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2

2009.04.21

‘CARE 플랜’은 중소기업 수호천사

관세청, 환급금 돌려주기·체납자 신용회복 큰 호응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9-04-17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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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E 플랜’은 중소기업 수호천사

    한 수출업체 대표가 부산세관장에게 보낸 편지. 관세청 케어플랜의 도움을 받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감사 편지다.

    “회사가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준 관계자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경북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A사 대표 김모 씨는 최근 부산경남본부세관(이하 부산세관) 김종호 세관장 앞으로 이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다. 철판을 수입해 자동차 설비를 만들어 수출하는 이 회사는 1989년 창사 이래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견실한 중소기업. 하지만 지난해 10월 이후 고환율과 글로벌 경제위기로 자금난에 시달리게 됐다. 주 거래처의 설비투자 감소와 원자재 수입가 인상이 직격탄이었다. 주문량이 줄어들면서 40여 명 되는 종업원의 월급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 2월 중순 부산세관에서 뜻밖의 안내전화가 왔다. “수출 실적은 있는데 관세 환급을 받은 적이 없다. 관련 서류를 보내면 환급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워낙 전화 사기가 많아 의심을 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관에 관련 서류를 보냈다. 그랬더니 보름 만인 3월 초 4억2000만원이라는 거금이 김씨의 회사 통장에 입금됐다.

    잠자는 관세 702억원 환급, 자금난 숨통 틔워

    꿈을 꾸는 듯했지만 이는 당연히 김씨가 되돌려받아야 할 돈이었다. 관세법에 따르면 수입 원자재 가공 수출업자가 원자재를 수입할 때 내는 관세는, 수출이 이뤄지면 이 가운데 일부나 대부분을 신청 후 환급받을 수 있다. 그런데 김씨가 그런 사정을 몰라 신청하지 않은 탓에 그동안 환급금을 받지 못한 것.



    수출입 업체들에게 ‘경제 검찰’로 인식되던 관세청이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아 영세·중소기업들의 ‘수호천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세계적 경기침체가 가시화하던 지난해 3월31일 관세청은 자금난으로 부도 위기에 빠진 기업을 살려내기 위해 ‘영세기업 등 지원 및 체납자 신용회복을 위한 관세행정 지원대책’, 일명 ‘케어플랜’을 발표했다. 케어(CARE·Customs Assistance for Rehabilitation Encouragement) 플랜은 세관이 기업의 회생을 지원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지원 정책을 의미한다.

    앞서 소개한 김씨 이야기도 케어플랜의 일환인 ‘잠자는 관세 환급금 찾아주기 운동’ 사례다. 관세청은 이미 2007년 7월부터 ‘중소기업 미환급 정보 자동통보시스템’을 운영해왔는데, 김씨에게 전화가 간 것도 이 시스템 덕분이다. 케어플랜은 영세·중소기업이 인력과 정보의 부족으로 관세 환급을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서 착안했다. 김씨처럼 환급금을 되돌려받은 업체가 지난해에만 4271개이며 그 액수는 702억원에 달했다. 또한 관세청은 지난 1월 수출(환급) 비율이 높은 품목과 업체의 경우 수출용으로 수입된 원재료에 대해 사전에 관세를 면제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케어플랜에는 관세를 체납해 신용불량자가 된 기업인의 신용을 회복하고 다시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제도도 포함돼 있다. 체납자 신용회복 프로그램이 그것. 원래 관세청은 500만원 이상 관세 체납자는 전국은행연합회에 신용불량자로 등록하고, 대출금 조기 회수 등의 금융조치를 취함으로써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하게 한다. 또한 체납기업이 원자재를 수입하려 해도 통관 절차에서 수입물품이 압류돼 무역활동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CARE 플랜’은 중소기업 수호천사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도 관세청 케어플랜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체납자 신용회복 프로그램은 추징세액 1억원 미만인 체납자 중 체납액의 일부(5%)를 납부하고 향후 납부계획을 제출하는 업체(관세포탈로 형사처분 받은 자 제외)에 대해서 금융기관에 신용불량자 등록을 해제 요청하고, 수입품에 대한 체납 처분을 유예함으로써 무역활동을 다시 할 수 있게 한다. 회생 가능성이 있고 자발적인 노력을 보이는 체납자를 적극 지원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준다는 취지다.

    관세포탈 추징액 1억원을 미납해 부산세관에 의해 출국금지를 당하고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김모 씨도 이 제도 덕분에 기업활동을 재개한 경우. 김씨는 모든 금융활동과 무역활동이 봉쇄되자 아예 폐업신고를 내고 잠적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김씨의 칠순 아버지가 부산세관을 찾아가 “모두가 자식을 잘못 키운 내 탓이다. 어떻게든 체납액을 납부할 터이니 자식이 재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세관은 1억원의 체납액을 3차례에 걸쳐 납부할 것을 제의했고, 김씨의 아버지는 은행에서 4000만원을 빌려 체납액 일부를 갚았다.

    세관은 곧바로 김씨의 출국금지와 신용불량자 등록을 해제하는 한편, 관할 세무서에 요청해 납부한 세금에 대한 부가세 환급을 받을 수 있도록 폐업한 체납업체의 사업자번호를 살려줬다. 더욱이 수입신고 물품을 압류하지 않고 통관을 허용함으로써 정상적인 경제활동도 가능케 했다. 그 후 김씨는 중국을 오가며 수입활동을 해 6개월도 안 돼 체납액 1억원을 모두 갚고 사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관세청은 일시적 자금경색으로 부도 위기에 몰린 기업의 경우 납부기한 연장과 분할납부 제도를 활용해 경영활동을 지원한다. 한때 1000만 달러 수출탑 대통령 표창, 중소기업 대상을 받고 유망 중소기업에 선정돼 산업포장까지 받은 B기업은 수년간의 적자 경영과 주거래 은행의 여신 축소로 2007년 하반기부터 수출용 원자재 수급이 불가능할 정도로 자금난에 시달렸다. 더욱이 2007년 11월에는 공장 화재로 공정라인 전체가 불타버렸다. 결국 2008년 4월 월별 납부세액 1억5000만원을 못 내 체납업체로 전락했다. 수입 통관이 불가능해져 원재료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제조 라인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잘 모를 땐 ‘Customs Mento’ 이용을

    바로 그 무렵 관세청의 케어플랜 제도가 시작됐다. B사는 관세를 체납할 만큼 수입구조가 나빴지만 당시 대기업의 협력업체로 선정됐고, 3개월 후인 2008년 7월에는 대규모 자금 차입이 가능한 인수합병이 예정돼 있었다. 관세청은 이 회사의 경영위기를 일시적 자금경색으로 판단, 체납세액 1억5000만원에 대한 체납처분 유예결정을 내렸다. 수입 신고된 9건의 원재료도 제품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통관을 허용했다. B사는 결국 예정대로 7월에 기업합병이 완료되면서 체납액을 모두 갚고 공장을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관세청은 이런 지원 외에 관세 정보와 지식이 없는 영세·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과다 납부세금 찾아주기 운동을 펴고 있다. 이들 기업의 수입신고 건을 일일이 분석해 관세를 과다하게 신고한 금액을 직권으로 환급해주는 것. 이 운동을 통해 2008년 한 해 동안 350개 업체가 50억원을 환급받았다. 한시적으로 관세를 받지 않거나 낮게 조정하는 긴급할당관세 제도를 몰라서 내지 않아도 될 관세를 내거나 높은 관세율을 신고한 업체도 직권 환급을 받는다.

    관세청은 케어플랜을 더욱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전국 47개 세관에서 ‘커스텀 멘토(Customs Mento)’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각 세관이 관할구역 내에서 컨설팅을 필요로 하는 기업을 찾아낸 뒤 통관, 심사, FTA에 대한 자문과 지원 업무를 하는데, 특히 자금경색을 겪거나 도산 위험이 있는 업체는 세관 직원이 직접 방문해 맞춤형 케어플랜을 지원한다.

    한편 관세청은 케어플랜과는 별도로 지난해 11월부터 오는 5월까지 환율상승과 금융시장 경색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영세·중소 수출입 기업에 대해 최대 6개월의 납기연장, 분할 납부를 허용하고 관세심사를 유예하는 지원책을 실시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4조원 규모. 납기연장 또는 분할납부 허용 업체 선정기준은 최근 3년간 범칙 및 체납 경력이 없고, 2007년 당기순이익이 발생한 중소기업이다.

    세관 체납관리 24시

    “악성 고액 체납자는 저승까지 따라간다”


    관세청은 일시적 자금경색이나 고의성 없는 실수 때문에 체납자가 된 기업과 기업인에게는 관대하지만, 재산을 숨기고 체납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겐 저승사자와 다름없다. 갖은 소송을 마다하지 않고 끝까지 재산을 추적해 체납액을 받아낸다.
    관세청의 ‘저승사자’는 경인·강원·충청권을 담당하는 서울세관 체납관리과 15명, 호남·영남권을 맡는 부산세관 체납관리과 11명을 합쳐 26명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힘과 역량은 막강하다. 이들은 재산을 숨기고 상습적으로 관세를 체납하는 기업주에 대해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요청하고, 은행연합회에 통보해 신용불량자를 만든다. 10억원 이상 고액, 상습 체납자는 명단도 공개한다.

    1000만원 이상 체납자는 금융권의 도움을 받아 재산의 금융도피처를 철저하게 가려낸다. 이를 통해 관세청은 2004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24억3400만원의 체납금을 징수했다. 또한 국세청의 내국세 환급자료를 제공받아 국세 환급금액을 중간에서 가로채기도 한다. 2005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관세청이 국세 환급금을 관세 체납액으로 당겨 채운 금액은 26억1500만원에 이른다. 각종 소송을 위해 맡겨놓은 대법원 공탁금을 압류하기도 한다(2008년 말 기준 82명, 39억원).
    물론 체납자의 부동산에 대한 조사는 기본. 이들 ‘저승사자’는 부동산 관련법과 관련 소송에 대해서는 ‘박사’ 수준이라는 게 관세사업계의 평가다.
    지난해 관세청의 총 징수액(관세, 수입물품에 대한 부가세, 주세 등 포함)은 51조3400억원. ‘저승사자’들은 지난해 5100억원의 누적 체납액(발생액 포함) 중 2387억원을 정리했다.
    지난 연말 기준으로 10억원 이상 관세를 연체한 사람은 32명으로 체납금만 1666억원에 이른 반면, 500만원 미만 체납자는 1938명으로 이들의 체납액 합은 16억원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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