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3

2009.07.07

3명 중 1명 “난 집토끼”

한국 남성 조루 실태 보고서 … 겉으론 큰소리, 알고 보면 ‘국민병’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도움말 : 현재석 경상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대한남성과학회 학술이사

    입력2009-07-03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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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명 중 1명 “난 집토끼”
    6월 어느 금요일 저녁 서울 마포의 서서갈비집. 죽마고우인 30대 후반 직장인 4명이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있다. ‘하고 또 했던’ 옛이야기를 풀어놓느라 정신이 없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되는 스토리지만, 그래도 듣다 보면 웃음보가 터진다. 흥겨운 분위기에 소주가 한 잔씩 돌다 맥주와 섞은 5부 폭탄주까지 가세하자 대화는 ‘야한’ 주제로 옮겨간다. 행여 누가 들을까봐 고개를 앞으로 빼고 속닥속닥 밀담을 나누는 것이 역적모의라도 하는 것 같다.

    “야, 그저께 이 형님이 너희 형수님한테 1시간 동안 열렬하게 봉사했다는 거 아냐. 아침에 날 바라보는 표정이 달라지더라고.”

    “와이프가 보너스 줬겠다, 봉사료로. 그럼 오늘은 네가 쏴라.”

    “나도 저 녀석처럼 ‘약발’이 사는 것 같아. 내가 요즘 흑마늘에다 오자(五子)라고 복분자 오미자 구기자, 그 뭐냐. 사상자하고 토사자를 섞은 약을 먹는데 이거 먹은 뒤로는 마누라랑 기본이 50분이야, 50분.”



    “정말?”

    “솔직하게 얘기해. 49분 동안 밖에서 놀다가, 1분 동안 문전에서 허탕 친 거 아냐?”

    “인마, 넌 속고만 살았냐?”

    “이거 봐, 난 끝나지도 않았는데 와이프가 천국에 갔다 와서 잠이 든다. 누구 앞에서 큰소리야?
    “….”

    성인 남성 500만명 이상 말 못할 고민

    30, 40대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 나눠봤을 대화다. 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한국 남성들에게 조루란 없다. 겉으로는 다들 아내를 만족시킨다고, 사정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정말 그럴까. 답은 ‘글쎄요’다. 남자들이 으쓱하며 떠벌리는 군대 얘기만큼이나 잠자리 뒷담화도 과장투성이다.

    이처럼 과대 포장된 자신감과는 딴판으로, 실제로는 꽤 많은 남성이 조루증으로 고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남성과학회 조루증 연구회는 지난 4월 19세 이상 남성 2037명을 대상으로 조루증 유병률 및 의식에 대한 인터넷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루증의 자가 진단 △삽입 후 평균 사정시간 △조루 시작 시기 △자위 시와 비교 △조루로 인한 스트레스 △관련 성기능 조사 등이 주요 조사항목. 이를 바탕으로 ‘본인이 판단하기에 자신은 조루증인가’를 남성들에게 질의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27.5%가 ‘그렇다’고 답했다.

    성인 남성 3명 중 1명 가까이가 조루라는 얘기다. 국내 성인 남성 인구를 약 1700만명이라고 보면 조루 환자는 500만명 이상으로 추산할 수 있다.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이 36.8%, 40대가 30.7%, 30대 24.6%, 20대 23.4% 등 전 연령대에서 조루 증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또 다른 성기능 장애인 발기부전이 미국 통계를 기준으로 20, 30대에서 7~10%, 50대에서 18% 전후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유병률이다.

    3명 중 1명 “난 집토끼”
    거듭된 실망에 성욕도 급전직하

    “관계를 하고 몇 분이 지나긴 했는데, 남편이 도대체 뭘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강모 씨·37·주부)

    성관계할 때 질내 삽입 후 사정까지의 시간이 짧다는 것은 여성에게도 큰 스트레스다. 삽입하자마자 일을 끝내는 남성은 체위를 바꾸는 등 파트너를 위한 감정적 배려행위를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엔 이런 불만을 호소하는 여성이 늘고 있는데, 거의 무조건 반사적으로 ‘나 홀로’ 섹스에 열중하는 남성 조루 환자가 많아진 것도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

    대한남성과학회 조사 결과, 주관적 시간(스스로 느끼는 삽입에서 사정까지의 시간, 대한남성과학회 권고 기준)을 기준으로 해서 5분 안에 사정하는 남성이 전체 응답자의 31.5%에 달했다. 자신에게 조루증이 있다고 말한 수치(27.5%)보다도 높다. 섹스를 하면서 상대방의 기분을 전혀 배려할 수 없다는 ‘1~2분 내 사정’ 남성도 7.9%나 됐다.

    주관적 사정시간은 파트너뿐 아니라 자신의 성욕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정시간이 5분 미만인 남성은 자신의 성욕 만족도에도 낮은 점수를 줬다. 사정시간이 5분 이상인 남성은 10점 만점에 7.1~7.9점을 준 반면, 5분 이하는 6점 이하로 떨어졌다. 1분 미만의 남성은 3.34점에 불과했다. 섹스를 하면서도 스스로 재미와 흥분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다.

    사정조절 능력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삽입에서 사정까지의 시간이 10분 이상인 남성은 자신의 조절능력에 대해 10점 만점에 7.66점을 준 데 비해, 1분 미만인 남성은 3.1점에 그쳤다. 사정시간과 성관계 횟수 역시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월 1회 미만이 12.10%, 월 1~4회가 44.70%로 나타났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5분 안에 사정하는 남성들이었다. 자신감 부족은 성관계 회피를 부르고, 이를 두고 아내가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일도 다반사.

    3명 중 1명 “난 집토끼”
    “20대 중반인데 여자친구한테 창피해 죽겠습니다. 매번 1분을 못 버티니, ‘토끼’도 아니고. 저 남자 맞나요? 미치겠어요.” “서른도 안 된 분이 큰일 났군요. 빨리 병원에 가보세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예상외로 20대 남성의 조루 고민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인터넷 이용자 중에 20대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들이 털어놓은 사연을 보면 조루증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극심한지 실감할 수 있다. 조루는 개인의 자존감, 상실감으로 이어지는 문제로 심각할 경우 일상생활에까지 이어져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한남성과학회의 조사 결과 역시 조루로 유발된 후유증과 스트레스는 특히 20대에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3개월 동안 조루증으로 인해 자신이 느끼는 스트레스’에 대해 설문한 결과, 20대에서 가장 높은 점수 분포도를 보였다.

    10점 만점에 7.28점으로 40대 이상의 6.96, 50대 이상의 6.88점보다 높았다. 더욱이 20대 중에는 다른 연령대보다 “조루가 성생활과 전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치료를 희망하는 수준도 높다. 조루 증세가 있는 20대 135명 중 49.6%가 “치료를 받겠다”고 답해 30~50대를 압도했다.

    조루 증세를 치료할 의향이 있다는 남성은 전체의 42.6%로 치료 의향이 전혀 없다는 응답자보다 2배 정도 높게 나타났다. 문제는 이 42.6%라는 수치가 의학적으로 원인을 진단하고 본격적인 치료를 받으려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는 점. 인터넷이나 책을 통한 행동요법이나 바르는 약 등으로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남성들의 이러한 치료성향은 한 다국적 제약사가 조사한 세계 각국 40~80세 남녀의 ‘성에 대한 태도와 행동에 관한 글로벌 보고서’(2002년)에도 잘 나와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 중 성기능 문제로 치료받는 사람들의 비율은 2%로 꼴찌를 기록했다. 세계 평균은 18.8%. 성기능 장애를 사실상 방치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조루에 대한 믿을 만한 치료법이 부족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조루 스트레스에 ‘사회비용’도 급증

    확실한 조루 치료법이 없다 보니 환자들은 그 해결책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른다. 2008년 미국에서 발표된 한 논문(Current Practice and resource utilization in men diagnosed with premature ejaculation / G.D.Nuyts, K. Hill, M.P. Jonse)은 조루인 남성과 정상인 남성의 의료행위 소요 비용을 1년 단위 평균으로 정리했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다.

    3명 중 1명 “난 집토끼”
    조루 남성이 조루라는 진단을 받기 전 1년 동안 의료기관을 방문한 횟수가 정상인의 2배에 이른다는 것. 또 조루 남성이 조루로 진단받기 전에 진단과 치료를 위해 사용한 비용은 1년 평균 1320달러였지만 정상인은 447달러에 불과했다. 3배에 가까운 비용 차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비슷한 조사가 실시된 바 없지만, 조루 환자가 치르는 사회비용이 미국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조루 해결 민간요법이 한국만큼 횡행하는 나라도 드물기 때문이다.

    조루임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보수적 분위기도 사회비용을 더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일단 병원을 찾아 조루 환자임이 밝혀지면 의료비용은 오히려 줄어들게 돼 있다. 검증 안 된 치료법에 헛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창피하다는 이유로 비전문적인 방법에 의지하기보다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나 경제적으로 이익이다.

    하지만 이런 눈에 보이는 비용보다 훨씬 큰 손실이 있다. 조루로 인한 정신적 피해와 그 결과로 나타나는 사회적 피해가 그것이다. 파트너와의 불화, 소통 단절은 그 자체만도 엄청난 피해지만, 그로 인한 가정의 해체, 범죄 증가와 같은 사회적 피해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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