한 사정을 안 김덕룡 특보의 건의로 이들을 만나줬다.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해 국장(國葬)을 준비하던 당시, 북한은 갑작스럽게 조문단을 파견하겠다고 통보해왔다. 그런데 국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주도하는 것임에도 북한은 우리 정부가 아닌 김대중 평화센터로 조문단 파견을 통보했다.

한국 조야를 갈라놓겠다는 갈라치기 전술을 구사한 것인데, 이 급작스러운 공세에 대처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민주평통의 김 사무처장이 제시했다. 이 대통령을 만난 김 처장은 “북한이 민간기관인 김대중 센터에 조문을 통보했는데 우리 정부가 이들을 맞이한다면, 정부는 보수세력에게 질타를 받게 된다.

친북 좌파세력들도 북한 조문객을 맞는 것이 부실하다며 정부를 비난할 수 있으니, 이들을 맞이하는 일은 전부 김대중 센터에 맡겨버리자”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정부는 북한 조문단을 ‘사설(私設) 조문단’으로 규정, 상대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남측이 원하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주겠다”고 허풍을 떨던 북한 조문단이 오히려 당황해, 한국 측 인사에게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사정을 전달해 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한 번 만나 얘기나 들어보자”라는 결심을 이끌어낸 사람이 바로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인 김덕룡 대통령 특보였다.

과거 임동원 원장이 이끌던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을 주도하고 임 원장이 회담장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으나, 원세훈 원장이 이끄는 지금의 국정원은 공개적으로 북한을 상대해주지 않는다. ‘원세훈호(號) 국정원’을 관류하는 기조는 ‘1차 정상회담의 산물인 6·15선언과 2차 정상회담에서 나온 10·4공동성명을 파기해야 한다’는 것이기에, 북한에게 갈라치기 전술을 구사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배경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자는 논의가 중국을 무대로 한국의 민화협과 북한의 노동당 통일전선부 사이에 이뤄지게 됐다는 것이다. 민화협 관계자는 한인회 문제 등으로 중국 출장이 잦기에 눈에 띄지 않게 중국으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의장의 측근 인사는 “민화협은 최근에도 평양을 방문하는 등 북한 측을 꾸준히 만나고 있다. 그렇지만 김 대표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아무튼 이 접촉을 통해 북한도 정상회담을 원한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정부 요로에서는 일제히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처럼 세 번째 회담도 평양에서 연다면, 한국 대통령은 취임만 하면 책봉을 받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대등함을 강조하기 위해 한미 정상회담도 한 번씩 상대국을 방문해가면서 열고 있다. 더욱이 김정일 위원장은 서울 답방을 약속한 바 있으므로 세 번째 정상회담은 서울에서 열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졌다고 한다.

민화협이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하자 북측은 더 이상 회담을 진척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을 상대로 한 갈라치기 전술도 무력화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는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을 구사했기에 북한은 매번 남북관계를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정중하게 무시하는 정책(benign neglect policy)’을 펼치고 있어 답답한 쪽은 오히려 북한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주간동아 2009.11.17 711호 (p54~55)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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