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3

2009.07.07

남자들만 아는 그날 밤 아픈 기억

“앗! 미안…” 하는 순간 사랑은 떠나가고 자존심은 무너지고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9-07-03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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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만 아는 그날 밤 아픈 기억
    40대 중반의 K부장은 회사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다. 큰일에는 절대 나서지 않고 책임은 철저히 아랫사람에게 미루는 ‘신중파’. 게다가 남 다 노는 토·일요일에 출근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실파’이기도 하다.

    출근은 일등, 퇴근은 늘 꼴등. 하지만 그가 회사에 남아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가 1년 전쯤 이혼을 ‘당해’ 집에서 할 일이 없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어느 일요일, 회사에 나온 K부장은 의자에 기대앉아 졸다 깜빡 꿈을 꿨다. 출연자는 하느님과 K부장, 그리고 전 부인. 하느님이 그에게 물었다.

    “5분 후에 이 세상에 종말이 온다면 너는 무엇을 하고 싶으냐?”

    K부장이 애타는 목소리로 답했다.

    “멋진 섹스를 하고 싶습니다. 원도 한도 남지 않게요.”



    그러자 옆에 있던 전 부인이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럼 나머지 4분은 뭐 할 건데?”

    “….”

    K부장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잠에서 깬 그는 친구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떠올렸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도 모르는 게 딱 두 가지 있대. 하나는 부부가 덮고 자는 이불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시내 교통상황이래.”

    그랬다. 꿈속에서의 하느님은 K부장이 지난 20여 년간 앓아온 고질병을 전혀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을 다 안다는 하느님도 그들 부부의 이불 속 사정은 알 수 없었던 것. 그의 이혼 사유는 대외적으론 ‘성격 차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성적(性的) 차이’ 때문이다. 그는 조루병 환자다. 조루에 얽힌 아픈 기억은 대학을 다니던 25년 전부터 시작된다.

    슬픔과 절망의 젊은 날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기다리던 청년 K는 어느 날 야밤에 친구와 학교 근처 다방을 찾았다. 밤 10시가 넘으면 포르노 비디오를 상영한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그는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바글바글한 ‘관객’ 중 여학생이 절반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그가 속으로 짝사랑하던 국문과 M도 있었다. M의 눈에 뜨이지 않을 만한 자리에 앉아, 그녀의 벗은 모습을 떠올리며 포르노를 보던 그는 갑자기 아랫도리가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 미끌미끌한 액체가 속옷을 적셨다. 다급한 목소리로 친구에게 구원을 청했다.

    “이게 뭐냐? 나 자위한 적도 없는데….”

    “너, 저번에 거기 갔을 때 ‘장화’ 안 신었어? 아무 짓도 한 게 없는데 나온 걸 보면 이거 농(膿) 같은데.”

    “뭐야, 그럼 내가 성병에라도 걸렸단 말이야?”

    한 달 전 학교에서 멀지 않은 집창촌에 간 기억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선배들이 군대 가는 후배를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술을 먹여 억지로 들여보냈다. 쭈뼛쭈뼛, 뭘 어떻게 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는 그에게 큰누나뻘 되는 아가씨가 귀찮다는 듯 재촉했다.

    “어이, 학생 빨리 하고 가. 오래 하면 죽는다, 알지?”

    잔뜩 겁을 먹은 K는 허둥지둥 일을 끝냈다.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분명 콘돔도 사용했다.

    ‘콘돔에 구멍이라도 났을까? 이런 상태로 군대에 가면 큰일인데….’

    K는 다음 날 학교 부속병원을 찾았다. 학생증을 내밀고 특수병동인 비뇨기과를 찾으니 레지던트 선배들이 그의 하소연을 듣고는 뒤통수부터 후려쳤다.

    “어린 게 까져서 벌써부터….”

    그러나 소변도 받고, 피도 빼고, 항문에 손을 넣어 전립샘액도 빼고 별별 검사를 다 했지만 균이나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에게서 “너만 할 때는 다 그래. 자꾸 하면 괜찮아져”라는 말만 들었다. 조루 증상은 있는데 병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

    입대하기 전 K는 M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둘 사이는 빠른 속도로 진전됐다. 드디어 입대 전날. M은 K에게 기다림의 징표로 ‘의식’을 치르자고 했다.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키스를 하던 K, 분위기가 무르익자 M의 위로 올라갔으나 갑자기 앞을 손으로 가린 채 화장실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앗! 미안… 휴가 나오면 다시 하자.”

    세월이 흘러 휴가를 나왔을 때 M은 이미 다른 남자의 여자가 돼 있었다. K는 제대하고 복학한 뒤로도 한동안 여자를 멀리했다. 아니, 여자가 접근해도 무서워서 스스로 피했다. 공부에만 매진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러고는 서른이 훨씬 넘어 아내를 만났다. 친구들에게 자문해 조루에 좋다는 건 다 해봤다. 조약돌로 성기를 문지르기도 했고, 심지어 사포로 문지르다 다쳐 고생한 적도 있다. 해구신, 자라, 거북, 복분자 등 정력에 좋다는 건 다 먹었다. 그러나 모두 허사.

    그래도 희망은 있다!

    드디어 결혼 전날, 그는 아는 약사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처방을 받았다. 약사가 손에 쥐어준 것은 일명 ‘칙칙이’라고 하는 국소마취제. 분무제 겉에는 두 발을 쳐든 말이 그려져 있었다.

    “이거, 말표 스프레이인데 관계 전에 거기에 뿌리면 되네. 잘 씻고 해야 해.”

    첫날밤. K는 약사의 말대로 ‘말표 스프레이’를 뿌리고 애무도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 이럴 수가…’. 앞이 조금 뻐근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30초는 갔다. 그에겐 그마저도 고마울 따름이지만 아내의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몇 달 뒤 아내가 물었다.

    “자기, 혹시 무슨 약 써?”
    “왜?”
    “아니, 하고 나면 늘 아래가 마비되는 듯 불편해서 산부인과에 가서 물어봤더니 의사가 ‘남편에게 약을 쓰려면 제대로 쓰라고 하세요’ 하더라고.”

    K는 모든 것을 이실직고했다. 그리고 그때야 알았다. 약사가 “잘 씻으라”고 한 것은 일을 치르기 전 그곳에 묻은 마비 성분을 씻어내라는 의미였다는 것을. 그는 그 말을 거꾸로 이해, 몸을 씻고 나서 약을 뿌렸다. 결국 마취제가 아내의 몸까지 마비시켰던 것이다.

    아내의 불만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아내는 ‘마의 30초 벽’을 돌파하려고 조루에 좋다는 건 다 사들고 와 K를 괴롭혔다. 값비싼 한약도 있었다. 언젠가는 여성지에서 읽었다며 자위를 하면서 성기를 꽉 잡고 참는 연습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허사. 이후 10여 년 동안 K는 “회사 일이 바쁘다”며 아내와의 잠자리를 멀리했다. 매일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 아내는 “30초 동안 할 거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며 등을 돌렸다. 결국 그들은 1년에 기껏해야 한두 번 관계를 맺는 사실상의 ‘섹스리스’ 부부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K에게 신문기사 하나를 들이밀었다. 조루를 치료하는 수술인 ‘음경배부차단술’에 대한 기사였다. 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았더니 수술 한 번이면 모든 게 다 좋아질 듯 이야기를 하다 마지막에 가서 “수술이 안 먹히는 사람도 있고 부작용도 따를 수 있다”고 했다. 비용도 150만원 선. 고민에 빠진 K부장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수술을 미뤘다. 그런데 수술 문제로 시작된 말다툼은 고성이 섞인 심각한 부부싸움으로 변해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경전을 벌이던 아내는 결국 이혼서류를 내밀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K부장은 말없이 도장을 꾹 찍어버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별거.

    이혼한 지 어언 1년이 지난 최근, 전 부인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유럽에서 먹는 조루치료제가 나왔대. 한국에서도 곧 시판한다는데, 우리 그거 한번 먹어보지 않을래?”
    K부장은 요즘 그 약이 판매될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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