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총세무사였습니다. 실질적으로 해관(세관의 옛 이름) 운영을 지휘했던 거죠. 인천·원산·부산해관 창설을 주도해 자주적으로 관세행정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종주권(宗主權)을 주장하던 청나라에게 확실히 미운털이 박혔겠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밀수범이기도 했습니다. 1884년 봄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야소(耶蘇·예수의 음역어) 서적 6000권 때문에 조정이 발칵 뒤집힙니다. 크리스천인 묄렌도르프는 이때 인천 해관창고에서 성경을 꺼내 해관장 사택으로 빼돌렸습니다. 이 서적은 1887년 우리나라 최초의 완역 신약 ‘예수셩교젼셔’로 만들어지면서 기독교 전파의 디딤돌이 됐습니다.
기자는 지난 2주간 서울, 대전, 인천을 오가며 관세행정을 들여다보다가 짐짓 뜨끔했습니다. ‘관세행정=밀수단속·재정수입(관세)’만 떠올렸던 저의 ‘오래된 무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관세청 사람들’은 외국 드나들 때만 만나는 이들도 아니었습니다.

130년 전 조선은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관세행정의 뼈대를 세웠지만, 지금은 세계관세기구(WCO) 아·태의장국이 되어 각국 관세공무원들이 ‘공부하러’ 한국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기자는 돋보기를 들고서야 이런 실상을 알 수 있었을까요? 이 물음은 또 다른 ‘119 구조대’가 되려는 관세공무원들의 숙제일 겁니다. 참, 관세청 밀수사범 신고번호는 125(이리로)입니다.
주간동아 682호 (p6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