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2

2009.04.21

묄렌도르프와 관세청의 숙제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09-04-16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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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묄렌도르프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한국 이름은 목인덕(穆麟德). 1882년 청나라 주재 독일 영사관에서 근무하던 중 청나라 이홍장의 추천으로 조선에 와서 외교와 세관 업무를 맡은 인물입니다. 당시 차관급인 협판(協辦)에까지 오른 그는 1884년 한·러 수호통상조약을 성사시킵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조선에서 청나라가 러시아의 견제를 받자 이듬해 10월 이홍장의 압력으로 해임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총세무사였습니다. 실질적으로 해관(세관의 옛 이름) 운영을 지휘했던 거죠. 인천·원산·부산해관 창설을 주도해 자주적으로 관세행정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종주권(宗主權)을 주장하던 청나라에게 확실히 미운털이 박혔겠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밀수범이기도 했습니다. 1884년 봄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야소(耶蘇·예수의 음역어) 서적 6000권 때문에 조정이 발칵 뒤집힙니다. 크리스천인 묄렌도르프는 이때 인천 해관창고에서 성경을 꺼내 해관장 사택으로 빼돌렸습니다. 이 서적은 1887년 우리나라 최초의 완역 신약 ‘예수셩교젼셔’로 만들어지면서 기독교 전파의 디딤돌이 됐습니다.

    기자는 지난 2주간 서울, 대전, 인천을 오가며 관세행정을 들여다보다가 짐짓 뜨끔했습니다. ‘관세행정=밀수단속·재정수입(관세)’만 떠올렸던 저의 ‘오래된 무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관세청 사람들’은 외국 드나들 때만 만나는 이들도 아니었습니다.

    묄렌도르프와 관세청의 숙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지식재산권 보호, 원산지표시 단속, 총기·마약류 단속 등에 나서는 그들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었습니다.



    130년 전 조선은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관세행정의 뼈대를 세웠지만, 지금은 세계관세기구(WCO) 아·태의장국이 되어 각국 관세공무원들이 ‘공부하러’ 한국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기자는 돋보기를 들고서야 이런 실상을 알 수 있었을까요? 이 물음은 또 다른 ‘119 구조대’가 되려는 관세공무원들의 숙제일 겁니다. 참, 관세청 밀수사범 신고번호는 125(이리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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